365일 한시-왕발王勃 촉주로 부임하는 두 소부를 전송하며送杜少府之任蜀州

촉주로 부임하는 두 소부를 전송하며送杜少府之任蜀州/왕발王勃

城闕輔三秦 삼진이 보호하는 이 도성에서
風烟望五津 서쪽 오진의 풍광을 바라보네 
與君離別意 그대와 이별하는 나의 심경
同是宦游人 고향 떠나 벼슬살이 다 같지 뭐
海内存知己 이 세상에 지기가 있다면야
天涯若比鄰 세상 끝이라도 이웃에 사는 것
無爲在岐路 이별의 기로에 서서 아녀자처럼
兒女共沾巾 손수건에 눈물 적시지는 말기를

중국에 여행하면서 보면 입춘첩으로 ‘物華天寶’ ‘人傑地靈’을 써 놓은 것을 심심치 않게 본다. ‘좋은 물건은 하늘이 낸 보물이고 뛰어난 인물은 땅의 영험한 기운을 타고 났다’는 뜻으로 <滕王閣序>라는 글에 실려 있다. 이 글이 바로 왕발이 14에 썼다는 글인데 대구와 고사가 좋고 풍격이 아주 웅장하여 기분 내어 읽다 보면 중간에 힘이 빠질 정도이다.

지금 이 시도 그런 왕발의 문풍이 여지없이 발현되어 첫 구부터 웅장한 대구가 등장한다. 번역으로는 구현할 수 없지만 한시 자체로는 三秦과 五津이 대구가 좋고 운자를 놓아 율조를 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城闕을 제시어로 삼고 輔와 三秦은 술어와 주어를 도치하였으며, 風烟望五津 역시, 風煙을 제시어로 삼되 望 과 五津은 술어 목적어로 하여 결국 風煙이 五津을 수식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한시로는 성궐과 풍연을 시구의 앞머리에서 쿵!하고 내 보이는 맛과 마지막에 같은 운자로 리듬을 맞추는 데에 초점이 있지만 우리말로 번역하면 한국인의 언어 질서로 볼 때 논리적인 구성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첫 구를 두 번째 구의 부사절로 구현하는 수밖에 없다.

三秦은 항우가 관중에 들어가 진나라 핵심 지역을 3개로 쪼갠 것으로 한나라 때 장안을 둘러싸고 있는 중앙의 경조와 그 좌우에 있는 우부풍과 좌풍익을 말하는데 이를 三輔라고도 하니 동사 輔와 잘 어울린다. 후세의 京畿라는 말과 같다. 五津은 촉 지역의 장강 상류에 있는 5개의 나루로 지금 그 곳 고을 수령으로 가는 두 아무개가 가는 곳을 드러낸 것이다. 당연히 장안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풍연에 잠긴 그 쪽을 바라본다는 말로 성궐이라 표현한 장안에는 자신이, 그 곳에는 두 소부가 있다는 것을 환기한 말이다.

그저께 왕유의 <종남산>에서 얘기하였지만 술어 뒤에 주어가 나오는 구문을 잘 모르면 輔三秦, 이 구절을 ‘삼진에 의해 보호받다’로 해석하려고 고집을 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뜻을 시구에 관철시키려 하는 사이에 시가 조금씩 난해해지는 것이다. 한시 번역이 조금씩 조금씩 이상해져서서 전체적으로 무슨 말인지 모르게 모호하게 되는 것은 대체로 한시의 구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데 연유한다.

사람들이 쉬운 우리말로 한문을 번역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런 것을 보면 한시의 번역은 주석과 해설이 필수적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한시 번역하면 김억을 말하면서 언어 표현을 운운하는데 김억이 번역한 시는 대체로 고사가 없고 시구의 변화가 복잡하지 않은 것들이라 그런 번역을 특징이 다른 한시에 확대하여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애시당초 무리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번역은 직역을 위주로 해야 하는데 요즘 사람은 자신도 잘 모르면서 모호하게 번역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정말로 잘 몰라서 모호하게 번역했다면 이는 큰 문제이지만 번역 자체는 우리말로 자연스럽고 일차적으로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그리고 필요한 곳에 적절한 설명을 안배하는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

海内存知己면 天涯若比鄰이라!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나는 이웃처럼 느낄 것이오! 이 시를 참으로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 요즘 말로 ‘나는 너의 가슴에 살아 있을 것야.’라는 의미이다. 이별의 즈음에 나눌만한 뛰어난 가구(佳句)이다.

인터넷에 이 구절을 검색해 보면 수 없이 많은 서예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이것 하나만으로도 왕발이 낙빈왕, 노조린, 송지문과 함께 초당사걸로 이름을 떨친 것이 허명이 아니며 사람들에게 이 시가 큰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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