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예술기법 34 서사양제법叙事養題法

서사양제법叙事養題法

【정의】

소설에서 ‘서사양제법’을 이야기할 때는 ‘서사叙事’가 수단이 되고, ‘양제養題’는 목적이 된다. 따라서 ‘서’는 ‘제’를 위해 서하는 것이고, ‘서’에 ‘제’가 기탁되어 있다. ‘서’는 ‘제’를 위해 분위기를 띄우고 궁금증을 자아내며 ‘수많은 의혹들’을 배치하게 된다. 한 마디로 ‘서사양제법’은 물고기를 잡되 그에 앞서 밑밥을 깔아놓는 것을 말한다. 곧 중점은 ‘제題’에 있으되, 관건은 ‘서叙’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서사의 경우는 그 추구하는 ‘제’가 인물의 성격 특질인 것도 있고, 또 어떤 서사의 경우는 그 ‘제’가 문장의 중심사상인 것도 있다.

【실례】

《수호전》 제28회에서 우쑹武松은 형의 원수를 갚고 죄수가 되어 둥핑 부東平府로 압송된다. 그런데 옥 안에 갇힌 뒤 우쑹이 받는 대접은 일반 죄수와 다를 뿐 아니라 극진하기까지 했다. 매를 맞지도 않았거니와 여러 가지 악형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먹는 것과 입성까지 상빈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작자는 그 과정을 붓을 아끼지 않는 ‘극불성법’을 활용해 하나하나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자는 작중 인물인 우쑹뿐 아니라 독자들까지도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하는 의혹을 갖게 한다. 모든 사람들의 의혹이 극에 달했을 때, 작자는 이 모든 것이 스언施恩이 우쑹에게 자신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그리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과연 제29회에서 우쑹은 스언을 대신해 원수를 갚아준다. 이것은 스언이 자신을 알아보고 극진히 대접해 준 데 대해 우쑹이 보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곧 28회에서 우쑹의 옥살이를 세세하게 ‘서사’한 것은 곧 29회에서 우쑹이 스언을 대신해 원수를 갚아주는 ‘양제’를 위한 하나의 장치인 것이다.

【예문】

서너 명의 나졸들이 우쑹武松을 종전대로 독방으로 끌고 갔다. 그러자 여러 죄수들이 모여 와서 우쑹에게 묻는다.

“당신은 관청과 친분이 있는 친구의 편지라도 수교에게 전한 게로구려?”

“그런 건 없소.”

“만약 없다면 그렇게 매를 미루는 것은 좋은 심사 같지 않은 걸! 저녁에는 꼭 와서 당신을 없애 버릴 거요.”

“어떻게 날 없애 버린단 말이오?”

“그것들이 저녁에 기장밥 두 그릇에 냄새나는 마른 물고기를 가져다 배불리 먹일 거요. 그런 다음에 토굴 속으로 끌고 가서 바로 묶고 삿자리를 둘둘 감고 일곱 구멍을 틀어막아 한쪽 구석에다 거꾸로 세워 놓을 거요. 그러면 반 식경도 못 돼서 당신의 생명은 끊어지거든. 이것을 분조分弔라 하오.”

“그 외에 또 달리 해치는 방법은 없소?”

“또 한 가지가 있소. 역시 사람을 묶어 놓고 자루에 모래를 넣어서 몸을 짓눌러 놓는데 역시 한 식경이면 죽소. 이것이 토포대土布袋라는 거요.”

“또 무슨 방법이 있소?”

“무서운 것은 이 두 가지요. 그 외에는 별로 대수로운 것이 없소.”

이런 말들을 하고 있는데 한 병졸이 찬합을 들고 들어와서 묻는다.

“어느 분이 새로 정배오신 우 도두입니까?”

“나다! 왜 찾느냐?”

“수교께서 점심을 보냅니다.”

우쑹이 그 찬합을 열어본 즉 술 한 주전자에 고기 한 접시, 국수 한 그릇, 국 한 사발이었다.

‘이걸 먹인 다음에 나를 어떻게 해치우려는 모양이구나. 좌우간 먹고 보자!’

이렇게 생각한 우쑹은 술 한 주전자를 단모금에 들이켜고 고기와 국수도 다 먹어 버렸다. 나졸은 그릇들을 걷어 가지고 돌아가 버렸다.

우쑹은 방에 혼자 앉아 생각하다가 코웃음을 치고 중얼거렸다.

‘흥, 네놈들이 나를 어쩌나 두고 보자!’

보니, 날은 이미 다 저물었는데 먼저 왔던 그 나졸이 또 찬합을 들고 들어온다.

“어째서 또 왔느냐?”

“저녁 진지를 가져왔습니다.”

나졸은 대답하고 채소 반찬 몇 접시에 또 술 한 주전자, 고기 볶음 한 접시, 생선국 한 사발과 밥 한 그릇을 차려 놓았다.

우쑹은 그것을 보고 혼자 생각하였다.

‘이 밥 한 끼를 먹이고는 꼭 나를 없애 버리겠지. 흥, 할 대로 하라지! 죽더라도 배나 불리고 보자. 먹어 놓고 볼 판이지!’

우쑹이 다 먹고 나니 그 나졸은 그릇들을 거두어 가지고 돌아갔다.

이윽고 그 나졸이 또 다른 한 나졸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한 자는 목욕통을 들고 다른 한 자는 큰 물통을 들었다.

“도두 나리, 목욕을 하십시오.”

그러자 우쑹은 생각했다.

‘목욕까지 시켜 가지고 손을 댈 작정인가? 겁날 게 없다! 어쨌든 씻고 보자!’

두 나졸이 목욕통에다 더운 물을 부어 놓자 우쑹은 곧 목욕통에 들어가 한참 동안 몸을 씻었다. 나졸들은 욕의와 수건을 주면서 몸을 닦고 옷을 입게 했다. 이어 한 자는 목욕한 물을 쏟아 버리고 통을 들고 돌아가고 한 자는 곧 휘장을 치고 등으로 결은 삿자리를 펴놓고 베개를 놓더니 편히 주무시라 하고 돌아가 버렸다.

‘이건 어쩌자는 건가? 해 볼대로 해 보라지.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른 우쑹은 방 안에서 혼자 이런 생각에 잠겼다가 누워서 잤다. 그 날 밤은 별일이 없었다.

날이 훤히 밝자 일어나서 문을 여니 바로 어제 저녁에 왔던 그 나졸이 세숫물 통을 들고 와서 우쑹더러 세수를 하자 하고 양칫물도 가져다 양치질까지 하게 하고 또 머리 빗는 사람을 데려다 머리를 빗겨서 상투를 다시 튼 다음 두건까지 씌워 주었다. 그러자 또 한 자는 찬합을 들고 와서 채소 반찬과 큰 사발에 뜬 고깃국과 밥을 내 놓았다.

‘네놈들은 그저 있는 대로 날라만 오너라. 난 기껏 먹어줄 테니.’

우쑹이 밥을 다 먹고 나자 또 차가 들어와서 차까지 다 마셨는데 찬합을 들고 왔던 자가 다시 와서 청한다.

“여기서는 쉬기 불편하시니 도두 나리께서는 저쪽 방으로 가셔서 편히 유하도록 하십시오. 거기는 차나 진지를 잡수시기도 편할 것입니다.”

‘응, 이제는 정말 손을 댈 작정이구나! 어쨌든 따라가서 어떻게 하는지 보기나 하자…….’

우쑹이 이렇게 중얼거리는데 한 자가 와서 짐과 이부자리를 수습하고 또 한 자는 우쑹을 데리고 독방에서 나와 앞에 있는 방으로 가서 문을 여는데 들여다보니 안에는 깨끗한 휘장을 둘러친 침상이 놓여 있고 양쪽에는 새로 갖춘 상과 걸상들이 놓여 있었다. 우쑹은 방 안에 들어가서 생각했다.

‘토굴 감방에 가두어 놓는 줄로만 알았는데 어째서 이런 데로 데려 왔을까? 독방보다는 깨끗한 걸!’

우쑹이 한낮까지 앉아 있노라니 늘 오던 그 나졸이 또 찬합을 들고 들어오는데 손에는 술 한 주전자를 들었다. 찬합을 열고 보니 제법 네 가지 과품에다 삶은 닭을 찢어 놓고 술을 따라 놓으면서 우쑹에게 권했다.

우쑹은 속으로 생각했다.

‘대관절 어쩌자는 판인가?’

저녁에도 갖가지 좋은 음식을 차려오고 목욕을 시킨 다음 바람까지 쏘이고 자게 했다.

‘여러 죄수들도 말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어째서 나를 이렇게 대접할까?’

사흘째 되는 날도 그 전과 같이 밥에다 술까지 가져왔다. 우쑹이 조반을 먹고 유형소 안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보니 많은 죄수들이 뙤약볕 아래에서 물도 긷고 나무도 패면서 잡일을 하고 있었다. 때는 6월 염천이라 더위를 피할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우쑹은 뒷짐을 지고 서서 물었다.

“대체 자네들은 어째서 이렇게 더운 때에 일을 하나?”

숱은 죄수들이 모두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신은 모르시는구려. 우리가 여기에 뽑혀와서 일하는 것을 천당에 온 것만치나 생각하는데 어찌 덥다고 그늘에 앉아 쉬겠소. 지금 아무 뇌물도 먹이지 못한 죄수들은 큰 옥에 갇혀서 살려야 살 수도 없고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이 굵다란 쇠사슬에 얽매여 겨우 목숨을 부지해 가고 있소이다!”

우쑹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천왕당 앞뒤를 한 바퀴 도는데 소지를 사르는 향로 옆에 청석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한가운데 장대 꽂는 구멍이 뚫린 큼직한 돌이었다. 우쑹은 그 돌 위에 잠깐 앉았다가 곧 방으로 들어가 앉아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는데 나졸이 또 술과 고기를 가지고 왔다.

우쑹이 그 방으로 옮겨온 지도 벌써 여러 날이 되었는데 매일 좋은 술과 맛좋은 반찬들을 가져다 먹일 뿐 조금도 해치려는 기미는 느끼지 못했다. 우쑹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몰라서 퍽 궁금해 하던 차에 점심 때 그 나졸이 또 술과 음식을 가져오니 참다 못해 찬합 뚜껑을 한 손으로 눌러 짚고 그에게 물었다.

“너는 뉘 집 하인인데 날마다 술과 음식을 가져다 먹이기만 하느냐?”

“소인이 일전에 도두 나리에게 여쭙지 않았습니까. 저는 수교 댁의 심복이올시다.”

“그런데 날마다 가져오는 술과 음식은 누가 보내는 거냐? 먹이고서는 어쩌자는 거냐?”

“수교 나리의 자제분이 도두 나리에게 대접하라고 보내시는 겁니다.”

“나는 죄수인 데다 수교 나리한테 아무런 일도 해드린 것이 없는데 어째서 좋은 음식을 보낸다더냐?”

“소인이 그것을 알 리 있습니까? 수교 나리의 자제 분께서 어쨌든 저한테 석 달이나 반 년쯤 찬합을 날라달라고 분부하십디다.”

“거 참 이상한데! 설마 나를 잘 먹여서 살진 다음에 죽여 버리자는 거야 아니겠지! 이 수수께끼를 어떻게 알아맞힌단 말이냐? 그러니 내가 어떻게 영문도 모를 음식을 마음 놓고 먹겠느냐? 그런데 그 자제 분은 대체 어떤 사람이냐? 어디서 나를 만나본 적이 있다더냐? 네가 바른 대로 말해야 나는 술과 음식을 먹겠다.”

“일전에 도두께서 처음 오셨을 때 흰 수건으로 오른손을 감고 청상에 서 있던 그 분입니다.”

“그러면 청사 덧저고리를 입고 수교 나리 옆에 서 있던 그 사람 말이냐?”

“바로 그 분이 수교 나리의 자제 분입니다.”

……

“실없는 소리 말고 당장 돌아가서 그 분을 청해 오너라.”

그 나졸은 겁이 나서 좀처럼 가려고 하지 않다가 우쑹이 버럭 성을 내는 바람에 그제야 마지 못해 말하러 갔다.

스언施恩은 한참만에야 나와서 우쑹을 보고 인사를 했다. 우쑹은 황급히 맞절을 하면서 말을 건넸다.

“소인은 관하管下의 죄수로서 존안尊顔을 뵈온 일이라곤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전엔 매를 면하게 해 주시고 요즘은 또 매일 좋은 술과 음식으로 환대해 주시니 심히 황감합니다. 심부름조차 한 일도 없고 아무런 공로도 없이 녹을 받아먹게 되니 그야말로 마음이 불안합니다.”

……

“그 놈이 기왕 발설을 했으니 여쭙기로 합시다. 형장은 대장부이자 호남이신데 한 가지 청을 들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이 일은 형장이 아니고서는 거사할 수가 없습니다.……”( 《수호전》 제28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