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하늘에서 나풀나풀 내리는 하얀 색의 눈을 가리키는 한자가 雪이다. 얼핏 보기에 간단해 보이지만 이 속에는 사람이 만드는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서들이 담겨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글자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모습인 雪은 하늘에서 내리는 물을 나타내는 비를 의미하는 雨와 사람의 오른손을 나타내는 又가 변형된 형태인 彐(돼지머리 계)가 아래위로 결합한 모양이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甲骨文에서는 雨와 羽가 아래위로 결합한 모양이었다. 하늘에서 천천히 날리면서 내리는 눈이 마치 새의 깃털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당히 낭만적이며, 문학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雨를 살펴보자. 이 글자는 象形字인데, 一은 하늘을 나타내고 冂은 구름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점 네 개는 물방울을 나타낸다. 즉, 하늘의 구름 아래로 내려오는 물방울이 바로 비라는 것이다. 雨는 세월이 흐르면서 매우 폭넓게 쓰였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쓰이기도 했다. 눈을 나타내는 雪에도 이것이 들어가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羽는 새의 양쪽 날개를 형상화한 것으로 깃털이라는 뜻을 가진다. 깃털은 가볍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데, 雪에 이 글자를 쓴 이유가 있다. 銀, 商나라 시기의 문자가 갑골문인데, 이 나라들이 있었던 곳에서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다 오는 눈을 반기는 편이었고 그래서 깃털처럼 가볍게 날리며 내린다고 해서 羽를 쓰게 되었다.
그러다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金文에서 큰 변화를 겪는다. 글자의 아랫부분이 羽에서 彗(꼬리별 혜)로 바뀐 것이다. 彗의 윗부분은 대나무 빗자루 모양을 나타내고, 아랫부분은 손을 나타내기 때문에 빗자루 같은 것을 손으로 잡고 무엇인가 쓸어낸다는 의미가 된다. 이 시기부터 눈은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쓸어서 없애버려야 하는 것으로 된 것이다. 눈이 워낙 많이 와서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이런 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漢 나라 시대를 지나면서 성립된 楷書體에 이르러서는 지금의 글자로 바뀌었다. 彗에서 빗자루를 빼고 손을 의미하는 彐를 넣어서 지금과 같은 모양의 글자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쓸어버린다는 의미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서 雪은 눈이라는 뜻과 함께 희다, 무엇인가를 치워버리다, 없애다 등의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눈처럼)빛나다(雪亮), 부끄러움을 씻어내다(雪恥-설치), 원한을 씻어내다(雪冤-설원), 욕된 것을 없애버리다(雪辱-설욕) 등의 표현에도 쓰이게 되었다. 참으로 흥미로운 글자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