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제33권 2

제33권 장원외는 의롭게도 양아들을 키워주고
포룡도는 지혜롭게 각서를 찾아내다

張員外義撫螟蛉子 包尤圖智賺合同文

한편 유천서는 처자를 데리고 ‘다리를 만나면 말에서 내리고, 나루터를 만나면 배에 오르네’라는 말처럼 풍찬노숙하며 길을 재촉했다. 며칠 만에 산서성(山西省) 노주(潞州) 고평현(高平縣) 하마촌(下馬村)에 이르렀는데, 그곳은 그야말로 풍년이어서 어떤 장사라도 하기가 좋았다. 이에 한 부호의 집을 빌려 머물게 되었다. 그 부호는 장원외(張員外)로, 이름이 병이(秉彝)였고 부인은 곽씨(郭氏)였다. 이들 부부는 재물을 하찮게 여기면서 의를 소중히 여겼고, 선을 좋아하고 베풀기를 즐거워했다. 재산이 매우 많았으나 다만 슬하에 자식이 하나도 없어 그것만이 늘 마음속의 불만이었다. 그들이 유씨 부부를 보니 사람됨이 온화하여 서로 아주 잘 맞았다. 유안주는 나이가 세 살이었는데, 장원외는 그 아이가 인물이 수려하고 매우 총명한 것을 보고는 몹시 좋아하였다. 이에 부인과 상의하여 그를 양아들로 삼자고 하였고, 곽씨의 마음 역시 그와 같았다. 그리하여 곧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천서와 장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원외께서 댁의 아드님을 보시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양아들로 삼아 두 집안이 서로 왕래하기를 바라시는데, 두 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천서와 장씨는 부잣집에서 아들을 양자로 삼으려는 것에 대해 내키지 않을 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곧 이렇게 대답했다.

“그저 가난한 게 걱정이라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습니다. 만약 원외님의 이와 같은 온정을 입어 우리 부부가 이곳에 살게 된다면 크나큰 영광이겠습니다.”

그 사람이 곧 이 말을 다시 장원외에게 알리자, 장원외 부부는 매우 기뻐하며 곧장 길일을 골라 안주를 양아들로 데려와 그를 장안주(張安住)라고 불렀다. 또 장씨는 원외와 같은 성씨여서 그를 오빠로 삼았다. 이로부터 장원외는 유천서와 매부 처남 사이가 되어 서로 매우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집세와 의식(衣食)에 필요한 돈도 모두 그에게 내지 말도록 하였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을 때 뜻밖에도 기쁨이 오기도 전에 걱정이 찾아들었다. 유씨 부부가 둘 다 전염병에 걸려서 자리에 누워 일어나질 못하게 된 것이었다.

된서리가 뿌리 없는 풀에 몰아치듯
화(禍)가 박복한 사람에게 곧장 달려드는구나

장원외는 그들 부부가 병이 난 것을 알고는 친혈육처럼 생각하여 의원을 청해오고 돌봐주었지만, 병이 더하면 더했지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며칠 되지 않아 장씨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유천서는 땅이 꺼지도록 통곡을 했고, 이번에도 장원외의 도움을 얻어 관을 사고 염을 했다. 며칠이 지난 후 천서는 병이 심해지는 것을 보고 스스로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장원외를 청해다 이렇게 말했다.

“은인께 소생이 드릴 말씀이 있는데 감히 해도 될는지요?”

“매부, 나와 자네는 친혈육이나 마찬가지이네. 무슨 부탁이든 절대 저버리지 않고 못난 내가 다 들어줄 테니 어서 말씀하시게나.”

“저희 두 친형제는 당시 집을 떠날 때 형님이 두 장의 각서를 써서 형님이 한 장 간직하고 제가 또 한 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만약 무슨 문제가 있으면 그것으로 증명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지금 은인의 각별한 보살핌을 입다가 뜻밖에도 팔자가 사나워 결국 타향의 귀신이 되게 생겼습니다. 안주 놈은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은인께서 양아들로 받아주셨으니, 그저 은인께서 음덕을 널리 쌓으시는 셈치고 우리 아들을 키워 성인이 되면 이 각서를 그놈에게 주어 우리 부부의 유골을 선산에 묻어주라고 해주시기 바랍니다. 소생이 이승에서 그 은혜를 갚을 수는 없지만, 내세에는 견마지로를 다하여 큰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부디 제 아들이 본래 성씨를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유천서는 말을 마치자 눈물이 비 오듯 하였다. 장원외도 눈물을 흘리며 쾌히 승낙하고, 또 좋은 말로 그를 위로해주었다. 유천서는 곧 문서를 꺼내 장원외에게 주어 간직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저녁때까지 버티다가 눈을 감고 말았다. 장원외는 또 관재와 수의를 준비하여 염을 끝낸 후, 그들 부부의 관을 임시로 선영 옆에 묻어두었다. 이로부터 안주를 키우는데 마치 친자식을 대하듯 하였다. 안주는 점점 장성했지만 그에게 사실을 말해주지는 않고 서당에 보내 글공부를 시켰다. 안주는 영리하고 총명해서 보기만 하면 외웠고, 십여 세가 되었을 때는 오경(五經)에 자서(子書), 사서(史書)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 사람됨이 착해서 양부모에게 효도를 다했다. 장원외 부부는 그를 마치 보물처럼 소중히 대했고, 매년 봄가을 명절이면 그를 데리고 산소에 올라가 그에게 자기 부모님께 절을 하라고 했는데, 다만 그 연고를 말해주지는 않았다.

세월은 정말 쏜살같이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15년이 되었고, 안주도 이미 18세가 되었다. 장원외는 곽씨와 상의해서 그에게 지난 일을 말해주고 그를 본가로 보내 부모님의 장례를 지내게 해주려고 하였다. 마침 청명절을 맞아 두 부부는 또 안주를 데리고 산소에 갔다. 그런데 안주가 옆에 있는 흙무덤을 가리키며 장원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해마다 제게 이 무덤에 절을 올리게 하셨는데, 지금껏 여쭤보질 않아서 저와는 어떻게 되는 친척분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말씀해주세요.”

“아들아, 그렇지 않아도 내가 네게 말해주고 너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했단다. 그런데 네 친부모를 알게 되면 우리 양부모의 은혜에는 냉담해질까 걱정이 되는구나. 너는 본래 장씨가 아니고 이곳 사람도 아니다. 네 본래 성씨는 유가인데, 동경 서관의 의정방 사람인 유천상의 아들이고, 네 큰아버지는 유천상이다. 네 고향에 흉년이 들어 인구를 줄이기 위해 네 부모가 너를 데리고 이곳으로 잠시 떠나온 것인데, 뜻밖에도 네 부모가 모두 죽어 여기에 묻히게 된 것이다. 네 부친이 임종 때 나에게 각서 한 장을 남겼는데, 너희 집안 재산이 모두 그 문서에 적혀있다. 네가 성인이 된 후에 자세한 사정을 말해주고 네가 그 문서를 가지고 가서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찾아 유골을 선산에 안장케 해달라고 하셨다. 아들아 오늘 어쩔 수 없이 네게 알려주게 되었구나. 비록 나에게는 생후 삼 년간 키우는 어려움은 없었지만, 15년간 보살펴준 은혜는 있으니, 우리 부부를 잊지 말아다오.”

안주는 그 말을 듣고 울며 바닥에 쓰러졌다. 장원외와 곽씨가 소리쳐 깨우자, 안주는 또 부모의 무덤을 향해 울면서 절을 하며

“오늘에야 저를 낳아주신 부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또 장원외와 곽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기왕 이 일을 알게 되었으니 한시라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저에게 그 문서를 주십시오. 제가 유골을 가지고 동경에 한 번 가야겠습니다. 장례를 마치면 다시 와서 두 분을 모시려고 하는데, 두 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효를 행하는 일인데 내가 어찌 너를 막을 수 있겠냐? 다만 네가 빨리 돌아와서 우리 두 사람이 걱정하지 않게 해주기만 바랄 뿐이다.”

장원외는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곧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유안주가 짐을 꾸려 이튿날 부모에게 작별을 고하자, 장원외는 각서를 꺼내 안주에게 주었고, 또 사람을 시켜 유골을 가져다 그에게 주어 가져가도록 하였다. 떠날 때 장원외는 또

“너무 오랫동안 고향에 정붙이고 있다가 우리 양부모를 잊으면 안 된다.”

하고 분부하자 안주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어떻게 은혜를 알고도 저버리겠어요? 일이 끝나면 곧 돌아와 모시겠습니다.”

그리고는 세 사람 모두 눈물을 흘리며 이별했다.

안주는 가는 길에 시간을 지체하지 않아 동경 서관 의정방에 빨리 도착하게 되었다. 물어물어 유가의 문에 이르니, 한 노파가 문 앞에 서있어 안주가 다가가 인사를 하였다.

“아주머니 실례지만 안에다 말씀 좀 전해주시겠어요? 저는 유안주라고 하고 유천서의 아들입니다. 여기가 큰아버지, 큰어머니 댁이라고 해서 본가에 인사를 드리러 왔거든요.”

그 노파는 이 말을 듣더니 얼굴빛이 약간 바뀌며 안주에게 물었다.

“지금 삼촌과 동서는 어디 있나? 그쪽이 정말 유안주라면 증명할 각서가 있어야 돼. 그렇지 않고서야 생면부지인 사람을 어떻게 진짜라고 믿을 수 있겠어?”

“제 부모님은 15년 전에 노주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다행히 저는 지금까지 양부께서 길러주셨고 문서는 제 짐 속에 있어요.”

“내가 바로 유천상의 처인데, 문서가 있다면 정말이겠구만. 나한테 주고 그쪽은 문밖에서 잠시 서서 기다리셔. 내가 들어가서 그쪽 큰아버지한테 보이고 나서 들어오게 할 테니.”

“정말 제 큰어머니인줄도 모르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안주는 이렇게 말하고는 곧 짐을 풀어 문서를 두 손으로 바쳤다. 양씨는 그것을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안주는 한참이나 기다렸지만 나오질 않았다. 원래 양씨의 딸이 이미 데릴사위를 맞아들여 가산을 모두 그에게 주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기로, 늘 걱정되는 것은 작은 집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삼촌과 동서는 모두 죽었고 큰아버지와 조카는 서로 알지 못하니 속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문서를 손에 넣게 되자 몸속에 몰래 잘 숨겨 두었다가 그가 다시 와서 귀찮게 굴면 오리발을 내밀 속셈이었다. 이 역시 유안주가 재수가 없어서 일이 꼬이자니 그녀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만약 먼저 유천상을 만났던들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안주가 지치도록 기다려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막 의아해 하고 있는 터에 앞쪽에서 한 노인이 다가와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형씨, 당신은 어디 사람이오? 무슨 일로 우리 집 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거요?”

“어르신이 저의 큰아버지가 틀림없으시죠? 제가 바로 15년 전에 부모님께서 흉년을 피해 노주로 떠날 때 데리고 갔던 유안주입니다.”

“그러고 보니 네가 바로 내 조카로구나. 너 그 각서는 어디 있냐?”

“방금 큰어머니께서 이미 가지고 들어가셨습니다.”

안주가 이렇게 대답하자 유천상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그의 손을 붙잡고 대청으로 갔다. 안주가 엎드려 절하자 천상은 이렇게 말했다.

“네 오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이럴 것 없다. 우리 두 사람은 늙어서 정말이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신세란다. 너희 세 식구가 떠난 후 15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었구나. 우리 두 형제는 그저 너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 많은 재산을 물려줄 사람이 없어 걱정하느라 눈도 침침해 지고 가는귀도 먹어버렸다. 지금 다행히 네가 돌아와 너무나 기쁘구나. 그런데 너희 부모님은 안녕하신지 모르겠구나. 왜 너하고 함께 우릴 만나러 오지 않았니?”

안주는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 양아버지가 길러준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말해드렸다. 유천상도 한바탕 울고는 양씨를 불렀다.

“여보 조카가 당신을 보러 왔어.”

“어느 조카요?”

“15년 전에 떠났던 유안주 말이야.”

“누가 유안주예요? 여긴 사기꾼들이 아주 많아요. 십중팔구 우리한테 재산이 좀 있는 걸 알고 유안주를 가장해서 사칭하는 걸 거예요. 그 집 부모가 떠날 때 각서가 있었으니, 만약 그게 있으면 진짜고 없으면 가짜예요. 그러니 가려내기 어려울 게 뭐 있어요?”

“방금 얘가 벌써 당신한테 줬다는데.”

“난 본적 없어요.”

그러자 안주가 끼어들었다.

“제가 제 손으로 큰어머니께 드렸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유천상이 다시

“당신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야. 얘가 당신이 가져갔다지 않아?”

하고 말했지만, 양씨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인정하려 들질 않았다. 그러자 천상은 다시 안주에게 물었다.

“그 문서가 정말 어디에 있느냐? 사실대로 말해봐라.”

“제가 어떻게 감히 속이겠어요? 정말로 큰어머니가 가져가셨어요. 사람의 마음을 하늘이 다 알고계신데 어떻게 속일 수가 있어요?”

그러자 양씨가 욕을 해댔다.

“이놈의 자식이 헛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내가 언제 그걸 보기라도 했더냐?”

“이봐, 열 내지 말고, 당신이 정말 가져갔으면 나한테 한 번 보여줘도 되잖아?”

천상의 말에 양씨가 버럭 화를 냈다.

“이놈의 늙은이도 나를 바보로 만드네. 부부사인데도 믿지 않고 오히려 생면부지인 사람은 의심도 안하네. 그따위 종이짝 창문이나 바르라지, 그걸 갖다 뭐에 써? 만약 조카가 왔다면 나도 기쁠 텐데, 내가 왜 그 애 걸 억지로 숨겨놓겠어? 이 거지새끼가 일부러 거짓말을 해서 우리 재산을 사기 쳐 먹으려고 하는 거지.”

“큰아버지, 저는 재산은 바라지 않아요. 그저 조상님의 무덤 옆에 우리 부모님 두 분의 유골을 묻기만 하면 다시 노주로 돌아갈 겁니다. 제게는 안신입명할 곳이 있어요.”

유안주가 이렇게 말하자 양씨는

“누가 네 그따위 거짓말을 듣기나 할 것 같애?”

하고는 곧장 방망이를 들고 안주를 향해 정통으로 갈겨 금새 유안주의 머리가 터져 선혈이 흘러나왔다. 유천상이 옆에서 말리며

“그래도 확실히 물어봐야지.”

하고 소리치긴 했지만, 자기도 조카인지 알지 못하는 데다 아내가 죽어라고 부인하니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라 우물쭈물하며 결정을 못 내리고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양씨는 안주의 목덜미를 잡아 문밖으로 밀어내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검은 구렁이 입속의 혀와 나나니 벌 꼬리의 침
이 두 가지는 오히려 독한 것도 아니라네
제일 독한 건 부인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