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가난한 마주가 떡 파는 여인네를 만나다窮馬周遭際賣䭔媼 2

“주인장, 지금 사람을 무시하는 거요! 그래 나는 손님도 아니란 말이요. 아니 나한테는 주문도 안 받고 있으니 어디 이런 법이 있단 말이오?”

주인장 왕씨는 그 말을 듣고서 깜짝 놀라 마주에게 달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다.

“손님, 진정하시지요. 지금 단체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그런 것 아닙니까. 손님은 혼자시니 제가 이분들 안내하고 바로 응대해드리지요. 참, 술이나 음식 주문하시려면 저한테 말만 하십시오.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내가 하루 종일 걸어오느라 발도 한 번 제대로 못 씻었어. 따뜻한 물이나 좀 갖다 주라고 발 좀 씻게.”

“지금 솥단지에 막 데우려고 하는지라 시간이 좀 걸리네요.”

“그래, 그럼 술 먼저 갖고 와.”

“얼마나 대령할깝쇼?”

마주는 맞은편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한패거리 손님들을 가리키면서 주인에게 말했다.

“저기 저 사람들이 마시는 만큼 가져와봐.”

“저분들은 다섯 분이서 각자 한 말씩 주문하셨습니다요.”

“다섯 놈 거 다 합쳐봐야 내 평소 주량 반 정도밖에 안 되는구먼. 아무튼 우선 다섯 말 좀 가져와봐. 그리고 안주거리도 좀 좋은 거로 가져오고.”

왕씨는 점원에게 술 다섯 말을 우선 데워서 테이블에다 갖다 주라 하고 술 사발 하나하고 안주 몇 접시를 마저 갖다 놓게 하였다. 마주는 술 사발을 들고서 혼자서 마시는데 그 시건방지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략 세말쯤 마셨을까 대야를 가져오라 하더니 마시다 남은 술을 대야에다 붓고는 신발을 벗고서 발을 씻었다. 사람들은 이걸 보더니 한결같이 놀라자빠졌다. 왕씨는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마주가 대단한 사람이란 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한편, 그때 잠문목岑文木이 마주가 발을 씻는 그림이란 의미의 <마주세족도馬周洗足圖>를 그렸고, ‘안개 낀 강가에서 낚시하는 늙은이’란 뜻의 ‘연파조수烟波釣叟’란 별명을 지닌 시인이 그 그림에다 이런 시를 적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입을 기리나,
그대는 오직 발만을 드높이는구려.
입은 풍파를 일으키기 쉬우나,
발은 땅을 굳건히 밟고 선다네.
우리 몸에 가장 낮은 곳에 있으나 그 덕에 우리 몸이 지탱되고,
그 덕에 천릿길도 갈 수 있다네.
그렇게 고생하지만 기림은 적고,
그저 말없이 모욕을 참고 견뎌야 할 뿐.
그 발에게 그대는 술로 대접하였나니,
그 발이 수고했음을 이렇게라도 위로하고 싶었음이라.
그대 발아 근심걱정일랑 다 잊어버리라,
그대 발이 근심걱정 잊을 수 있다면 그 술을 뱃속에다 들이붓는 것보다 백배 나으리라.
아아, 저 마주여,
세속을 초월함이 이와 같구나.

마주는 그 날 밤을 이렇게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주인장 왕씨가 손님들과 숙박비랑 술값이랑 정산을 하는데, 마주는 수중에 돈 한 푼도 없는 처지라 날씨도 점점 풀리고 있으니 가죽 신발이 없어도 생활하는 데 지장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신발을 벗어서 주인장에게 숙박비와 술값으로 대신 받으라고 건넸다. 왕씨가 보기에 마주가 그래도 비범한 사람인데다 여우 가죽 신발은 가격도 상당히 나가는 것인지라 거듭 사양하면서 받지 않았다. 하니 마주가 붓을 들어 벽에다 시를 한 수 적더라.

한신은 자신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한 여인에게,
출세한 다음 금덩이로 보답하였다지.
금덩이로 보답해도 아깝지 않음은,
자기를 알아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넘치기 때문.
나, 여기 신풍에서 술을 마시고,
여우 가죽 신발로 술값을 치르려네.
아, 저 주인장 필요 없다 안 받으시니,
주인장의 저 기상은 온 천하를 덮고 남음이 있도다.

마주는 시를 다 적고선 이어서 “치평茌平 사람 마주가 적다”라고 부기하였다. 주인장이 보니시 자체도 빼어나거니와 글씨도 너무 잘 썼으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그래 이제 어디로 가실 참입니까?”

“장안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비벼봐야지요.”

“잘 아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딱히 아는 사람이고 있는 것은 아니외다.”

“그대 같은 훌륭한 선비는 장안에 가면 분명 출세할 겁니다. 하나 장안은 쌀이나 땔감 같은 것이 너무 비싸 생활비가 엄청 들 텐데 그대는 지금 노자가 다 바닥난 상태니 어디 가서 비빈단 말이오? 마침 내 생질녀가 장안 만수가萬壽街에서 떡장사를 하는 조삼랑趙三郞에게 시집가서 살고 있소이다. 제가 소개 편지를 써드릴 터이니 우선 거기 가서 지내도록 하시구려, 그래도 생판 모르는 집에 가서 지내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백은 한 냥을 드릴 터이니 너무 적다고 하지 마시고 노자에 보태 쓰시지요.”

마주는 쥔장의 후의에 감사를 표시하였다. 쥔장은 소개장을 다 쓰더니 마주에게 건넸다.

“나중에 출세하거들랑 이 은혜는 꼭 갚겠소이다.”

마주는 주인장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고 길을 나섰다.

장안에 도착하여 보니 정말 신풍과는 비교가 안 되는 별천지라 번화하고 화려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주는 물어물어 만수가에 있는 조씨네 떡집을 찾아가서 객점 주인 왕씨가 써준 소개장을 건넸다. 조씨네는 대대로 떡 가게를 하는 집이었는데, 몇 해 전 조삼랑은 이미 세상을 직하고 말았다. 그 아내가 죽은 남편 대신 가게를 보고 있었으니 그 여인 바로 신풍에서 객점을 운영하는 왕씨의 생질녀인 것이다. 나이는 서른을 넘겼으나 여전히 미색이 빼어났으며 인근 사람들이 그녀를 떡 파는 아줌마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아줌마란 장안 사투리로 남부지방 말로는 뭐 여인네라는 말 정도에 해당되겠다. 근데 한참 전에 이 떡 파는 여인네가 가게에 나와서 일하기 시작할 무렵 관상을 잘 본다고 소문난 원천강袁天罡이 그녀를 보더니 무릎을 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여인네 얼굴이 보름달 같고, 입술이 연꽃처럼 붉고, 목소리가 청아하며, 콧날이 오뚝하고 곧으니 나중에 크게 귀히 될 상이라. 나중에 분명 정경부인이 될 것인데, 어쩌자고 지금 여기서 떡이나 팔고 있느뇨.”

원천강이 이런 이야기를 우연히 중랑장中郞將 상하常何에게 하게 되었고, 상하는 그 말을 듣고서는 매일 떡을 산다는 핑계로 종놈을 앞세워 떡 가게에 와서 여인네에게 자신에게 첩으로 올 것을 권유하였지만 그 여인은 그저 웃기만 할 뿐 한 번도 응낙한 적이 없었다.

인연이란 전생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인연이 아니라면 억지로 들이댄다고 이루어지겠는가.

한편, 떡 파는 여인 왕씨는 마주가 찾아오기 전날 밤, 기이한 꿈을 꾸었으니 백마 한 필이 동쪽에서부터 나타나더니 가게 안에 있는 떡을 그냥 한입에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왕 여인이 말을 쫓아내려고 채찍을 들고 달려갔다가 자기도 모르게 말 잔등에 올라타니 그 말이 화룡火龍으로 변하여 갑자기 하늘 높이 날아올라 가는 것이었다. 왕 여인이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온몸이 땀에 흠씬 젖어있더라. 왕 여인이 이게 보통 꿈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 다음 날 외삼촌의 소개 편지를 갖고 온 마주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마주는 온몸에 하얀 옷을 입고 있는지라 왕 여인은 마주를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는 하루 세끼 식사를 몹시도 공손하게 받들었다. 그런데 마주란 사람은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라도 있는 듯 아무런 고마운 맘도 없이 넙죽넙죽 받아먹는 것이었다. 왕 여인은 마주가 어떤 태도를 보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시종여일 공손한 태도로 그를 받들었다.

왕 여인 이웃에 사는 불한당 같은 놈들은 미색이 빼어난 왕 여인이 청상과부가 되었으니 호시탐탐 떡 가게에 들락날락 여인에게 농지거리하기를 밥 먹듯이 하였으나 왕 여인은 눈길도 주지 않으니 그저 속이 알차고 대찬 여인이구나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이제 보니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 어떤 놈 하나가 왕 여인의 가게에 찾아와 있으니 무슨 말이든 나지 않을 수가 있으랴. 왕 여인이 본디 사려 깊은 사람이라 이런 상황을 다 헤아리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입방아도 다 들어 알고 있는지라 마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저야 나리를 더 모시고 싶사오나 제가 과부인 처지라 사람들이 말이 많습니다. 나리는 앞길이 구만리 같으신 분으로 출세에 출세를 거듭할 분인데 이처럼 누추한 곳에서 그런 재주를 썩히신다면 안 될 말입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식객으로라도 나가고 싶으나 어디 비빌 언덕이 있어야지.”

왕 여인과 마주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마침 중랑장 상하 집의 하인이 떡을 사러 왔더라. 왕 여인이 생각해보니 상하는 무관이라 아무래도 글 읽는 선비의 조력이 필요할 것이라 하여 하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의 사돈네 팔촌쯤 되는 먼 친척 마주라는 선비가 있는데 학문만큼은 정말 끝내주는 분이라 그 양반이 지금 식객으로 의탁할 집을 찾고 있는데 귀 댁의 나리께서 관심을 보이실지?”

“뭐 걱정할 거 뭐 있수. 우리 나리가 꼭 거두실 거우.”

大唐故中书令高唐马公之碑, 昭陵博物馆藏 출처 聊城新闻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