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백거이白居易 가을의 상념秋思

가을의 상념秋思/당唐 백거이白居易

病眠夜少夢 병들어 눕자 밤에는 잠이 적어
閑立秋多思 서성이니 가을에 생각이 많네
寂寞餘雨晴 오던 비 개어 사위는 적막하고
蕭條早寒至 이른 추위 찾아와 쓸쓸해지네
鳥棲紅葉樹 새는 붉게 물든 나무에 깃들고
月照青苔地 달은 푸른 이끼 낀 땅을 비추네
何況鏡中年 더구나 거울 속의 비친 내 모습
又過三十二 나이가 또 서른둘이나 지났거니

이 시는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32세 때인 803년에 장안에서 교서랑(校書郞)을 할 때 지은 시이다. 첫 2구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소개하고 제목을 풀이하였고 이후의 6구는 시인이 잠이 안 와 밖에서 서성이면서 본 가을 풍경과 자신의 상념을 서술한 것이다.

병들어 잠잔다는 말은 병들어 누웠다는 말이고 밤에 꿈이 적다는 말은 잠이 적다는 말이다. 잠이 적은 것을 운자를 고려해 ‘몽(夢)’ 자를 놓은 것이다. 그러니 자연 답답해 밖에 나가 바람을 쐬며 서성이다가 이런 시를 지은 것이다.

‘적막(寂寞)’과 ‘소조(蕭條)’는 각각 뒤에 나오는 비가 갠 상황과 이른 추위가 온 정경에 대한 자신의 정서를 드러낸 표현이다. 그러니 적막하고 쓸쓸한 상황에서 뒤의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뒤의 일로 적막하고 쓸쓸하다는 말이다. 조어(措語)의 도치이다.

어느덧 새가 깃드는 나무에 단풍이 들고 달빛이 이끼 낀 뜰에 비친다는 것은 계절의 변화를 드러낸 묘사이다. 앞에서 말한 적막감과 쓸쓸함에 계절의 변화가 가져다주는 상실감, 이런 감정의 변화가 ‘하황(何況)’이라는 점층의 허사 속에 반영되어 있다. 이 ‘하황’이 이끄는 구는 다음 구의 끝까지 걸린다. 자신의 나이와의 대비를 통해 그 상실감과 고독감을 강조하였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나이 든 모습을 보고 나이를 헤아려 보니 벌써 서른둘이나 지났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백거이가 가슴에 품은 포부를 펼치지 못하고 세월만 보냈다는 탄식으로 이해된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나 왕성하게 자라는 여름에는 미처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가 찬 바람이 불고 낙엽이 물드는 가을을 만나면 문득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얼 했는가? 이런 생각들이 일어난다. 한 해로 보면 가을에 해당하고 인생으로 보면 노년에 해당한다. 그런데 백거이가 32살에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마도 관계(官界)에서 자신의 관직이 역량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추사(秋思)라는 제목으로 시를 쓴 시인들은 매우 많다. 이백(李白), 두목(杜牧), 장적(張籍), 육유(陸游) 등등. 누구나 가을바람이 불면 한 번쯤 어느 구석진 곳에 앉아 자신도 모르게 턱을 괴거나 멍하게 않아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만큼 가을은 사람을 가라앉히는 묵직한 힘이 있다.

봄부터 지금까지 별로 쉬지도 못하고 일해 왔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다지 이룬 것도 없다. 그렇다고 열심히 일한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지금 시대에는 이 시인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이 시인보다 더 못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가을은 어쩌면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는 쓸쓸한 자기 자신에게 자신만이라도 따뜻한 밥과 술을 대접하고 적막한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이 시와 무관하게 드는 나의 가을 상념이다.

八大山人 山水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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