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양무제梁武帝 소연蕭衍 양양답동제 노래襄陽蹋銅蹄歌

양양답동제 노래襄陽蹋銅蹄歌/남북조南北朝 양무제梁武帝 소연蕭衍

草樹非一香 풀과 나무도 향기가 다 다르고
花葉百種色 꽃과 잎도 백가지 색깔이 나네
寄語故情人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을 전하니
知我心相憶 나인 줄 알고 나를 그리워하리

양무제(梁武帝, 464~549)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양나라를 세운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소연(蕭衍)인데 무략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 예술 전반에 걸쳐 식견이 높았던 인물이다. 그의 장남 소통(蕭統)이 《문선(文選)》을 편찬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양무제梁武帝 소연蕭衍

양양답동제가(襄陽蹋銅蹄歌)? 퍽 괴이한 제목이다.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며 이런 제목이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수서(隋書)》 <악지(樂志)>에 보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소연은 양양(襄陽)에서 거병하여 당시 제나라 수도인 건강(建康)으로 쳐 들어가 제 나라 동혼후(東昏侯)를 타도하였는데, 처음 그가 양양에 있을 때 민간에 이런 동요가 떠돌았다.

襄陽白銅蹄 양양의 백동 말발굽
反縛揚州兒 도리어 양주 건아를 포박하네

어떤 유식한 사람이 백동은 쇠의 색을 의미하니 그 말발굽은 철마, 즉 철기군으로 해석하였다. 나중에 소연이 철기군을 이끌고 건강으로 진격하였는데 동혼후의 군대들이 모두 포로가 되어 과연 이 노래와 부합하였다. 당시의 건강이 바로 양주이다. 이 동요는 일종의 참요(讖謠)였던 셈이다.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양 무제 진영에서 일부러 만들어 퍼뜨렸는지도 모른다.

당시 연극을 할 때 시를 지어 곡을 붙이고 그에 어울리는 춤을 추었는데, 이런 일이 있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황제가 된 양무제는 그 때 이 시를 지어 연극에 노래와 춤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원나라 시대로 보면 희곡에 들어가는 시인 셈이고 조선시대로 보면 악장이며, 요즘으로 보면 일종의 뮤지컬인 것이다. 결국 <양양답동제가>는 노래와 춤으로 공연되는 악극의 가사라고 정리할 수 있다.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이 시가 편집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악극에는 한 사람이 노래하면 여러 사람이 화답을 하는 구성이 있었다. 그 화답하는 가사중에 심약(沈約, 441~513)이 지은 ‘양양의 백동 말발굽, 성덕이 굳세게 오시네[襄陽白銅蹄, 聖德應乾來]’라고 한 것도 있다. 심약은 또 양무제의 시 제목과 형식을 그대로 사용하여 화답시를 짓기도 하였다.

이 시의 제목은 <양양답동제가(襄陽蹋銅蹄歌)>로 되어 있으니 본래 동요에서 ‘백(白)’ 자가 ‘답(蹋)’ 자로 바뀌었다. 의미가 ‘양양의 철기군이 짓밟고 오는 노래’로 되므로 더 분명해진다.

본래 이 시는 3수로 되어 있다. 첫 편은 전쟁에 나가는 남편과 이별하는 장면이며, 둘 째 편이 이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은 남편이 무공을 세우고 돌아오는데 이 사람이 바로 양양의 건아라는 내용이다. 그러니 이 가사는 당시 양나라가 제나라를 이기는 과정에 참여한 여러 민중들의 희생과 노고를 위무하고 앞으로의 결의와 다짐 이런 내용 속에 들어가는 한 대목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양양답동제가>의 의미와 성격이 고스란히 제목 속에 녹아 있다. 매우 괴상한 제목을 굳이 사용한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전체 구성은 그렇지만 이 한편의 시에서는 또 남녀 간의 각별한 저마다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글자도 몇 자 안 되지만 그에 담긴 의미는 훌륭하다. 풀과 나무, 꽃과 잎이 다 다르듯 내 사랑하는 사람이 어찌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는가?

한편 이 시 내용을 보면 예전에 소식을 전달할 때 편지로 써서 준 것 말고도 남에게 말을 전하며 말로 대신한 경우가 많은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지금 문맹률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말을 전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심심찮다. 어쩌면 오랜 구전 문화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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