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의 우주 1 -전통적 우주론의 문학적 집대성

전통적 우주론의 문학적 집대성

『서유기』는 단순한 모험담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상징으로 치장된,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수준에 따라서 다양할 수밖에 없는 해석의 깊이를 가진 철학서에 가깝다. 표면적으로 이 책은 승려를 중심인물로 등장시켜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불경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언뜻 불교를 칭송하고 전파하려는 목적을 가진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는 중국의 전통적인 도교와 유가의 철학이 복잡하게 얽혀 독특한 세계관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처럼 상징으로 엮인 철학서로서 이 소설에는 넓은 의미에서 우주란 무엇이고, 그 안에 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위상은 어떠하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존재론적 물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물론 이 소설을 상상으로 엮은 신나는 모험담으로 읽을 때에도 등장인물들의 면모와 그들이 활동하는 시공간은 여타의 사실적인 이야기들에 비해 매우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난해성과 독특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소설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우주의 형성 원리와 운행 질서에 관한 화자(또는 작자)의 설명이다. 이 소설의 첫머리에서 화자(작자)는 하늘-지상-지하, 신과 신선-인간-귀신과 요괴가 장엄한 순환의 원리 속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져 공존하는 우주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반도대회蟠桃大會 사진 출처 逗稀罕徐水 sohu.com

하늘과 땅의 운수는 십이만 구천 육백 년을 하나의 ‘원元’으로 삼는다. 그리고 하나의 ‘원’은 열두 간지干支에 따라 배열된 ‘회會’로 나뉘는데, 매 ‘회’는 일만 팔백 년에 해당하고, 날이 밝고 어두워지는 하루의 과정처럼 일정한 운행 원리에 따라 변천한다. 예를 들어서 술회戌會가 끝날 때에는 하늘과 땅이 어두워지고 만물의 운수가 막혀버렸다가, 해회亥會의 첫머리로 접어들 때면 어둡고 캄캄한 시대가 되어서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고 사물이고 모두 없어지게 되어 ‘혼돈’의 상태가 된다. 하지만 자회子會가 되면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생기며 하늘이 열리고, 축회丑會에는 땅이 형성되어 물과 불, 산, 돌, 흙이 생긴다. 그러다가 인회寅會가 되면 만물이 피어나 자라고, 인간과 온갖 짐승들이 생겨나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이라는 ‘세 개의 요소[三才]’가 완전히 갖춰진다(제1회 요약).

이에 따르면 우주는 한없이 순행하는 ‘원元’의 시공간이며, 현재의 인간은 다시 ‘원’ 안에서 순환을 거듭하는 ‘회會’ 안의, 그것도 열두 개의 ‘회’ 가운데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인회寅會’에서 비롯되어 ‘묘회卯會’에 걸쳐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미미한 일부분일 따름이다. 이러한 추론을 계속 이어나가면, 우주의 시공간은 ‘묘회’의 끝 무렵부터 칠만 오천 육백년이 될 무렵의 ‘해회亥會’의 어느 순간에 다시 찾아올 “어둡고 캄캄”하며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고 사물이고 모두 없어지게” 되는 ‘혼돈’의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새롭게 열린 우주에는 새로운 인간들이 열두 ‘회’의 시공을 채우는 역사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순환적 시공으로서 우주에 대한 명상은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자회’에서 ‘해회’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주기 동안 우주의 일부분을 이루며 살았던 인간과 온갖 짐승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들은 다시 ‘혼돈’의 무질서한 물질[氣]로 분해되었다가 다시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이전의 존재와는 아무 상관없는 새로운 존재로 유한하게 존재했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기계적으로 순환하는 화학 결합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롭고 안정적인 존재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이러한 영원한 존재가 가능하다면 그 과정은 무엇일까?

사실 이러한 물음들은 고대 중국이라는 역사적 시공을 통해 존멸하고 변천했던 수많은 철학과 문학, 종교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구체적인 개념어나 논리의 구축 과정은 다르지만, 거의 모든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우주가 혼돈에서 자발적 창조로, 그리고 쇠멸했다가 다시 일어나는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는 데에 동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간이 그러한 순환의 굴레를 벗어나 ‘지극한 도[至道]’와 하나가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논자들마다 고유한 설명 방식을 갖고 있었는데, 독특하게도 고대 중국에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이런 주제에 대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이들은 오늘날 우리가 넓은 의미에서 소설가라고 아우를 수 있는 부류의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한漢나라 때부터 육조 시대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던 방사方士들이다. 그들이 남긴 『산해경山海經』이나 『수신기搜神記』와 같은 ‘지괴志怪’ 저작은 오늘날 종종 중국 고전 소설의 초기적 형태로 간주되고 있지만, 사실은 우주의 구조와 운행 원리, 그리고 그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영원한 인간 존재에 대한 그들의 끝없는 탐구와 사색의 결과물이었다.

드라마 속의 태백금성太白金星 사진 출처 尚之潮 shangc.net

『서유기』는 오승은으로 대표되는 어느 작가가, 혹은 일군一群의 작자들이 문학적 방식으로 제시한 하나의 독특한 설명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전통적인 도교와 불교의 영향을 뚜렷이 받은 『서유기』의 화자(작자)에 의해 제시된 그러한 초월자의 궁극적인 모습은 신—부처와 신선, 그리고 신성神聖을 포함한—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는 이러한 궁극적인 초월자가 길고 부단한 수행을 통해 완성되는 존재라고 밝혔다. 가령 화자(작자)는 석가모니의 입을 빌어, 옥황상제—정확히 말하자면 금궐운궁金闕雲宮 영소보전靈霄寶殿에 살며, 최소한 명분상으로는 모든 초월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옥황대천존玉皇大天尊 현궁고상제玄穹高上帝(제1회)—가 어려서부터 도를 닦아 천오백오십 겁劫의 고행을 쌓아 무극無極의 대도大道에 오른 존재(제7회)라고 말한다. 한 겁은 십이만 구천 육백 년이므로 굳이 연수를 계산하자면 이억 팔십팔만 년에 해당하겠지만, 사실 여기서 그런 구체적인 수자는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은 그저 보통 인간의 능력으로는 상상조차 어려운 엄청나게 긴 세월을 의미하는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교의 최고 자리를 차지하는 석가모니부처나 도교의 삼청三淸—옥청원신천존玉淸元始天尊(혹은 천보군天寶君), 상청영보천존上淸靈寶天尊(혹은 태상도군太上道君), 태청도덕천존太淸道德天尊(혹은 태상노군太上老君)—을 비롯해서 서왕모西王母 역시 궁극적 초월자의 반열에 오른 존재들이며, 옥황상제도 존경할만한 도를 갖춘 존재들로 규정되어 있다. 당연히 이 초월자들 사이에도 수련의 정도와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서열과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공식적으로 옥황상제는 이러한 초월자들에게 각자의 등급에 따라 직위를 내리고, 자신이 우주를 주재하는 데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직책을 맡겨 관리한다.

이것은 사실 인간 세계 즉 중국의 황제가 천하를 다스리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초월자들의 세계에 대한 이러한 상상은 이미 중국에 불교가 들어오고 민간에서 도교가 제도적인 종교로 정착해가던 3세기 무렵부터 기본적인 틀이 갖춰지고 있었다. 그 후로 불교의 토착화와 도교의 제도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양자의 우주관도 전통적인 귀신[鬼] 신앙을 매개로 다양한 방식으로 융합되었다. 저승의 염라왕閻羅王이 ‘십대명왕十代冥王’—진광왕秦廣王, 초강왕楚江王, 송제왕宋帝王, 오관왕忤官王, 염라왕閻羅王, 평등왕平等王, 태산왕泰山王, 도시왕都市王, 변성왕卞城王, 전륜왕轉輪王—으로 분화되고, 여기에 취운궁翠雲宮의 지장왕보살地藏王菩薩까지 가세하게 되는 것도 이런 융합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융합은 지역과 종파宗派에 따라 개별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또한 신적이고 초월적인 세계의 신성한 권위에 대한 믿음이 이미 당나라 때부터 점차 빛이 바래지고 세속화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들 다양한 우주관을 통합하여 그리스 신들의 계보처럼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일이 종래 일어나지 않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명나라 때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서유기』의 화자(작자)는 기존의 개별적인 우주관들을 하나로 뭉뚱그려놓고 자신의 관점에서 필요한 부분만큼만 설명하려고 시도한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서유기』에 등장하는 하늘의 신들이나 저승의 여러 신귀神鬼들의 위계질서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저 명분상으로 모든 신들 가운데 옥황상제가 가장 위에 있으되, 석가모니부처와 태상노군, 서왕모 등 몇몇 신들이 그와 거의 대등한 신분임이 암시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이들보다 서열이 낮은 것으로 암시되는 나머지 신들은 모두 하늘나라에서 관직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다시 말해서 ‘수행’의 정도에 따라 서열이 나뉜다. 가령 ‘태을선太乙仙’과 ‘산선散仙’은 옥황상제로부터 벼슬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신선을 구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결국 이와 같은 벼슬의 차이는 수행의 정도에 정비례하는 신통한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식으로 높은 서열에 오른 신선들을 굳이 거론하자면, 서왕모가 주최한 ‘반도대회蟠桃大會’에 초청된 이들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하늘나라에서 관직을 갖지 못한 ‘아래세상[下界]’의 신선들과 요괴들을 제외한 나머지 신들은 개별적으로 전문화된 특별한 능력들을 갖고 있어서 서로간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대개 서로를 인정하고 공경해주는 관계로 설명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초월적 존재로서 신은 제우스나 여호와처럼 태초 이전부터 영원 이후까지 항상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서유기』 제3회에서 화자(작자)가 태백금성太白金星—태백장경성太白長庚星이라고도 함—의 입을 빌려 강조하고 있듯이, 삼계三界—신선들의 세계인 하늘과 인간들의 세계인 땅 위, 그리고 귀신들의 세계인 유명계幽冥界—의 생물 가운데 아홉 구멍[九竅]을 가진 것들은 모두 신선의 도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십팔수二十八宿’의 경우처럼, 현대적 의미에서 ‘생물’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도 오랜 기간을 수련하여 정령精靈이 되고, 나아가 지고한 하늘의 신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일견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보이는, 그래서 그 형상의 기원에 대해 말도 많은 돌 원숭이[石猴] 손오공의 존재는 적어도 고대 중국인들의 우주관 속에서는 어쨌거나 그다지 낯선 상상의 산물이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