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애승람瀛涯勝覽-자바 왕국爪哇國 2

자바 왕국爪哇國

이 나라 국민은 세 등급으로 나뉜다. 하나는 회회인(回回人)으로 모두 서양 각 나라에서 장사를 하며 떠돌다가 이곳으로 온 사람들인데 옷차림과 음식 등이 모두 청결하고 운치가 있다. 또 하나는 당인(唐人)인데 모두 광동과 장주, 천주(泉州) 등에서 몰래 이곳에 와서 사는 사람들이며 음식이나 일용품이 역시 훌륭하고 깔끔하다. 이들 가운데는 회교를 따라 재계하는 이들이 많다. 다른 하나는 원주민인데 생김새가 무척 추하고 기이하다. 원숭이 같은 머리에 맨발로 지내면서 귀신을 믿는다. 불교 경전에 “그 안에 귀신의 나라가 있다.”라고 있는데, 바로 이곳을 가리킨다.

國有三等人, 一等回回人, 皆是西番各國爲商流落此地, 衣食諸事皆淸致. 一等唐人, 皆廣東漳泉等處人竄居此地, 食用亦美潔, 多有從回回敎門受戒持齋者. 一等土人, 形貌甚醜異, 猱頭赤脚, 崇信鬼敎. 佛書言鬼國其中, 卽此地也.

사람들이 먹는 것은 무척 더럽고 혐오스러우니, 예를 들어서 뱀이나 개미, 벌레, 지렁이 같은 것들을 불에 대충 익혀서 바로 먹는다. 집안에서 기르는 개는 사람과 같은 그릇에 밥을 먹으며 밥에는 함께 자는데 거리낌이 없는 듯하다. 옛날 전설에 귀신의 아들 마왕은 푸른 얼굴에 붉은 몸뚱이, 시뻘건 머리카락을 가졌는데 바로 여기서 물귀신[罔象]과 결합하여 백여 명의 자식을 낳았으며 늘 피를 음식으로 먹어서 잡아먹힌 사람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천둥과 함께 벼락이 떨어져서 바위가 갈라졌는데, 그 안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고 왕으로 추대했다. 그는 곧 날랜 병사들을 시켜서 물귀신 무리를 내쫓아 해를 끼치지 못하게 했는데, 훗날 다시 그들의 후손이 여기에 살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이 대단히 사납고 억세다고 한다.

人吃食甚是穢惡, 如虵蟻及諸蟲蚓之類, 略以火燒微熟便吃. 家畜之犬, 與人同器而食, 夜則共寢, 略無忌憚. 舊傳鬼子魔王靑面紅身赤髮, 正於此地與一罔象相合, 而生子百餘, 常啖血爲食, 人多被食. 忽一日雷震石裂, 中坐一人, 衆稱異之, 遂抽爲王, 卽令精兵驅逐罔象等衆而不爲害, 後復生齒而安焉. 所以至今人好兇强.

해마나 한 차례 죽창회(竹鎗會)가 열리지만 10월을 초봄으로 삼는다. 국왕은 아내를 탑차(塔車)에 태워 앞세우고 자신은 수레를 타고 뒤따르는데, 그 탑차는 높이가 한 길 남짓이고 사방에 창문이 나 있으며, 아래쪽에 수레바퀴가 있어서 앞쪽에서 말이 끌고 간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면 양편으로 대오가 늘어서는데 각기 죽창을 하나씩 들고 있다. 그 죽창은 속이 채워져 있고 쇠로 된 칼날은 없지만 끝을 뾰족하게 깎아서 무척 견고하고 날카롭다. 대결하는 남자는 각기 아내와 노예를 자기편에 데리고 나오는데, 아내들은 각기 석 자 정도의 짧은 나무 몽둥이를 들고 그 무리 속에 서 있다. 빠르거나 느리게 울리는 북소리를 신호로 두 남자가 창을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가 서를 향해 찌르는데, 세 차례 접전이 끝나면 두 사람이 아내들이 각기 나무 몽둥이를 들고 사이를 갈라놓으며 “나라(那剌), 나라!” 하고 외친다. 그러면 양측이 물러나고, 찔려 죽은 이를 설정한다. 왕은 승자에게 죽은 이의 가족에게 금화 하나를 주라고 명령하며 죽은 이의 아내는 승리한 남자를 따라 떠나는데, 이런 식의 승부를 재미 삼아 공연한다.

年例有一竹鎗會. 但以十月爲春首, 國王令妻坐一塔車於前, 自坐一車於後, 其塔車高丈餘, 四面有窗, 下有轉軸, 以馬前拽而行. 至會所, 兩邊擺列隧伍, 各執竹鎗一根, 其竹鎗實心無鐵刃, 但削尖而甚堅利. 對手男子各攜其妻奴在彼, 各妻手執三尺短木棍立於其中. 聽皷聲緊慢爲號, 二男子執鎗進步抵戳, 交鋒三合. 二人之妻各以手執木棍格之, 曰, 那剌, 那剌, 則退散, 設被戳死. 其王令勝者與死者家人金錢一箇, 死者之妻隨勝者男子而去, 如此勝負爲戲.

혼인 예절은 남자가 먼저 여자 집으로 가서 부부가 되고, 사흘 후에 신부를 맞이해 간다. 남자 집에서는 동고(銅皷)와 동라(銅鑼), 야자 껍질로 만든 피리, 대나무 통으로 만든 북을 울리고 화총을 쏘며 앞뒤에서 짧은 칼과 둥근 방패를 든 이들이 신부를 에워싼다. 신부는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벌거벗은 채 맨발이지만, 실을 박아 장식한 수건을 두르고 머리에는 황금이나 진주를 꿴 장식을 달고 손목에는 금은과 보석으로 치장한 팔찌를 찬다. 친우들과 이웃들은 빈랑과 구장 잎, 풀과 꽃으로 엮은 띠 따위로 오색 배를 장식하여 함께 따라가며 전송하는 것을 축하 예절이라고 여긴다. 집에 도착하면 징과 북을 울리고 술을 마시면서 풍악을 연주하는데, 며칠 동안 그렇게 한 뒤에 해산한다.

凡婚姻之禮, 其男子先至女家成親, 三日後迎其婦. 男家則打銅皷銅鑼, 吹椰殼筒, 及打竹筒皷, 幷放火銃, 前後短刀團牌圍繞, 其婦披髮裸身跣足, 圍繫絲嵌手巾, 頂珮金珠聯絡之飾, 腕帶金銀寶裝之鐲. 親朋鄰里以檳榔荖葉線紉草花之類, 粧飾彩船而伴送之, 以爲賀喜之禮. 至家則鳴鑼擊皷, 飲酒作樂, 數日而散.

장례는 부모가 임종할 때 자녀가 먼저 부모에게 죽은 후에 개에게 먹일 것인지 화장할 것인지, 아니면 물속에 버릴 것인지 묻고, 부모가 바라는 대로 부탁하면 사후에 유언에 따라 보내 준다. 개의 먹이가 되고 싶다고 하면 그 시신을 들것으로 들어서 바닷게나 야외에 두는데, 십여 마리의 개들이 와서 시체를 먹어 치운다. 이때 남아 있는 살이 없으면 좋고, 깨끗이 먹지 못하면 그 자녀들이 슬피 통곡하며 유해를 물속에 버리고 떠난다. 또 부자와 우두머리 등 존귀한 이가 죽으려 하면 수하의 사이가 가깝고 애정이 돈독한 하녀와 첩들이 먼저 주인에게 맹서한다.

“돌아가시면 함께 가겠어요!”

그리고 사후에 장사지내는 날이 되면 나무로 높이 탑을 세우고 그 아래쪽에 장작을 쌓아 불을 붙여서 관을 태운다. 불꽃이 활활 타오를 무렵이면 원래 맹서했던 하녀와 첩 두세 명이 머리에 가득 화초를 장식하고 오색 꽃무늬가 장식된 수건을 몸에 두른 채 탑에 올라가 껑충껑충 뛰며 한참 동안 통곡하다가 불길 속으로 뛰어내려 주인과 함께 불길에 산화하는데, 그것을 순장(殉葬)의 예법이라고 여겼다.

喪葬之禮, 人家父母將死, 爲兒女者先問於父母, 死後或犬食, 或火化, 或棄水中, 其父母隨心所願而囑之, 死後卽依遺言所斷送之. 若欲犬食者, 卽擡其屍至海邊, 或野外地上, 有犬十數來食盡屍肉, 無遺爲好, 如食不盡, 其子女悲號哭泣, 將遺骸棄水中而去. 又有富人及頭目尊貴之人將死, 則手下親厚婢妾先與主人誓曰, 死則同往. 到死後出殯之日, 木搭高棰, 下垜柴堆, 縱火焚棺. 候燄盛之際, 其原誓婢妾二三人, 則滿頭帶草花, 身披五色花手巾, 登跳哭泣良久, 攛下火內, 同主屍焚化, 以爲殉葬之禮.

이 나라 사람들 가운데는 부유한 이들이 아주 많고, 장사와 교역을 할 때에는 중국의 역대 동전들을 사용한다. 글로 기록하는 데에도 문자가 있는데 촐라(鎖俚, Čola) 문자와 같다. 종이와 붓이 없어서 갈대의 일종인 카장(茭葦, Kajang) 잎에 뾰족한 칼로 새기는데, 거기에도 문법이 있다. 이 나라 말은 무척 아름다고 부드럽다.

番人殷富甚多, 買賣交易俱用中國歷代銅錢. 書記亦有字, 如鎖俚字同. 無紙筆, 用茭葦葉以尖刀刻之, 亦有文法. 國語甚美軟.

무게를 다는 법은 20냥(兩)이 한 근(斤)이고, 16전(錢)이 한 냥이며, 4쿠팡(姑邦, Kupang)이 한 전이다. 한 쿠팡은 관청의 저울로 두 푼[分] 일 리(釐) 8호(毫) 7사(絲) 5홀(忽)이고, 한 전은 관청 저울로 8푼 7리 5호이며, 한 냥은 관청 저울로 한 냥 4전, 한 근은 관청 저울로 28냥이 되어야 한다. 곡물을 되는 법은 대나무를 잘라 되[升]를 만들고 그것을 한 쿨락(姑剌, Kulak)이라고 하는데, 중국 관청의 되로 따지면 한 되 8홉[合]에 해당한다. 이 지역 말[斗]의 한 말은 날리(㮈黎, nali)라고 하는데, 중국 관청의 말로 따지면 한 말 넉 되 네 홉에 해당한다.

斤秤之法, 每斤二十兩, 每兩十六錢. 每錢四姑邦, 每姑邦該官秤二分一釐八毫七絲五忽. 每錢該官秤八分七釐五毫. 每兩該官秤一兩四錢. 每斤該官秤二十八兩. 升斗之法, 截竹爲升, 爲一姑剌, 該中國官升一升八合. 每番斗一斗爲一㮈黎, 該中國官斗一斗四升四合.

매월 15일과 16일 밤에는 이 나라의 아낙 20여 명 또는 30여 명이 모여서 무리를 이루고, 아낙 한 명이 우두머리가 된다. 이들은 팔에다가 차례대로 끈을 묶어 끊어지지 않게 한 채 달빛 아래에서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우두머리가 이 지역의 노래를 한 구절 부르면 무리가 일제히 소리를 맞추어 화창(和唱)한다. 그렇게 친척이나 부귀한 집안의 대문 앞에 도착하면 동전 등의 물건을 준다. 이것을 ‘달빛 밟기[步月]’라고 부르는데, 즐기기 위한 놀이일 따름이다.

每月至十五十六月明之夜, 番婦二十餘人或三十餘人, 聚集成隊, 一婦爲首, 以臂膊遞相聯綰不斷, 於月下徐步而行. 爲首者口唱番歌一句, 衆皆齊聲和之. 到親戚富貴之家門首, 則贈以銅錢等物. 名爲步月, 行樂而已.

어떤 이들은 종이에 인물과 날짐승, 들짐승, 매, 벌레 따위를 그리는데 두루마리처럼 생겼다. 석 자 높이의 나무 두 개로 그림을 세우는 틀로 삼는데, 그저 머리와 나란한 높이이다. 그 사람은 땅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그림을 땅 위에 세운 채 한 단락씩 펼쳐 보이면서 앞을 향해 이 지역 말로 소리 높여 그 단락의 내력을 해설한다.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들으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니 그야말로 중국에서 ‘평화(平話)’를 공연할 때와 마찬가지이다.

有一等人以紙畫人物鳥獸鷹蟲之類, 如手卷樣. 以三尺高二木爲畫榦, 止齊一頭. 其人蟠膝坐於地, 以圖畫立地, 展出一段, 朝前番語高聲解說此段來歷. 衆人圜坐而聽之, 或笑或哭, 便如說平話一般.

이 나라 사람들은 중국의 청화자기(靑花磁器)와 사향(麝香), 소금저사(銷金紵絲), 소주(燒珠) 따위를 아주 좋아해서 보는 즉시 동전을 가져와 산다. 국왕은 늘 우두머리를 파견하여 배에 토산품을 싣고 중국에 가서 공물로 바치게 한다.

國人最喜中國靑花磁器幷麝香銷金紵絲燒珠之類, 則用銅錢買易. 國王常差頭目以船隻裝載方物進貢中國.

사진 출처 全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