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왕유王維 망천에서 한가롭게 지내며 수재 배적에게輞川閒居贈裵秀才迪

망천에서 한가롭게 지내며 수재 배적에게輞川閒居贈裵秀才迪/당唐 왕유王維

寒山轉蒼翠 차가운 산 점점 짙푸르러 가고
秋水日潺湲 가을 물은 날마다 졸졸 흐르네
倚杖柴門外 사립문 밖에 지팡이 짚고 서서 
臨風聽暮蟬 바람 쐬며 저녁 매미 소리 듣네
渡頭餘落日 나루터엔 저녁놀이 남아 감돌고
墟里上孤煙 촌락에는 한 줄기 밥 짓는 연기
復值接輿醉 다시 접여를 우연히 만나 취해
狂歌五柳前 오류수 앞에서 마음껏 노래하네

배적(裵迪)은 왕유보다 열 몇 살 어린 사람인데 망천에서 왕유와 이웃해 살면서 시를 주고 받은 인물이다. 유명한 <망천 20경>은 배적과 창화한 시이다. 이 시에서는 《논어》에 나오는 초나라 광인 접여(接輿)에 비유하여 세상을 완전히 잊고 사는 은자에 비유하고 있다. 접여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떠도는 공자에게 오늘날 정치를 하는 것은 위태롭다며 만류하는 노래를 부르고 사라진 인물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는 이 접여의 정신과 닿아 있다. 도연명은 자기 집 앞에 버드나무 5 그루를 심고 자전 수필 <오류선생전>을 썼다. 그래서 도연명을 그린 그림에는 언제나 집 앞에 버드나무가 그려져 있다.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는 집, 즉 도연명 선생 댁 앞에서 마음껏 노래부른다는 말은 자신의 집이 있는 망천에서 접여와 같은 은자인 배적을 만나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면서 즐겁게 지낸다는 말이다. 이 시는 아마도 배적이 망천으로 온 초기에 지은 작품으로 추정된다.

첫 두 구에선 망천의 아름다운 가을 산수를 드러냈다. 산은 가만히 있으니 ‘점점 변해간다’는 동적인 부사 ‘전(轉)’ 자를 놓았고, 물은 계속 움직이니 변하지 않는다는 ‘매일’이라는 의미의 ‘일(日)’ 자를 놓았다. 이어 사립문 앞에서 지팡이 짚고 바람을 쐬며 매미 소리를 듣는 한가한 자신의 생활을 말했다. 이 둘을 합하면 제목의 망천한거(輞川閒居)를 표현한 것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다음 두 구가 참으로 좋다. 사람이 다 갈 곳으로 떠난 휑한 나루터에 저녁 석양만이 비치고 있고 촌락에는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한 줄기 피어오른다. 그윽한 화경(畵景) 속에 외로운 정까지 담았다. 가운데 4구는 특히 화의가 풍부해 한 폭의 <망천추경한거도(輞川秋景閒居圖)>라 할 수 있다.

마지막엔 이 시를 받는 배적에게 그대와 만나 즐겁다는 의사 표현을 하고 있다. 이곳 망천에서 접여 같이 세상을 완전히 잊은 그대를 만나 즐겁고 의지가 된다고.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게 된다. 도연명은 접여의 정신을 이었고 왕유는 다시 도연명의 정신을 잇고 있음을 저절로 알게 된다. 고인들의 정신 계승이 이와 같다.

요즘 산책을 나가 보면 풀들도 키가 부쩍 자랐고 나무들도 잎이 최대한 무성해졌다. 그리고 하늘과 수목에 점점 청명하고 상쾌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여행하기도 좋고 친구를 만나기도 좋고 시를 읽기도 좋고 생각하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明 仇英 <辋川十景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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