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상건常建 왕창령의 은거지에 묵으며宿王昌齡隱居

왕창령의 은거지에 묵으며宿王昌齡隱居/당唐 상건常建

清溪深不測 맑은 계곡은 깊이를 알 수 없고
隱處唯孤雲 은거지엔 한 조각구름 떠 있네
松際露微月 소나무 가지 끝 초승달 떠오르니
清光猶爲君 맑은 빛은 아직도 그댈 위한 듯
茅亭宿花影 띳집 정자엔 꽃 그림자 잠들고
藥院滋苔紋 약초 정원엔 이끼 문양 번지네
余亦謝時去 나 역시 이 세상을 버리고 가서
西山鸞鶴群 서산의 난새와 학 함께 살려 하네

상건(常建, 708~765)의 시로는 147회에 이어 두 번째로 보는 시인데 《당시삼백수》에 실려 비교적 잘 알려진 시이다. 두 편의 시는 모두 상건의 대표작이자 청나라 때 신운파(神韻派)들이 높이 추앙하는 작품이다.

왕창령(王昌齡, 698~755)은 상건 보다 10살이 많은데 과거에 급제하기 이전에는 석문산(石門山)에 은거하였다. 상건은 왕창령과 727년에 과거에 함께 급제한 친구이다. 이 시는 상건이 벼슬을 그만두고 왕창령의 빈 거처를 일부러 찾아가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왕창령은 은거하다 세속으로 나왔고 이 시인은 벼슬을 하다가 은거하기 위해 떠나가는 길이다.

상건의 시는 요즘 사람이 읽으면 정말 비타민 음료를 마시는 것 같은 청량감을 준다. 소나무 가지 끝에 얼굴을 삐죽 내민 초승달은 아직도 이 집에 살았던 왕창령을 못 잊어 엿보는 것 같다. 어디 그 뿐인가. 띠로 지붕을 이은 빈 정자에는 그가 심은 꽃 그림자가 대신 와서 잠들고 약초를 가꾸었던 정원에는 이끼가 동글동글 번지며 자라나고 있다. 은자가 희롱하고 손길이 닿은 사물의 연연함과 원시로 회귀하는 자연의 본성을 대비하여 인간 존재의 기억과 망각이 교차하는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사물을 보는 이런 시선을 보면 상건은 정말 불도를 닦거나 도인이 되어야 할 팔자인데 시인으로 살아간 것만 같다.

글자 한 자 한 자가 세속을 초탈하는 오묘함이 있고 경치와 정서가 융합된 함축이 있다. 특히 송제로미월(松際露微月), ‘소나무 끝에는 가는 달이 드러나고’같은 구절은 글자를 놓은 게 지극히 묘미가 있는데, 가지 끝을 ‘제(際)’로 표현한 게 더욱 묘하다. 또 모정숙화영(茅亭宿花影), ‘띳집 정자에는 꽃 그림자가 잠들고’ 같은 구절은 도저히 일반 사람은 생각하기 어려운 구절로 시의 깊은 맛을 낸다.

오늘날도 많은 시인들이 자연물과 인간의 감정을 연결하는 은유나 상징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 보면 남과 다른 자신의 시세계를 만들기 위해 자신도 잘 알지 못하거나 말이 잘 연결되지 않는 비유를 구사하여 모호한 표현을 시적인 표현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 내용은 별 것 아니면서 있는 것처럼 꾸미자니 말만 인플레가 되는 것이다. 한시 작가들의 의미가 분명하면서도 깊은 비유들은 이들과 비교하여 확실히 돋보인다. 생각과 삶이 분명하고 깊지 않으면서 어떻게 시만 홀로 그렇게 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宋 夏圭 《松溪泛月图页》 출처 国艺金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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