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수레-UFO와 외계인 1

3. UFO와 외계인 1

흔히 비행접시로 더 널리 알려진 UFO(Unidentifical Flying Object)는 특히 서구의 공상과학소설과 영화에서 종종 현대 지구에 사는 인간의 기술을 훨씬 초월한 외계인의 우주선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이른바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 물체’라는 원래의 의미에 좀 더 충실한다면, 우리는 고대 중국인들의 기록 속에서도 수많은 UFO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이런 기록들에 나타나는 UFO가 항상 외계인과 연계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현재 자신의 과학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행체에 대해 목격자들이 느끼는 경이와 공포는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에서나 본질적으로 유사했을 것이다.

하늘의 개 또는 외계인

고대 중국의 경우 이런 신비한 비행체는 대개 날개가 둥근 커다란 새라든가 하늘을 나는 배, 빛나는 달, 또는 유성流星을 가리키는 별명인 ‘천구天狗’ 즉 ‘하늘의 개’와 같은 명칭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1672년에 항저우杭州에서 목격된 ‘배’는 끝이 뾰족하고 긴 부리 같은 것이 달려 있으며, 몸체의 윗부분은 붉은색이고 아랫부분은 푸른색인데, 불꽃으로 된 긴 꼬리를 마치 혜성처럼 늘어뜨리며 날아갔다고 한다. 또한 정확히 모양은 식별할 수 없지만, 빛을 발산하는 모습이랄지, 날아다니는 모양 따위를 상세하게 묘사한 기록도 많다.

명나라 가정嘉靖 40년(1561) 6월 24일 저녁, 하늘 서북쪽에 됫박 하나 정도의 물건이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넓었다.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그 물체의 아래 부분에는 자주색이 둘러져 있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말[斗]만큼 커지면서, 사방으로 밝은 빛을 내쏘았다. 땅에 도달할 무렵에 다시 빛과 그림자가 어지럽게 난무했는데 …(중략)… 땅에 떨어질 때에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진해현지鎭海縣志·상이지祥異志》에서

아무리 보아도 현대의 UFO 목격담과 너무 유사한 이 이야기는 명나라 때에 기록된 공식적인 지방지의 한 부분이다. 오늘날 저쟝성浙江省 닝뽀寧波 부근에 해당하는 그 작은 마을의 역사 기록을 담당한 사람은 이 일을 ‘상서롭고 이상한[祥異]’ 사건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그는 그 오렌지색의 빛나는 물체가 출현했던 주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처럼 집단적으로 목격된 UFO에 대한 기록은 역대의 여러 문헌들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예를 들어서, 송宋나라 유질劉質이 쓴 《근이록近異錄》에는 북송北宋 영종寧宗의 경원慶元 2년(1196) 10월 20일 자정 무렵에, 당시 지금의 저쟝성 항저우杭州에 해당하는 임안臨安과 그 부근의 가흥嘉興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던 사람들이 모두 목격했다는 쟁반처럼 둥근 ‘달’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음력 10월 20일이면 본래 달이 뜨더라도 하현下弦의 반달이 떴어야 할 것이니, 이 기록에 나타난 ‘달’도 역시 환하게 빛나는 접시 모양의 비행체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흔히 알려진 것처럼, UFO는 인류보다 훨씬 과학기술이 발달한 외계인의 우주선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아마 중국에 전해지는 다음의 이야기도 그런 추측에 동조하는 사람들에겐 솔깃하게 들릴 것이 분명하다.

외계인을 만난 사내

광서光緖 3년(1877) 7월 7일 저녁이었다. 예부터 중국의 큰 상인들이 몰려 사는 곳이라, 화려한 정원과 정자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저택들이 즐비한 양주揚州 땅도 이날따라 더 고요한 어둠에 덮이고 있었다. 칠석이라고 낮부터 흥청거리던 시내의 거리도, 화사하게 차려입은 남녀들로 붐비던 교외의 호수도 이제 곤한 하루를 접고 단잠에 빠지려 하고 있었다.

“휴, 책 속에 있다는 길은 온통 미로뿐이로구나!”

그는 읽던 책을 탁 덮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남자의 것치고는 좀 가늘다 싶은 손가락 밑으로 왕부지王夫之, 황종희黃宗羲와 더불어 청나라 초기의 삼대 학자로 꼽히는 고염무顧炎武의 철학적 명상록인 《일지록日知錄》이라는 제목이 슬쩍 가려진 채 드러나 있었다. 책상 맡의 흐린 불빛 탓에 더욱 창백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흔히 가난과 수심이 뒤엉킬 때 자주 생기는 파리한 그림자가 덮여 있었다. 몸에는 단정하긴 하지만 바느질도 거칠고 천 색깔마저 조금 바랜 홑옷을 걸치고 있었고, 얇은 천으로 뒤꿈치를 터서 만든 검은색 신을 신고 있는 발에 양말조차 신지 않은 모습은 그가 제법 오랫동안 이 방에 틀어박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실 올해로 나이 스물아홉이 되는 그는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한 채, 홀어머니와 더불어 이곳 양저우 교외의 허름한 집에 살고 있었다. 거인擧人의 신분으로 북경 한림원翰林院 학사學士를 지낸 증조부 조趙 아무개의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은 그 동안 꾸준히 쇠락을 거듭해온 가세를 반영하듯,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한 때 그의 집안에 속해 있던 멋진 연못과 많은 정자들이 어우러진 정원은 그의 부친이 어렸을 때부터 이미 남의 소유로 넘어가버린 상태였고, 그나마 안채로 사용되던 이 건물만 간신히 그에게까지 물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정원의 주인들이 세운 높은 담장 밖에 내쫓긴 채, 한 때 꽃밭이었던 땅을 일궈 만든 초라한 텃밭으로 마당을 대신하고 있는 이 건물은 이미 곳곳이 허물어지고 지붕의 기와도 거의 무너진 상태였다. 밭 사이로 만든 열 걸음 남짓한 길을 지나면 바로 골목길로 이어졌지만, 입구에는 변변한 출입문조차 없었다. 그저 잘 다듬은 작은 돌로 꼼꼼하게 포장된 골목길과 누런 흙이 드러난 텃밭 사이의 길이 자연스럽게 경계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었다.

쉰 살에 가까워지는 그의 모친은 가난과 병치레 때문에 벌써 흰머리가 가득하고, 등조차 눈에 띄게 구부러져 있었다. 그나마 아직 쓸 만한 시력 덕분에 삯바느질로 집안의 생계를 꾸리면서도 그녀는 아들로 하여금 일체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공부에만 열중하도록 엄하게 다그쳤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이 부근에서 증조부의 명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덕분에 최소한 그가 공부할 책을 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점이었다. 또한 착실하고 꼼꼼한 성격을 타고난 그가 부친과 조부의 친우들로부터 빌린 책들을 항상 깨끗하게 보고 제 때에 돌려줬기 때문에, 모두들 책을 빌리러 오는 그를 박정하게 대하는 일이 드물었다. 심지어 지금 읽고 있는 《일지록》과 같은 비교적 귀한 책을 많이 소장하고 있고, 덕분에 요즘 들어 그가 가장 자주 찾아가는 조대인曹大人은 종종 일부러 마음을 써서 짐짓 그에게 독서 소감을 묻는다는 핑계로 귀한 차와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정부에서 관장하는 소금 전매에 참여하여 배를 통한 운송과 시장 판매까지 겸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 상인은 평소에도 주변의 저명한 문인들과 화가들을 초청하여 대접하는 일이 잦았고, 심지어 그의 집에 식객의 신분으로 몇 년째 묵고 있는 사람도 기십 명이나 되었다.

“올바른 길이라…….”

찾기도 어렵고, 설령 찾았다 하더라도 가기는 어려운 그 길을 고염무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문장을 통해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세상의 도리를 밝히고, 정사政事를 기록하고, 백성들의 실상을 드러내고, 인간의 선한 본성을 말해주는 그런 문장이야말로 진정한 선비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십여 차례나 향시鄕試에서 좌절을 맛본 그에게 책 속의 이야기는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는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부친에게서 글을 배웠고, 열두 살에 갑작스럽게 닥친 이름 모를 병으로 부친을 여읜 후로는 모친의 감독 아래 서당을 다니며 글공부에 전념해왔다. 그러다가 열일곱부터는 한두 해마다 치러지는 향시에 응시하기 시작해서 여태 급제를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그렇고 주위의 평가에서도 자신은 결코 둔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서당의 훈장이 학비도 받지 않고 관심을 기울여주던 뛰어난 학생이었지만, 십 년이 넘도록 생원生員 자리에도 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결코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은 그 자신을 포함한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요즘의 학위도 관직도 학문이 아니라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이 지역에서는 매우 드물었다. 그나마 이따금 가난한 집안의 후손으로 그런 지위를 얻어낸 성공 사례가 몇몇 있었다는 사실이 그와 같은 처지에서 과거를 준비하는 서생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이런저런 고뇌를 떨쳐버리려는 듯 갑자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불쑥 밀려오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주전자에 담긴 식은 찻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데 그가 다섯 모금 째의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려는 순간, 문득 눈앞이 환해지면서 현기증이 일어났다. 독서와 생각에 몰두하느라 너무 오랫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든 탓일까? 아니면 오랜 영양부족으로 인한 빈혈 때문일까? 사실 요즘 들어 그는 심한 두통과 먹은 것도 없는데 자꾸 치솟는 구토 증세에 시달리는 일이 잦았고, 그로 인해 혼절하는 일도 가끔씩 일어나곤 했다. 그는 잠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까닭 모를 그 고질병이 다시 도지려는 것인가?

그러나 그는 이내 지금의 이 현상이 자신의 고질병과는 상관이 없음을 깨달았다. 창문을 태울 듯한 그 환한 빛이 북쪽 담장 위에 있는 무언가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옆집에 불이라도 났나?’

그는 급히 밖으로 뛰쳐나가 북쪽 담장 너머를 쳐다보았다.

빛의 원인은 불이 아니었음이 금방 밝혀졌다. 그의 눈에 비친 담장 위에는 수레 바퀴만한 크기의 붉은 공이 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방으로 화려한 빛을 내쏘며 구름 끝자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주위는 대낮처럼 환했고, 희미하게 무슨 소리까지 함께 들려왔다.

그는 부신 눈을 찌푸리며 한참 동안 그 빛나는 공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그는 문득 붉은 공에서 쏟아진 빛줄기 가운데 하나가 아주 짧은 순간 그의 얼굴을 스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뒤이어 망막에 인두를 지지는 듯한 통증이 그의 모든 신경을 마비시켜버렸다. 주위의 풍경이 온통 하얗게 변해가면서, 그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누군가 허공에서부터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장면을 얼핏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감각과 생각은 여기서 끊어져버렸다.

이튿날 양주 시내는 새벽부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로 성안 전체가 시끄러웠다. 사람들은 모두들 간밤에 목격한 그 이상한 물체에 대해 쑥덕거리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간밤의 그 물체는 대략 밥 한 그릇을 먹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구름 너머로 사라졌다고 했다. 그 물체가 남긴 빛의 잔재는 그로부터 삼십 분이 넘도록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정체를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주민의 수도 얼마 되지 않는 양주 교외의 한 마을에서는 조씨 집안의 늙은 과부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마을 골목과 들판을 헤매며 아들을 찾고 있었다. 다만 기이한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아들의 시신이라는 점이었다. 노파의 두서없는 넋두리를 종합해보면, 그녀의 사연은 황당하면서도 충분히 주위의 동정을 살 만한 것이었다.

《吴有如画宝》, <赤炎腾空图> 출처 ufoet.com

간밤의 괴사가 일어났을 때, 그녀 역시 영문도 모른 채 잠에서 깨어났다. 노파는 직감적으로 이 빛이 상서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고, 옆방의 아들을 불렀다. 아무래도 이런 경우에는 가까운 누군가가 함께 있는 편이 두려움을 더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 번을 불러도 아들에게서는 응답이 없었고, 곧 아들에게 무슨 사단이 생겼다는 직감이 그녀의 온몸에 소름처럼 빠르게 번졌다. 그녀는 망설일 것 없이 방문이 뜯어져라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대낮처럼 환한 마당,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텃밭의 풍경이 맹수의 숨결처럼 그녀의 얼굴로 확 쏟아졌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골목으로 향하는 길 중간쯤에서 썩은 빗자루처럼 무너지는 아들의 모습이 아주 느린 동작으로 하나하나 그녀의 눈동자를 파고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 멈칫하던 그녀는 눈알이 몽땅 튀어나올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입을 딱 벌리고 아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열 걸음도 채 안 되었던 그녀와 아들 사이의 거리는 날이 새도록 좁혀지지 않았다. 그녀가 막 두어 걸음을 떼어놓는 순간, 갑자기 텃밭으로 쏟아지는 강렬한 빛이 그녀의 시신경을 잠시 마비시켜버렸고, 잠시 후 시력이 회복되었을 때에는 응당 텃밭에 쓰러져 있어야 할 아들의 모습이 사라져버린 후였기 때문이었다.

점심 무렵이 되자 양주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뒷받침해줄 만한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양주에서 북쪽으로 백리 쯤 떨어진 고우현高郵縣에서도 간밤에 이상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고우현의 대표적인 호수인 벽사호甓社湖의 수면에 간밤에 어떤 큰 물체가 비춰지면서 햇빛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빛났는데, 빛나는 그 물체는 남쪽에서 날아와 서북쪽으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양주 교외의 이웃들은 불쌍한 조씨 과부를 동정했지만, 그들로서도 특별히 그녀를 도와줄 만한 방법이 없었다. 처음에 그들은 그녀를 위로하면서 마을 구석구석과 들판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결국 모두들 단념하고 노파를 도와 시신 없는 장례를 치르게 했다. 그리고 이틀째 음식도 거른 채, 아들의 위패를 부둥켜안고 통곡하다가 혼절하기를 몇 번이나 계속하는 그녀를 돌보기 위해 부녀자들이 순번을 정하기로 했다.

서산 너머로 잠긴 7월 11일의 태양이 남기고 간 고운 노을은 이제 점차 어둠에 묻히면서 스러져가고 있었다. 정원사 서삼徐三의 늙은 아내는 자기 집에서 준비해온 쌀죽 한 주발에 야채를 절여 만든 간단한 밑반찬을 쟁반에 차려 들고 노파의 침실로 들어섰다. 아직 불도 밝히지 않은 상태인데다 향냄새가 자욱한 침실 안은 무덤 같은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침상의 휘장 너머로 기력이 쇠진한 노파의 작은 몸이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시체처럼 쓰러져 있었다. 서삼의 아내는 혀를 끌끌 차며 식탁 위에 쟁반을 내려놓고, 화섭자를 찾아 등잔에 불을 밝혔다. 방안의 적막함 때문에 그녀의 옷자락 소리며 가구 위를 오가는 손길에서 나는 작은 소리가 자신도 놀랄 만큼 크게 들렸지만, 침대 위의 노파는 전혀 움직일 줄 몰랐다.

“쯧쯧!”

서삼의 아내는 자신도 모르게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으스스한 기분을 떨치려는 듯 의식적으로 소리를 높여 혀를 차면서 침상으로 다가갔다.

“아직도 이러고 있나? 좀 일어나보시게. 뭘 좀 먹어야지!”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이 몇 마디를 연달아 내뱉으며 그녀는 침상머리를 살폈다. 낮에 다녀간 농사꾼 이칠李七의 아낙이 가져다 두었을 찻주전자는 전혀 손조차 대지 않은 듯이 식은 찻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런다고 아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여보게, 일어나서 쌀죽이라도 좀 먹게!”

벽을 향해 누워 있던 노파가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꿈속에서도 눈물을 흘린 듯, 노파의 흐린 눈자위는 물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노파는 상대를 알아보고 희미하게 감사의 미소를 지었다.

“자, 좀 일어나서 식기 전에 쌀죽이라도 좀 먹게!”

서삼의 아내는 노파의 어깨를 다독이며 식탁 위의 쟁반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그러나 다시 침상의 노파에게로 향하던 그녀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멈칫 하며 다시 식탁 쪽을 향했다. 이번에 그녀의 눈길은 식탁을 지나 방문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그녀의 주름진 작은 눈이 찢어질 듯 치켜떠지며, 입이 딱 벌어졌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여 순식간에 얼굴에 핏기를 잃은 그녀는 자신의 입술이 파랗게 떨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다.

“누, 누구?”

한참만에야 간신히 목을 타고 나온 그녀의 소리가 비명으로 바뀌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귀, 귀신이다!”

그녀는 침상에 누운 노파의 어깨에 올려진 자신의 손을 미친 듯이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노파의 상체가 튕기듯 세워지더니, 불신에 가득 찬 그녀의 눈길이 문간을 향했다.

“무슨 일입니까, 어머니?”

흐릿한 몸의 윤곽만으로도 문간에 선 인영人影의 정체를 직감하고 있던 노파의 귀에 놀란 아들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이 침상을 향해 맹렬히 달려올 때까지도 노파는 정지된 자세 그대로 문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귀, 귀신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서삼의 아내가 발작처럼 소리치며 문간을 향해 내달렸다.

“귀, 귀신이 나타났다!”

텃밭을 가로질러 밖으로 내닫는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와 더불어 늙은 아낙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높은 담장들 사이의 골목을 울렸다. 초저녁의 정적을 찢는 그녀의 목소리는 골목 여기저기로 신속하게 퍼지며 메아리쳤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침상의 노파는 한참만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듯,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사내의 화들짝 내려다보았다.

“네, 네가 돌아왔느냐? 내 아들이 돌아왔느냐?”

노파는 떨리는 손을 사내의 잔등에 얹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어머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들며 사내가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