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어사가 금비녀와 금팔찌를 교묘하게 조사하다 4
노학증은 집에 돌아가 아수가 생전에 준 금비녀와 금팔찌를 보고 울음 한 바탕, 한숨 한 바탕, 의심도 품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게 뭐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그저 자신의 운수에 복이 없는 탓이라 생각하였다.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니 노학증은 빌린 옷가지와 버선을 다시 잘 싸서 직접 돌려주려고 고모 댁으로 출발하였다. 양상빈은 노학증이 온 것을 눈치 채고는 몰래 다른 곳으로 도망가 버렸다. 노학증이 고모를 뵙고서 아수가 목을 매 자결한 일을 이야기하니 고모는 연신 혀를 끌끌 차면서 노학증에게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권했다. 양상빈은 집에 돌아오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좀 전에 외사촌 동생이 다녀가는 것 같던데, 고첨사 댁에 다녀왔다고 하던가요?”
“어제 다녀왔다더라, 근데 웬일인지 그 아가씨가 노학증에게 3일이나 늦게 온 거를 나무라더니 그만 목을매고 죽었다지 뭐냐.”
“뭐요, 그렇게 예쁘고 우아한 아가씨가 저세상으로 가다니!”
양상빈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네놈이 그 아가씨를 어떻게 알아?”
양상빈은 어머니의 추궁에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노학증 흉내를 내고서 고첨사 댁에 다녀온일을 고해바치게 되었다. 노학증의 고모는 대경실색하며 꾸짖었다.
“이 짐승 같은 놈아, 이런 수작을 다 부리다니! 네가 결혼하게 된 것도 다 네 외삼촌 덕인데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분수가 있지 외사촌 동생의 혼사를 훼방 놓고 애꿎은 아가씨까지 저세상에 보내버렸으니 그래 그러고도 네 맘이 편안하냐?”
어머니가 짐승 같은 놈이라고 욕을 퍼부어도 양상빈은 차마 입을 열어 대꾸하지 못하였다.양상빈이 어머니를 피하여 방으로 들어가니 아내 전씨가 방문을 닫아 걸고는 양상빈을 욕하였다.
“당신은 정말로 불의한 일을 행하였으니 멀지 않아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결코 끝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당신은 당신, 나는 나, 우리 서로 따로 따로 떨어져 지냅시다.”
양상빈은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나고 심사가 뒤틀렸는데, 마누라가 또 자기를 이렇게 몰아붙이니 부아가 치밀어 올라 갑자기 방문을 발로 걷어차 열고는 마누라의 머리끄덩이를 잡고서 두들겨 패기 시작하였다. 이 때 양상빈의 어머니가 달려와 소리를 질러 양상빈을 내쫓았다. 양상빈의 아내 전씨는 가슴을 치며 죽네 사네 곡하였다. 양상빈의 어머니는 며느리를 달래다 못하여 결국 마차꾼을 불러 며느리를 친정에 데려다주도록 하였다. 양상빈의 어머니는 화도 나고 괴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또 아들 일이 발각되면 어떡하나하는 염려도 밀려와 밤새 한 숨도 못 자고 오한이 들어 일주일 내내 앓다가 결국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며느리 전씨는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한달음에 달려와 상을 치르고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전씨에 대해서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던 양상빈은 끊임없이 욕을 퍼부어댔다.
“이런 찢어 죽일 놈의 마누라, 그래 친정에서 뼈를 묻을 것이지 뭐 하러 다시 여기 온 거야?”
둘은 이내 싸우기 시작하였다.
“불의한 일을 저질러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보내놓고 나한테까지 덤터기를 씌우려 들어.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내가 너 같은 촌놈 앞에 나타나기도 했을 줄 알아!”
“마누라 없으면 내가 어떻게 될까 봐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난 거야! 이제 그만 됐으니 어서 꺼지라고. 이젠 다시 이 집에 들어오지도 마.”
“내가 차라리 평생 과부로 지내고 말지 너 같은 악당하고는 안 산다. 그래 차라리 깔끔하게 이혼하자. 내가 친정에 돌아가면 바로 신령님께 어서 이혼하는 게 저에게 복 주시는 것이라 빌 테다.”
양상빈은 본디 자신의 처와 인연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이렇게 서로 막보기로 말을 주고받은 김에 이혼장을 써서 손도장을 찍어서 아내 전씨에게 던져주었다. 전씨는 시어머니의 위패에 절을 올리고 한바탕 곡을 하더니 대문을 나섰다.
흑심을 품고 남의 아내를 희롱하더니,
자기 아내를 간수할 복을 차버리는구나.
애달프다, 전씨처럼 현명한 아내를,
한바탕 욕 퍼붓고 내치다니.
이야기는 여기서 둘로 갈린다. 맹부인은 죽은 딸내미 생각에 눈물 짓지 않는 날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노학증을 집에 오라고하는 전갈을 전한 자도 늙은 집사 구씨요, 그 시커멓고 뚱뚱한 놈을 집으로 데리고 온 자도 늙은 집사 구씨니, 그 늙은 집사 구씨하고 그 놈이 한통속이 아니라면 그 사이에 뭔가 다른 사람에게 말이 샌 것이 틀림없었다. 남편이 손님을 만나느라 집을 비운 사이 맹부인은 늙은 집사 구씨를 불러 재삼재사 물어보았다. 늙은 집사 구씨는 마님의 말을 전하면서 절대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흘린 적이 없는지라, 아직까지도 그 바보 같은 노학증이괜히 옷을 빌린다고 설쳐서 3일이나 늦게 나타나서 이런 사단이 일어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맹부인은 먼저 찾아온 놈은 가짜 노학증이고, 늦게 찾아온 자가 진짜 노학증이라는 감을 잡고 있었으나 늙은 집사 구씨는 동일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 그 늙은 집사에게 이런저런 말을 물어본들 어찌 분간할 것이며 어찌 말을 알아들을 것인가? 맹부인은 버럭 화를 내며 아랫사람에게 저놈을 바닥에 패대기를 치고 곤장을 30대 치라고 엄히 분부하니 애매한 그 엉덩이의 살가죽만 벗겨지고 피만 솟아날 뿐이었다. 고첨사가 어느 날 우연히 후원에 들러 늙은 집사 구씨에게 정원청소를 시키려니 그 놈이 마님께 맞아서 운신을 못하니 청소할 수 없노라 하는 말이 들려오겠다. 다른 사람을 시켜 늙은 집사를 부축하여 데리고 나오게 하여 그 연유를 캐물었다. 늙은 집사는 맹부인이 자신에게 노학증을 모셔오라고 심부름시킨 일 그리고 밤에 노학증이 찾아온 일을 일일이 고해바쳤다. 고첨사는 화를 버럭 내며 소리 질렀다.
“일이 이렇게 된 거구만.”
고첨사는 바로 마차를 불러 몸소 현청으로 가서 현령에게 이 일을 알리고는 노학증을 붙잡아 자신의 여식이 세상을 떠난 원혼을 풀어주고자 하였다. 현령은 아전을 불러 사건조서를 작성하게 하는 한편 노학증을 잡아오게 하여 심문하였다. 노학증이야 본디 착하디착한 사람이라 그간의 사정을 하나도 남김없이 진술하였다.
“아수 아씨가 저에게 금비녀와 금팔찌를 정표로 준 적은 있어도 아씨와 후원의 방에서 밀회를 나눈 적은 결코 없습니다.”
현령은 바로 늙은 집사를 불러 양자 대질심문을 하였다. 지난번에 가짜 노학증을 안내한 것은 마침 어두운 밤이었고, 이 늙은 집사가 연로한데다 눈마저 침침하여 그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였지만 오늘 현청에 가면 제대로 일을 처리하라는 고첨사의 엄명도 있고 하여 그냥 저 노학증이 맞으니 절대 놓아주면 안 된다고 증언하고 말았다. 늙은 집사가 이렇게 증언도 하고 있고 고첨사의 얼굴도 있는지라 현령은 노학증에게 어서 자백하라고 온갖 고문을 마다하지 않았다. 노학증은 고문에 못 이겨 이렇게 자백하고 말았다.
“맹부인이 나를 도와주고자 부르시고 금비녀와 금팔찌를 주었습니다. 이 때 소인이 우연히 아수 아씨를 보고 그만 미모에 반하여 음심이 일어나 그녀를 욕보이고 말았습니다. 한데 3일이 지나서 또 찾아가서 결국아수 아씨가 분에 떨며 목숨을 끊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현령은 노학증의 자백을 받아 적게 하였다. 노학증과 아수가 비록 정혼한 사이라 하나 아직 정식으로 혼례를 올린 사이도 아니므로 부부라 할 수 없는 터인데, 노학증이 아수를 범하여 아수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므로 여인을 겁박한 죄로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현령은 노학증을 사형수 감옥에 처넣으라고 하고 문서를 닦아 상부에 보고하였다. 맹부인은 이 소식을 듣고 혼비백산하였다. 맹부인이 노학증의 집을 찾아가 보니 살림해주는 노파 혼자서 충격에 몸져 누웠으나 아무도 보살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노학증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내가 괜히 저 젊은이의 목숨을 끊고 있구나.”
맹부인은 처연하고도 미안한 기분이 들어 은자 몇 냥을 꺼내어 노파에게 건네며 사람을 사서옥중에 갇힌 노학증을 보살펴 달라고 하였다. 한편 맹부인은 남편에게 노학증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지만 고첨사는 외려 더욱 화를 낼 뿐이었다. 한편 이 일은 퍼지고 퍼져 석성현 온 천지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이 나버렸다. 좋은 일은 문밖을 나서지 않으나, 안 좋은 일은 천리를 달려가는 법. 이 일로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하는 고첨사는 노학증이 처형되는 것만이 그나마 자신의 남은 체면이라도 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한편 진렴陳濂이라는 어사御史가 있었으니 그는 호광湖廣출신으로 그의 부친이 고첨사와 같은 해에 진사에 급제한 인물로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고첨사는 진렴을 친하게 조카라 불렀다. 진렴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특히나 남의 억울함을 잘 헤아려 풀어주었으니 때마침 천자의 명으로 강서성을 순찰하게 되어 있었다. 진렴이 강서성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고첨사가 자신의 여식 건으로 부탁한 바 있어 진렴은 입으로야 물론 잘 알겠다고 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구러 3일이 지나 강서성에 도착하니 강서성의 아전과 관원들이 모두 똥줄이 타는구나. 판결문을 심사하는 날이 되니 각 현에서는 문서와 범인들을 대령하는구나. 진렴이 노학증을 심문하는 차례가 되어 문서와 증거물인 금비녀, 금팔찌를 살펴보고 노학증에게 물었다.
“이 금비녀와 금팔찌는 처음 찾아갔을 때 받은 것이냐?”
“소인은 그저 한 번만 갔을 뿐입니다. 첫 번이고 나중이고 자체가 없습니다.”
“조서에는 3일 후에 다시 갔다고 되어 있는데?”
“정말로 억울하옵니다. 소인의 부친이 살아계실 때 고첨사 댁 여식과 저와 정혼을 하게 되었사온데, 소인의 부친이 워낙 청렴하셔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먹고 살 길이 너무 막막하여 아직 혼사를 치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소인의 장인 되시는 고첨사께서 혼사를 물리고자 하였으나 장모께서 반대하시고 몰래 사람을 보내어 소인을 불러 은자와 포목을 주시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 소인은 당시 촌구석에 처박혀 있었기에 3일이 지나고서야 겨우 찾아뵐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저는 단지 장모만 뵈었을 뿐, 아수 아씨는 코빼기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음란한 짓을 저질렀다고 한 것은 고문을 못 이겨 그렇게 자백한 것일 따름입니다.”
“아수 아씨를 보지 못하였다면 저 금비녀와 금팔찌는 어디서 난 것이냐?”
“아수 아씨가 커튼 안쪽에 서서 소인이 늦게 와서 일을 망쳤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혼사는 고사하고 은자와 포목마저도 주기 어렵게 되었다며 이 금비녀와 금팔찌를 정표로 주노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만 하여도 아수 아씨의 말을 저와의 혼사를 깨려는 수작으로 오해하여 장모님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한데 그때 갑자기 아수 아씨가 목을 매 자진하였으니 저는 도무지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습니다.”
“네 말대로 하자면 너는 그 날 밤 후원에 간 적이 없다는 것이렷다.”
“소인은 결코 후원에 간 적이 없습니다.”
진렴이 생각하여보니 딴은 그럴듯하였다. 그래 사위를 불러 혼사에 보태 쓰라고 뭔가를 주려고 하는데 그저 금비녀와 금팔찌만을 줄 리는 없겠지. 아수의 원망이 그리 심하였다면 혹시 누군가가 선수를 쳐서 은자와 포목을 가져가고 더불어 자신을 더럽혔기에 죽을 작정을 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진렴은 늙은 집사를 불렀다.
“네가 노학증의 집에 갔을 때 노학증의 얼굴을 직접 보았더냐?”
“소인은 얼굴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요.”
“직접 보지도 못했다고 하고 게다가 밤에 찾아왔다고 하던데 너는 어떻게 저 자가 바로 노학증이라고 알아볼 수 있었더냐?”
“저놈이 자기 입으로 노학증이라고하면서 마님과 약속이 되어 있어서 찾아왔다고 하기에 저도 그런가 보다하고 그를 안내해준 것입니다요. 설마 저놈이 그런 일이 없다고 발뺌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 자가 마님을 만나고 언제 돌아갔느냐?”
“듣자하니 안에서 마님이 저놈에게 술을 대접하는 것 같았고, 뭔가 잔뜩 선물로 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오경 쯤해서 돌아갔을 것입니다.”
노학증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억울하다고 소리를 질렀으나 진렴이 고함쳐 입을 막았다. 진렴이 다시 늙은 집사에게 물었다.
“저 노학증이 두 번째 찾아왔을 때도 네가 안내하였느냐?”
“저놈이 두 번째 왔을 때에는 정문으로 들어왔기에 소인이 안내하지 않았습니다.”
“저 자는 어째서 첫 번째 방문하였을 때는 정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고 후문으로 들어왔다더냐?”
“마님께서 소인에게 저 자에게 연락을 하게 하면서 후문으로 들어오라고 하라 하셨습니다.”진렴이 다시 노학증에게 물었다.
“그래 그대의 장모가 후문으로 오라고 하였는데 그대는 어이하여 정문으로 들어갔더냐?”
“저 늙은 집사가 마님께서 저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전갈을 해주기는 하였지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고 인적이 드문 넓은 후원을 지나다가 괜히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 싶어 후원으로 가지 않고 아예 정문을 통해서 갔고 후원 쪽으로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진렴은 노학증과 늙은 집사의 말이 서로 이렇게 다르니 분명 여기에 뭔가 곡절이 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렴은 노학증을 가리키며 늙은 집사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때 후원으로 찾아온 자가 저 자가 맞느냐, 눈매나 입매를 잘 살펴보아라, 그래 알아보겠느냐? 똑바로 대답하렷다.”
“어두운 밤이었는지라 소인이 그렇게 확실하게 보지는 못하였습니다만 그래도 저 얼굴이 맞는 거 같기는합니다.”
“네가 노학증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 자는 출타 중이었다고 하는데 그럼 마님의 전갈은 누구에게 전달하였느냐?”
“그 집에 살림을 나는 노파가 하나 있어서 그 노파에게 전했습니다. 옆에서 엿듣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튼 네가 이 일을 누구한테 이야기한 적이 있느냐?”
“결코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진렴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동기와 정황을 밝히지 아니하고 어찌 함부로 처벌을 할 수 있으리? 아버님 동기생이신 고첨사에게는 뭐라고 말한다.”
진렴은 노학증을 바라보고 물었다.
“그래 네가 촌구석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 촌에서 여기 성안까지는 얼마나 걸리느냐? 네 장모가 찾는다고 하는 소식은 언제 들었느냐?”
“북문에서 십리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 소식은 당일날 바로 들었습니다.”
진렴은 책상을 내려치면서 노학증에게 소리를 질렀다.
“네가 지금 3일 후에 고첨사 댁에 찾아갔다고 하는데 허튼소리하지 마라. 그렇게 좋은 소식을 듣고서 길도멀지 않은데 뭐 하러 3일씩이나 지체한다 말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를 말라.”
“나리 잠시 화를 거두시옵소서. 제가 자세하게 말씀 올리겠습니다. 소인은 집안이 너무도 가난하여 마침 시골 마을에 사는 고모댁에 쌀을 꾸러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장모께서 저를 찾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서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으나 입고 있는 옷가지가 도저히 그냥 그대로는 갈 수 없는 형편이라서 고종사촌 형에게 옷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하였더니 그러겠노라 흔쾌히 허락하시더니 어인 일인지 외출을 하고서 다음날 해질녘에야 돌아왔습니다. 소인은 달리 방도가 없어 기다려야 했고 그래서 이틀이나 늦었던 것입니다.”
“그래 네 고종사촌 형은 어떤 사람이냐, 성과 이름은 어떻게 되느냐?”
“성은 양이요, 이름은 상빈인데, 그저 농사나 짓고 사는 처지입니다.”
진렴은 이 말을 듣더니 주위 사람들을 물리면서 내일 다시 심의하겠노라고 선언하였다.
붓은 태산처럼 진중하여 경솔하게 판결문을 써서는 아니 되나,
마음은 부처님처럼 자비로워 세세한 것까지 다 헤아려야 하는 법.
한번 내려진 판결이 어찌 함부로 뒤집히랴,
그러나 시비가 뒤바뀐 것이라면 어느 누군들 억울하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