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오정
사오정은 원래 옥황상제의 가마를 시중드는 권렴대장捲簾大將이었는데, 반도대회 때 실수로 유리잔을 깨뜨리는 바람에 옥황상제가 팔백 대를 때려 아래 세상으로 쫓아내고 추악한 몰골로 만들었고, 또 이레마다 한 번씩 검이 날아와 옆구리를 백 번도 넘게 찌르고 돌아가는 벌을 받고 있었다.(제8회)
머리는 온통 화염처럼 시뻘건 털로 더부룩하고
방울 같은 두 눈은 등잔처럼 번쩍거리네.
검은 듯 푸른 듯 칙칙한 얼굴에
우레 같고 북소리 같이 늙은 용의 소리를 내네.
몸에는 아황색 망토를 걸치고
허리엔 새하얀 등껍질 띠 두 갈래를 모아 질끈 동였네.
목에는 해골바가지 아홉 개 늘어뜨리고
손에 든 보물 지팡이 무시무시하기도 해라.(제22회)
관음보살은 유사하流沙河의 모래를 따라 그의 성을 사沙라 하고, 이름을 오정悟淨이라 지어주었다. 여기서 ‘사하’는 고비 사막을 가리키는데, 폭풍으로 휩쓸려 다니는 모래의 모습이 강물처럼 흐른다고 해서 ‘유사하’라고도 하고, 거기에 휩쓸리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기러기 깃털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약수弱水’의 전설과 합쳐진다. 결국 사오정은 본래 험난한 사막의 사나운 약탈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원래 남송 때에 만들어진 『대당삼장취경시화』에서는 삼장법사가 직접 심사신深沙神을 제압한다고 되어 있고, 원나라 때의 연극인 ‘잡극雜劇’에서는 손오공이 그를 제압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서유기』에서는 관음보살이 나타나 그를 귀의하게 만드는데, 이것은 『서유기』에서 관음보살을 삼장법사와 제자들에 대한 안배를 미리 정한 주체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작품에서 사오정은 둘째 제자라는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명나라 때에 『서유기』가 확정되기 전까지 여러 이야기와 연극에서는 종종 그가 삼장법사의 둘째 제자로 묘사되기도 했지만, 『서유기』에서는 그의 역할이 훨씬 축소되어 나타난다. 실제로 『서유기』는 손오공의 활약을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그와 여러 가지 면에서 대비가 뚜렷한 저팔계의 역할이 더불어 강조되었기 때문에, 삼장법사를 가까이 모시는 ‘시자侍者’—비서—로서 사오정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사오정의 활약이 적극적으로 묘사된 것은 손오공이 삼장법사에게 내쫓겨 관음보살에게 하소연하러 갔을 때, 사오정이 수렴동을 찾아갔다가 가짜 손오공에게 낭패를 당하고 관음보살에게 갔다가, 그 자리에 있던 손오공에 대드는 장면(제57회)이 거의 유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유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저팔계보다 품계가 훨씬 높은 금신나한金身羅漢의 직위를 받게 되는 것은 상당히 의아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껏 많은 연구자들도 이 점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데, 그들의 결론은 이것이 이전까지 둘째 제자였던 사오정의 위상을 반영하는 흔적이며, 또한 부처님의 관점에서 보기에 겉으로 ‘튀지 않게’ 삼장법사를 묵묵히 보필한 사오정의 공로가 탐욕과 여색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함으로써 공덕을 깎아먹은 저팔계보다 크게 평가된 결과라고 한다.
사오정의 이름에서 ‘사沙’는 ‘생각하다’라는 뜻을 가진 ‘사思’와 발음이 통하고, ‘정淨’은 그 자체로 ‘깨끗하다’는 뜻이니, 그의 이름은 반도대회 자리를 어지럽힌 죄업을 씻기 위해 청소와 정리 정돈을 깨달으라는 풍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정’은 또 ‘극락정토極樂淨土’를 뜻하기도 하니, 결국 그가 청소하고 정리 정돈할 대상은 ‘마음’인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는 삼장법사 일행 가운데 서천으로 가서 도를 구하겠다는 의지를 가장 독실하게 지키는 존재로 묘사된다. 다만 “검은 듯 푸른 듯 칙칙한” 그의 얼굴에서 분명히 묘사되어 있듯이 그는 삼장법사로 대표되는 수행자의 마음 가운데 ‘토덕土德’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온화하고 묵묵히 헌신하는 모습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 그는 말없이 삼장법사의 변덕을 보완해주고, 이따금 비꼬며 쏘아붙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저팔계의 투덜거림을 들어주고, 손오공의 진심과 능력을 가장 잘 이해해주고 믿어주는 존재이다. 이처럼 그는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오행—도를 향해 수련하는 마음—의 내적인 조화를 도와주는 튼튼한 끈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각기 강한 개성으로 뭉친 삼장법사와 사제들이 끝까지 분열되지 않도록 해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