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백거이白居易 피서銷暑

피서銷暑/당唐 백거이白居易

何以銷煩暑 무더위를 어떻게 피할까 
端居一院中 집 안에 조용히 있을 뿐
眼前無長物 눈앞에 잡다한 기물 없고 
窓下有清風 창으론 청풍이 들어오네
熱散由心靜 마음 차분하니 덥지 않고
涼生爲室空 방안 비니 한결 시원하네
此時身自得 이런 때 몸으로 배운 것
難更與人同 남들과 함께 하긴 어렵네

830년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59세로 낙양에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올해는 얼마나 더울지 모르지만 작년엔 정말 더웠다. 나는 서울에 살면서도 큰 집으로 제 때 이사를 못 가 집 안이 온통 책으로 꽉 차 있어 에어컨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하는 방법이라곤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 베란다 창문과 바람이 통하게 하고 선풍기를 켜고 부채를 부치며 앉아 있는 것뿐이다. 너무 더울 땐 집에 최대한 늦게 들어갔다 빨리 나오는 방법을 쓴다.

작년엔 아주 더워 시골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너무 더우니 시골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에어컨이 있는 도시만 못하다. 노인들이 혹 더위로 병이 날까 싶어 시골집에 에어컨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 에어컨을 사용한 날은 거의 없다. 한번 시골에 가서 그 에어컨을 틀다가 오히려 싸울 뻔 했다. 그 이후 전기 요금을 내 계좌로 이동해 살펴보니 거의 전기를 안 쓰는 것으로 보아 지금도 에어컨을 틀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내 생각에 배달이나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을 빼고 실내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만큼 덥지 않다. 물론 실내에 늘 있고 편안한 생활에 잘 적응된 사람들은 더위를 많이 느낄 것이다. 그런데 작년 정도로 더워진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제목의 ‘소서(銷暑)’는 ‘더위를 녹인다.’는 말인데 소(銷)는 소(消)와 통용한다. 우리말에는 이런 식의 사고가 없고 대신 ‘더위를 날려버린다.’는 말이 이에 가깝다. 결국 우리가 지금 쓰는 피서에 다름 아니다. 너무도 이별이 슬퍼 ‘정신이 나간다.’는 말을 한문으로는 ‘소혼(消魂/ 銷魂)이라 한다. 그런데 이 말들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결국 그 실체는 같다. 소(銷)와 소(消)는 금속이든 물이든 녹여서 없애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없어진다‘는 그 말의 본질은 동일한 것이다. 한문은 말의 표면보다 그 본질을 알아야 어휘의 표현을 문맥에 맞게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시는 더욱 그렇다.

이 시는 다분히 노자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더위를 마음으로 극복하는 것이긴 하지만 시에 서술된 방법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빈방에 햇살이 비치니 길상이 깃든다.[虛室生白, 吉祥止止.]”라는 말이 있다. 방안에 잡다한 기물이 없으면 햇살이 비치듯이, 마음에도 욕심이 없으면 순수한 도심이 자라난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장물(長物)은 좋은 물건이란 뜻도 있지만 여기선 잡다하게 남아도는 기물을 말한다. 방안에 있는 잡다한 물건을 치우고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그리고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있으면 열기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집안의 기물을 좀 정돈하고 수양하는 자세로 마음을 차분히 하는 것이 더위를 날려 보내는 백거이의 피서법이다. 마지막에 한 말은 이런 방법이 일반인에게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도 백거이처럼 정원이 있는 저택에 사는 사람과 좁은 골목에 집이 다닥다닥 붙은 누항에 사는 사람과는 차이가 날 것이고 육체를 많이 움직이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이와는 사정이 다르다.

그나저나 올해는 지나치게 덥지는 말아서 백거이의 이 시가 효용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清·金廷标《莲塘纳凉图》 출처 So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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