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서점의 책벌레 할아버지书店里的老学霸
책벌레 할아버지라는 이름은 처음에 누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금세 모든 점원들이 그를 가리키는 호칭이 되었다.
그 사람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였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는 여름방학이 막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그는 무료 독서코너에 앉아 책 더미 위에 얼굴을 묻고 정신을 집중한 채 뭔가를 계속 필기하고 있었다. 또 그의 사방에는 벽돌 같은 외국어 사전들이 쌓여 있었으며 더군다나 한 가지 외국어가 아니었다.
때로 무료 독서코너의 자리가 다 차면 그는 서점 입구 쪽 바닥에 앉아, 옆에 누가 있든 없든 상관 않고 보통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낭독을 했다. 그 옆을 지나가는 이들은 모두 그 알 수 없는 기세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늘 내게 그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묻곤 했다. 그들은 다 진심으로 존경을 표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 그를 보고 나서 마침내 경의의 마음을 품고 다가가 삼가 영웅의 내력을 문의했다.
“나는 난징(南京)에서 왔습니다. 전에는 영어 번역 일을 했고요. 요즘에는 러시아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광저우의 새 도서관 장서량이 아주 많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도서관 근처에 24시간 서점도 있다는 것을 알고 광저우에 올 결심을 했지요.”
백발의 나이에 지식과 더 많은 언어에 대한 갈망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왔다니 정말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당장 허리를 굽히고픈 생각을 꾹 누르고 조용히 뒷걸음쳐 물러났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할아버지가 젊은 사람보다 더 대담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단신으로 광저우에 왔고 광저우에 의지할 사람은커녕 머물 데도 없었다. 매일 낮에는 도서관에 있었고 밤이 되면 도서관에서 빌린 사전들을 갖고 서점에 와서 계속 공부를 하다가 졸리고 피곤해지면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잠에서 깨면 또 새로운 사이클이 이어졌다. 머무는 데가 없기 때문에 그는 목욕을 못 했고 옷을 빨거나 갈아입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몸에서는 갈수록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당연히 그 할아버지 좀 어떻게 해달라는 요구가 속속 내게 접수되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두 번째로 그와 접촉해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게 외국어를 많이 공부하시는데 혹시 뭘 준비하고 계신 겁니까?”
그는 나를 보면서 엄숙하게 답했다.
“나는 서양 언어에 일대 개혁을 시도하려 합니다.”
그렇게 웅대한 이상 앞에서 나 같은 범부는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고 다만 자리를 뜨기 전에 나는 그에게 소파방의 욕실을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게 위생에만 신경을 좀 써주시면 우리 서점은 언제나 선생님을 환영할 겁니다.”
기본적인 생활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외국어를 많이 알아도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비록 속으로는 그렇게 궁시렁거렸지만, 또 그의 학습 동기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배움의 정신만큼은 소중하다고 생각했으므로 나는 계속 그를 존중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별일 없이 한동안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불쑥 나를 찾아와 입을 열었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공고를 봤는데 나를 써줄 수는 없나요? 커피 만드는 걸 배워볼까 합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알고 보니 이 책벌레 할아버지는 학습 능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상상력도 대단했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없이 그의 분위기는 바리스타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었고, 게다가 그를 가르치려면 어마어마하게 힘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제안을 듣고 나는 그에게 다른 잡일을 시켜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밤에 맥도널드에 들렀을 때 그가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광경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생각을 점장에게 슬쩍 비쳤을 때, 천만뜻밖에도 그는 단호히 반대했다.
“그 할아버지는 기본적인 예의가 부족해요. 점원들한테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하고 툭하면 불러댄다고요. 한 번은 밤 9시가 넘어서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갔는데 마침 아르바이트생 아가씨가 안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가씨가 나오자마자 대뜸 혼을 내더라는 거예요. 그 시간에 거기서 샤워를 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 바람에 자기가 체통 없이 밖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았느냐고 말이에요. 그 할아버지는 손님들한테도 태도가 다르지 않아요. 언젠가 앞에 있던 남자 손님이 먹은 게 목에 걸려 계속 딸꾹질을 했는데 그걸 트집 잡아 밖으로 쫓아내려 했어요. 그때 두 사람이 입씨름을 하다가 하마터면 싸움이 날 뻔했어요.”
나는 할아버지의 그 ‘주인의식’에 놀라 세 번째로 그를 찾았다. 그리고 공공장소에서 그런 행동은 대단히 부적절하므로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더 이상 그를 환영하지 않겠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람의 성미는 언제든 또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며칠 안 돼서 서점에 돌아가 보니 몇 명이 모니터를 둘러싼 채 감시카메라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 옆에 앉았던 한 아주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는데 물건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소행이라고 의심했지만 그는 극구 부인했고 마침내 감시카메라 영상까지 돌려보게 되었다.
결국 드러난 증거 앞에서 그는 더 이상 발뺌을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라진 물건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컵라면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주머니의 컵라면을 훔쳐 먹은 것이었다⋯⋯.
이렇게 체면을 잃고도 그 노학자는 여전히 할 말이 있었다. 교활하게도, 자기가 계속 부인한 것은 우리 서점의 감시카메라 성능을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다고도 했다.
아, 나는 갑자기 루쉰의 단편소설 「쿵이지」(孔乙己)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책을 훔치는 건 도둑질이라고 할 수 없어…… 책을 훔치는 건 선비의 일인데 어떻게 도둑질이란 말인가?”라는.
나는 체머리를 흔들며 자리를 떴다. 그에게 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떠나라고도 하지 않았다.
예상치 않게 우리는 얼마 안 가서 또 두 번째로 감시카메라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날 책벌레 할아버지는 갑자기 자기가 아침 6시 전후에 카운터에 맡겨둔 책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누구한테 맡겼느냐고 우리가 물었지만 그는 우물쭈물 말을 잘 못했고 그 시간에 근무한 점원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그는 화가 나서 감시카메라 영상을 보자고 했지만 점원은 공연히 소란을 피우지 말라며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꼭 봐야겠다고, 안 보여주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모니터에 눈을 고정하고 한참을 이리저리 살폈지만 끝내 자기가 책을 누구한테 맡겼는지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경찰을 불렀다. 그 경찰도 그것이, 끼니도 못 잇는 사람이 자기 책을 서점이 꿀꺽 삼켰다고 신고한 ‘사건’임을 알고서 손을 놓아버렸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감시카메라 영상 전체를 카피해 경찰에 넘기는 것으로 그 일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때는 벌써 12월이었고 책벌레 할아버지가 우리 서점에 머문 지 거의 넉 달이 돼가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많은 손님들이 그의 얼굴을 알고 툭하면 내게 와, 다른 서점이나 켄터키프라이드치킨, 아니면 또 다른 곳에서 그와 마주쳤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그렇게 우리 서점의 걸어 다니는 간판이 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우리 서점에 대해 일말의 애정이라도 있어야 옳았다. 그런데 왜 그런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냈을까? 어째서 자기를 거둬준 이들을 도둑으로 몰고 의분에 차서 경찰에 신고까지 한 걸까?
그 일이 있은 뒤로 책벌레 할아버지는 그 전처럼 매일 서점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본래 나는 그가 자기 잘못을 알아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또 내게 서점에 일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했다. 나는 단칼에 거절하고 말했다.
“설에 난징으로 돌아가세요. 이렇게 계속 광저우에 있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먼저 무슨 아르바이트라도 찾아 끼니부터 해결하고 서양 언어를 개혁하시고요.”
나는 그가 또 무슨 자기 이상에 관해 얘기할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그는 내게 돈을 꿔달라고 했다.
“20위안이라도 좋으니 좀 꿔줘요. 지금 가진 게 한푼도 없는데 집에서는 아무도 돈을 안 보내준답니다.”
나는 또 거절했다.
“지난번에 그런 일만 벌이지 않으셨다면 당연히 꿔드렸겠죠.”
말을 마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 나는 오랫동안 책벌레 할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생각날 때마다 복잡한 심정이 치밀었다. 그에게 돈을 꿔주지 않은 것이 잘못한 일이 아니었나, 자꾸 의심이 들었다. 어쨌든 그가 많은 돈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는 과연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쿵이지가 셴헝(咸亨) 술집에서 사라진 것처럼(루쉰의 「쿵이지」에서 주인공인 몰락한 양반 쿵이지는 생활의 압박에 도둑질을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단골 술집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