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수레- 나무로 만든 인조인간 3

2. 나무로 만든 인조인간 3

잎사귀가 그대로 붙어 있는 나뭇가지들을 교묘하게 엮어서 빗물이며 바람이 스며들지 않도록 안배한 그 작은 간이 움막은 며칠 전 그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한 나절이나 공을 들여서 만든 것으로, 비록 내부 공간은 겨우 한 사람이 움직이고 누울 수 있는 여유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날씨쯤은 견딜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특히 요즘 같은 초봄이면, 이 움막이나 산 아래 그의 집이나 별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요즘 들어 부쩍 바가지가 심해진 아내가 지금쯤 방안에서 입이 퉁퉁 부은 채 신경질적으로 다듬이질을 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와 더불어 상쾌한 해방감이 추위에 굳은 그의 신경을 풀어준 듯,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그는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손과 얼굴의 물기를 닦았다. 그리고 봇짐에서 꺼내둔 만두와 육포로 허기를 달래고, 숙면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호리병에 담아온 화주를 몇 모금 마셨다. 연못 주변에서 잘라온 풀을 깔고 그 위에 얇은 천을 깐 침대는 벌써 이십 년 가까이 그 아늑함이 입증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따라 비바람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었고, 이런 추세라면, 그것도 운이 좋아야 내일 오후쯤에나 다시 낚싯대를 펼 수가 있을 듯했다.

날씨에 관한 그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은 이튿날 오후에 확인되었다. 비바람은 그로부터 꼬박 하루 동안 더 지속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틀 내내 움막 안을 뒹굴다가, 끼니때가 되면 똑같은 만두와 육포를 씹어야 했다. 화주는 벌써 바닥이 나버린 상태였다. 그는 나름대로 아껴서 마셨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머리가 약간 어지러운 걸 보면, 제법 많이 챙겨온 술이 벌써 떨어진 것도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오두막 바깥은 바람이 좀 잦아들긴 했지만, 봄비답지 않게 굵은 빗줄기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잠도 오지 않는 상태에서 좁은 움막 안을 뒹굴기란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술기운도 좀 씻을 겸, 잠시 낚싯대와 의자를 놓아둔 자리를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비에 옷을 다 적실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 깊은 산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닐 터라, 그는 아예 옷을 벗어두고 잠깐 나갔다 오기로 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술기운이 그런대로 추위를 덜어주고 있었고, 그만의 비법으로 칡넝쿨을 엮어 만든 간이 신발 덕분에 젖은 길에서도 미끄러지거나 발바닥을 다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비탈에 모인 빗물은 제법 굵은 줄기를 이루며 동아줄로 얼기설기 얽은 그물처럼 산을 감싼 채 연못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물줄기 사이를 건너며 조심스럽게 물가로 향했다. 어제 저녁 무렵에 건져놓은 사람 모양의 이상한 물건은 아직 바위에 그대로 널려 있었다. 이틀 동안의 비바람에 노출된 탓에 몸통을 가리고 있던 진흙이며 수초들이 많이 떨어져나가, 전체적인 윤곽이며 색깔이 제법 선명하게 보였다. 빗물에 드러난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팔다리며 몸통이 놀라울 정도로 사람과 닮아 있었다. 몸의 색깔은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물때에 절어서 변색된 것인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갈색을 띠고 있었다.

“누가 저런 걸 만들었다지? 도대체 어디에 쓰던 물건이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길이가 사내 자신의 키보다 한 뼘쯤은 커 보이는 저런 인형은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필 이 연못에 내버려서 낚시를 방해한 작자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챙겨둔 낚싯대며 의자는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의자를 덮어둔 종이가 약간 찢겨져 있었지만 그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고, 실은 여분으로 가져온 기름종이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온몸이 비에 젖으면서 살갗을 파고드는 한기가 예상보다 훨씬 정도가 심했기 때문에, 그는 서둘러 움막으로 돌아왔다. 조금 눅눅하긴 했지만 수건으로 온몸을 닦고 다시 옷을 걸치자 추위도 금방 누그러졌고, 기분까지 조금 상쾌해졌다. 이제 모닥불을 조금 피워놓으면 움막 안은 추위와 습기를 모두 물리친 더욱 훌륭한 쉼터로 바뀔 것이다.

그는 움막 안쪽에 미리 파둔 구덩이에 쌓인 잔가지들에 불을 지폈다. 부싯돌을 이용해서 마른 솔잎 같은 데에다 불을 지피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아서, 그는 한참 동안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부싯돌을 맞부딪치고, 나뭇잎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훅훅 입김을 불어대야 했다. 비 때문에 연기가 잘 빠지지 않아서 눈이 제법 따갑긴 했지만, 마른 가지들에 불이 붙기 시작하자 이내 연기도 줄어들었다. 한 아름 정도 마련해둔 나뭇가지들이 작은 구덩이에 수북이 쌓인 벌건 숯으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비로소 살갗은 물론 눈자위까지 빨갛게 변한 얼굴을 모닥불에서 돌리고, 다시 풀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보시오!”

평화롭게 찾아온 낮잠에 한참 취하고 있을 무렵, 사내는 귀를 간질이는 낯선 소음을 처음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임을 깨닫고 화들짝 눈을 뜨기까지는 그 소리가 대여섯 번이나 더 들린 뒤였다. 소리가 조금 잦아들긴 했지만 움막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주목왕의 가무 로봇, 출처 King Muh/Wikimedia Commons

“이보시오!”

그는 고개를 홱 돌려 움막의 문간을 쳐다보았다. 구부정하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한 사내의 모습이 역광을 받아 어둑하게 그의 망막에 비쳤다. 유난히 하얗게, 어찌 보면 감귤과도 비슷한 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제외하면, 얼굴의 다른 부분은 식별할 수 없었다.

“뉘, 뉘시오?”

“저…, 말씀 좀 물어봅시다.”

상대방의 조심스러운 말투 덕분에 낚시꾼의 놀란 가슴이 빠르게 진정되었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일으키면서 움막의 입구 쪽으로 다가앉았다. 그가 움직이자 상대도 움막 입구에서 몇 걸음 물러나 허리를 폈다. 뒷걸음으로 물러나는 상대의 발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듯한, 어딘지 낯익은 색깔의 장화가 신겨져 있었다.

“무슨 일…”

호기심과 불안이 배인 목소리를 조심스럽게 내뱉으며 움막 밖으로 머리를 내밀던 낚시꾼은 순간 입이 굳어버렸다. 가는 빗발 속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움막 입구를 응시하며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은 바로 조금 전까지 바위 위에 나뒹굴고 있던 그 이상한 인형이었던 것이다!

“…….”

시간이 정지되어버린 듯, 둘은 멈춰 선 자세 그대로 상대방을 서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말씀 좀 물어보겠습니다.”

한참 만에 움막 밖의 ‘인형’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몸에는 아직 여기저기에 수초들이 엉켜 붙어 있었지만, 적어도 얼굴과 손발은 그 사이에 간단하게 씻은 듯 제법 깔끔하게 변해 있었다. 유리처럼 투명한 눈자위와 예의 그 감귤 색깔의 눈동자는 흐린 날씨를 배경으로 더욱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 당신 혹시 저, 저기 바위 위에 있던…?”

낚시꾼은 더듬거리는 말을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었다. 빗속의 사내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다.

“좀 놀라셨지요? 사실 저도 좀 얼떨떨한 기분입니다.”

빗속의 사내가 부자연스럽게 팔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팔꿈치에 붙은 수초가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흔들거리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했지만, 낚시꾼은 웃지도 못할 정도로 입이 굳어버린 상태였다.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흘려보며 사내는 모자 사이에 박힌 수초를 장난스럽게 떼어내며 다시 물었다.

“여기가 어디지요?”

“여, 여긴 여산이 아니오? 이 연못이야 특별한 이름은 없고…….”

“아, 그렇군요. 여산이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럼 지금 천자는 누구시오?”

“나야 이런 산골에서 농사나 짓고, 낚시나 하면서 사니까 세상사를 잘 모른다오. 하지만 얼마 전에 당나라 황실이 무너지고, 지금 천하에는 열 개도 넘는 왕조들이 들어서서 패권을 다투고 있다고 합디다. 당나라가 망한 지도 벌써 이십 년이 넘었지요.”

“그러니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나라가 천하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거로군요?”

“허, 이런 참! 수나라가 무너지고 당나라가 천하의 주인이 된 지가 벌써 삼백 년이나 되었는데, 그걸 모른단 말이오?”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일어났군요! 그런데 수나라는 언제 누가 세운 나라입니까?”

“이거야 원! 들어보시오. 옛날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 시황제始皇帝가 폭정을 일삼다가 곧 무너지고, 한漢나라가 하늘의 명을 받아 천하의 주인이 되어 그럭저럭 사백 년이 넘게 천하의 주인 노릇을 했소. 설마 이것조차 모르시진 않겠지요? 그러다가 한나라가 무너지고 천하가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로 나뉘어 패권을 다투었고, 그 후로 거의 삼백 년이 넘도록 여러 왕조를 거치며 통일과 분열을 거듭했소. 그 후에 수나라가 다시 천하를 통일했지만, 그 역시 삼십년 만에 무너지고 말았던 거요. 나야 문자속이 없는 촌사람이라 주워들은 기억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진시황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천 삼백 년이나 흘렀을 게요.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이기에 이런 것도 모르고 있단 말이오?”

“…….”

빗속의 사내는 한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제법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참 뒤에 그는 혼자서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더니 곧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려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낚시꾼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선 사내의 뒷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몸의 곡선을 따라 움푹 파인 곳마다 채 씻겨지기 않은 진흙과 수초 덩어리들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이제 긴장이 조금 풀린 낚시꾼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으나, 빗물이 튀기는 사내의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은 쓸쓸한 분위기가 은연중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막았다. 다시 묘한 정적이 장내에 내려앉았다.

“무상한 세월이라…”

문득 한참 동안의 침묵을 깨고 사내의 한숨이 등 뒤로 흘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가 고개만 살짝 돌려 낚시꾼을 바라보면서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고마웠소. 나를 깨워준 것도 그렇고, 이렇게 친절하게 많은 얘기를 해준 것도 그렇고…”

낚시꾼은 어색하게 웃으며, 별 것 아니라는 투의 의례적인 손짓을 해보였다. 그리고 사내의 정체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려 했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빗속의 사내는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곧장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낚시꾼은 떠나가는 사내의 뒷모습만 그저 멍하게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조금도 주저 없이 그를 건져냈던 연못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낚시꾼이 놀랄 사이도 없이 단호한 걸음으로 연못 속으로 들어갔다. 급경사의 비탈을 따라 순식간에 그의 머리가 물 속으로 잠겨버렸다.

사내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낚시꾼은 한참 동안 움막 입구에서 머리를 내민 상태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한 바탕 꿈을 꾼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움막 입구에 깊고 뚜렷하게 찍힌 사내의 큼직한 발자국은 그가 겪은 모든 것이 실제였음을 입증해주고 있었다. 점점 가늘어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그치지 않는 빗줄기가 발자국에 물을 채우더니, 곧 거기에서 넘쳐난 빗물이 동아줄로 엮은 그물처럼 산을 감싸고 흐르는 물줄기들에 휩쓸려 연못으로 함께 치달리기 시작했다.

천 년의 세월을 물속에 잠겨 있다가 우연히 깨어나 잠깐 동안의 세상 구경을 하고 돌아간 그 남자의 몸은 분명 “나무라고 하기엔 너무 무겁고, 돌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운”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다른 이야기와는 달리 여기에서는 그 인조인간을 만든 사람이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정체에 대해서도 다양한 추론이 가능하다. 어쩌면 그는 도교의 신비한 수행을 통해 불사不死의 경지에 도달한 아주 먼 옛날의 실제 인간이었을 수도 있고, 또 먼 옛날의 어느 뛰어난 기술자 만들어두고 간 인조인간일 수도 있다. 심지어 조금 비약적으로 그를 외계에서 온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건 위에 묘사된 사내—실은 그 성별조차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낚시꾼이 판단한 외형만 가지고 본다면 남자인 듯한—의 존재는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생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몸을 이루는 물질도 인간의 육체와 다르고, 물속에 잠겨서 그 오랜 시간 동안 생존한 방식도 인간의 생존 방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처럼 인간과 유사한 지적 능력과 감수성, 그리고 유창한 언어 능력까지 갖추고 있는 존재라니!

인조인간, 이상사회를 향한 꿈 또는 무기

지금까지 우리는 고대 중국인들의 상상에 등장하는 각종 인조인간, 혹은 그와 유사한 존재들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위에서 거론한 인조인간들은 다양한 생김새와 용도에도 불구하고 모두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들 인조인간들이 대부분 인간 생활의 작은 편리와 즐거움을 위한 보조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이 상상한 인조인간들은 현대의 공상 만화나 영화에 등장하는 것들처럼 시공과 인간의 육체를 넘어서는 강력한 파괴의 힘을 가진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대부분 그저 그런 것을 만들어내는 기술자의 신기한 재능을 입증하는 ‘작품’으로서, 혹은 친근한 삶의 장식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마지막으로 소개한 이야기처럼, 중국인들이 상상한 인조인간 가운데는 자발적인 지능과 학습 능력을 갖춘, 거의 인간에 흡사한 존재도 있지만, 그의 존재 역시 인간의 삶을 위협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결국 인조인간에 대한 상상 또한 고대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이상사회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고대 중국인들의 이상세계에 관한 생각을 자세히 살펴볼 여유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그들은 근대 초기의 캉여우웨이(康有爲: 1858~1927)가 《대동서大同書》에서 그린 것처럼, 모든 사람이 생로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 평등하고 평온하게 공존하면서 “빛과 전기를 조절해서 지구를 벗어나 다른 별로 가기도 하는” 무한의 자유를 꿈꾸어 왔다. 그리고 그들이 꿈꾸던 이상사회의 주인공은 언제나 인간이었으며, 그렇지 않을 가능성—가령, 컴퓨터가 지배하는 미래 사회— 따위는 애초부터 그들에게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인조인간에 관한 상상은 이처럼 인간 존재의 존엄성에 대하여 고대 중국인들이 견지해왔던 소박하지만 흔들림 없는 믿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인 셈이다.

그러나 이른바 ‘근대’로 향한 본격적인 전환이 시작되는 19세기 말엽의 중국 소설에 등장하는 인조인간은 그 이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 가운데 1899년 장샤오산(張小山: ?~?)에 의해 완성된 《평금천전전平金川全傳》(《연대장군평서기年大將軍平西記》라고도 함)에 묘사된 인조인간은 완전히 전투용으로 만들어진 무기라고 할 수 있다. 32회로 된 이 장편소설의 주요 내용은 1723년(옹정擁正 1)에 티베트 달라이라마 5세의 죽음을 빌미로 칭하이성靑海省에서 반란을 일으킨 금천왕金川王 뤄보짱딴진羅卜藏丹津을 당시 병부상서兵部尙書 연갱요年羹堯와 제독提督 악종기岳鍾琪가 평정하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의 기본 구조는 중국의 군대가 반란군이나 오랑캐를 무찌른다는 《봉신연의封神演義》와 같은 전통적인 ‘신괴류神怪類’의 공상적 이야기와 같지만, 이 소설에서는 전투의 기본 수단으로 황당한 무술이나 술법보다는 정교하게 고안된 무기들이 자주 사용된다는 점에서 19세기말이라는 시대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난궈타이南國泰라는 중국 이름을 가진 서양인 과학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실제로 1659년(순치順治 16)에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은 예수회 선교사로서 중국에 왔다가 청나라 정부의 관료로 등용되어 달력을 만들고 대포를 만들기도 했으며, 결국 중국에서 생을 마친 난화이런(南懷仁, 본명 Ferdinand Verbiest: 1623~1688)이라는 인물의 아들로 설정되어 있다. 어쨌든 이 난궈타이는 청나라 군대를 수행하며 여러 가지 과학적 무기를 만들어내는데, 예를 들면, 한 대에 백 명을 태워 나를 수 있는 비행기구인 ‘승천구昇天球’, 그리고 거기에 장착된 여러 가지 무기 가운데 공중에서 볼록 렌즈를 이용하여 적군의 화약고를 태양광선으로 가열시켜 폭발시키는 ‘차화경借火鏡’ 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런 첨단 무기들 덕분에 청나라 군대는 당연히 승승장구하게 된다. 한 번은 궁지에 몰린 금천왕이 터키에 지원을 요청하자, 터키의 국왕은 키가 10m나 되고 양 손에 거대한 철추를 휘두르는 거인 사더마薩得麻를 파견했다. 총탄도 뚫지 못하는 강인한 피부를 가진 그 거인의 철추와 발길질 앞에 청나라 군대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난궈타이는 이 거인을 상대할 특별한 인조인간을 만들어냈다. 거인만큼 큰 체구에 무쇠로 만들어진 이 인조인간은 거인과 싸우면서 결국 그를 복사꽃 우거진 숲으로 몰아넣고 함께 자폭해버린다. 원래 이 인조인간의 몸속에는 엄청난 양의 폭약이 채워져 있어서, 거인의 철추에 맞으면 폭발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복사꽃 우거진 숲에는 미리 지뢰까지 매설되어 있었다.

어쨌든 이 이야기 속에서 인조인간은 그 밖의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진 않지만, 터키에서 온 거인이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생김새나 동작이 사뭇 정교하고 자연스러웠던 모양이다. 다만 인조인간이 간단한 생활의 편리를 도와주는 수단이나 즐거운 놀이의 대상이 아니라 살벌한 무기로 고안되었다는 것은 발상의 저변에 갈린 감각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물론 장샤오산이 하필 군대의 무기를 만들어내는 과학자로 서양인의 후손을 설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 막강한 서구 열강들의 무력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 어쩌면 그는 인조인간을 이런 식으로 이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서구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