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의 상징적 의미 3-저팔계

3 저팔계

『서유기』의 화자(작자)가 묘사하는 저팔계는 본래 은하수의 천봉원수天蓬元帥였으나, 술기운에 항아嫦娥를 희롱한 죄로 옥황상제에 의해 쇠몽둥이로 이천 대를 맞고 아래 세상으로 내쫓긴다. 그는 몸을 잃고 머물 태胎를 찾다가, 뜻밖에 길을 잘못 들어 어미돼지의 태에 들어가는 바람에 돼지의 몰골이 되었다(제8회)고 묘사된다. 하지만 그의 이런 생김새는 재물과 음식, 여자에 대한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저팔계猪八戒’라는 그의 이름은 돼지의 속성과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 사이의 끝없는 모순을 함축적으로 품은 이름인 것이다. 하물며 ‘저猪’라는 성이 발음상으로 ‘거스른다’는 의미를 가진 ‘저抵’ 또는 ‘험난하다(그렇기 때문에 거리가 멀다)’라는 의미를 가진 ‘조阻’와 통하는 것임에랴!

예를 들어서 삼장법사와 다른 제자들이 겪은 여색女色의 유혹과 비교해보면, 저팔계의 이런 특성은 상대적으로 더욱 두드러진다. 먼저, 손오공의 경우는 파초선芭蕉扇을 얻기 위해 우마왕牛魔王으로 변신해서 찾아갔다가 나찰녀羅刹女의 유혹을 받고, 심지어 벌레로 변해 그녀의 배속에 들어가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장난은 나찰녀에 대한 성적性的 희롱이라기보다는 파초선을 얻기 위한 계책으로 간주되어 크게 비난받지 않는 듯하다. 제자들 가운데 비교적 활동이 적은 사오정은 이런 유혹조차 부딪치지 않는다. 하지만 삼장법사는 미녀로 변한 세 보살들(제23회), 서량녀국西梁女國의 여왕(제53회)과 비파동琵琶洞의 전갈요괴(제54회), 형극령의 살구나무 요정(제64회), 그리고 천축국天竺國의 공주로 변한 옥토끼 요괴(제93~95회) 등에게서 결혼의 유혹을 겪고 이겨낸다. 주목할 만한 것은 삼장법사가 여자의 유혹에 시달릴 때는 종종 저팔계와 함께 한다는 것인데, 대표적으로 저팔계가 미녀로 변한 보살들의 시험에 넘어간 일이나 자모하子母河의 물을 마시고 임신한 일이 그것이다. 그런데 자모하에서 일어나 상징적 사건을 제외하면 이러한 유혹들이 대개 직접적인 데에 비해, 미녀로 변한 거미 요괴들의 유혹은 간접적이고 암시적이며, 다분히 관음증적觀淫症的인 요소까지 띠고 있다. 미녀로 변한 거미 요괴들은 웃옷을 벗어 배꼽에서 달걀만한 굵기의 끈을 뽑고, 손오공이 숨어 보는 가운데 옷을 벗고 온천으로 들어가 목욕하며, 심지어 저팔계는 메기 정령으로 변해서 온천 속에 뛰어들어 요괴들의 다리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희롱한다. 물론 이 장면에서 저팔계는 여색女色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장난스럽게 요괴를 물리치려고 시도한 것이다. 다만 이런 장난질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여색의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는 요괴들의 거미줄에 발이 걸려 이리저리 넘어져 온 몸이 엉망이 되는 응징을 당한다(제72회).

먹을 것을 밝히고, 게으르고, 멍청하며, 또 그에 어울리지 않게 허세를 부리면서 해학적인 대사 등등 저팔계의 성격적 특징들은 돼지라는 그의 생김새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중국의 신화 전설에서는 도랑과 하천을 관리하는 신을 돼지로 설정했기 때문에, 『서유기』에서도 그의 본래 직책이 은하수의 수군을 다스리는 천봉원수天蓬元帥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돼지의 형상과 인간의 모습을 조합한 신의 모습은 『산해경』을 비롯한 육조六朝 시대의 각종 ‘지괴志怪’에도 흔히 등장한다. 하지만 『서유기』에서는 기존의 각종 이야기와 연극에 등장하는 돼지 형상의 특징들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특히 넉살 좋게 내뱉어대는 해학적인 대사들은 그의 어리석음이나 비겁함을 어느 정도 상쇄할 만큼 청자(혹은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사진 출처 Baidu

예를 들어서, 불교를 지키는 가람신이 시골 노인으로 변해 황풍 요괴[黃風怪]가 일으키는 바람의 무서움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일반적인 봄바람 따위와 비교할 수 없다고 하자, 저팔계는 천연덕스럽게, “아마 갑뇌풍甲腦風(정신병)이나 양이풍羊耳風(뜬소문), 대마풍大麻風(문둥병), 편정두풍偏正頭風(편두통) 같은 게 아닐까요?” 하고 엉뚱한 말로 받아넘긴다(제21회). 또한 누런 상아의 코끼리 요괴[黃牙大象]에게 붙잡혀 갔을 때, 첫째 요괴가 쓸모없는 놈을 잡아왔다고 하자, 저팔계는 능청스럽게 “대왕님, 쓸모없는 놈은 풀어주시고, 저 쓸모 있는 놈을 잡아들이시지요.”하고 너스레를 떤다(제76회). 그런데 그의 이런 너스레에는 종종 풍자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한데, 통천하通天河에서 삼장법사가 물에 빠져 요괴에게 붙잡혀갔을 때, 저팔계는 삼장법사가 이제 성이 ‘강’이고 이름은 ‘바닥’이 되어버렸다고 선언한다(제48회). 이것은 사실 비슷한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이다. 즉 ‘강바닥’이라고 번역한 부분은 원래 본문에서 ‘진도저陳到底’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삼장법사가 출가하기 전의 성이 진씨라는 점과 ‘진陳’이라는 글자가 ‘가라앉다’라는 뜻의 ‘침沈’ 또는 ‘정말’을 뜻하는 ‘진眞’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을 이용했다. 그리고 ‘도저到底’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바닥에 이르러버렸다(가라앉아버렸다)는 뜻이 되니, ‘진도저’는 ‘바닥으로 깊이 가라앉았다’ 또는 ‘정말 끝장이 나버렸다’는 뜻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도저’는 의문사로 쓰이면 ‘도대체’, 부사로 쓰이면 ‘결국’이라는 뜻이니, 도대체 어디로 가라앉았는지 모르겠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그의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대사는 도교에서 가장 높이 받드는 세 명의 신 즉, 삼청三淸의 신상을 뒷간—손오공의 표현대로 쓰자면 ‘오곡이 윤회하는 곳’—에 던지며 올리는 황당한 기도에서 압권을 이룬다.

삼청님들, 삼청님들
제 말씀 좀 들어보시오.
먼 곳에서 예까지 오면서
줄곧 요괴를 물리쳤는데
제삿밥 좀 먹으려니
편한 자리가 없소.
당신들 자리를 빌려서
잠시 쉬려고 하오.
당신들은 오래 앉아 계셨으니
잠깐 뒷간이나 다녀오시오.
당신들은 평소에 집에서 끊임없이 잡수시며
말고 깨끗한 도사 노릇을 해왔지요.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더러운 것을 잡숴야 할 것 같으니
이제 냄새나는 천존 노릇도 해보시구려.(제44회)

어리숙하게 보이는 듯하면서도 날카로운 이 기도에서 그는 별로 하는 일 없이 사당에서 제삿밥만 받아먹는 신선들을 비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풍자는 때로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주자국朱紫國에서는 왕비를 구해주면 나라를 바쳐 보답하겠다며 손오공에게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국왕에게 저팔계는, “황제께서 체통이 없으시군요! 어찌 마누라 하나 때문에 강산을 마다하고, 중에게 무릎을 꿇는단 말이오?”라고 쏘아붙였던 것이다(제69회).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팔계의 형상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많은 결점 속에 긍정적 측면들을 적절히 숨겨놓았기 때문에 더욱 절묘한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다. 그는 보통 때는 교활하면서도 때로는 솔직하고, 게으르면서도 때로는 부지런하고, 비겁하면서도 때로는 용감하고 의로운, 모순처럼 보이는 속성들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서열상 둘째 제자이면서도 무거운 봇짐을 도맡아 짊어지는 막내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삼장법사가 요괴에게 붙들려갈 때면 곧잘 서역행을 포기하고 고로장의 평범한 농부로 돌아가자고 사오정을 부추기면서도 때로는 손오공을 훈계할 정도의 의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생김새나 능력, 성격 면에서 모두 특별한 세 제자들 가운데 가장 평범한 인간의 심성을 대변하는 존재가 바로 저팔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으로 인해 그는 종종 청자(또는 독자)들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고, 그들이 가장 친근하게 여기는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결국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평범한 존재[肉眼凡胎]로서 『서유기』의 청자(또는 독자)들을 포함한 인간은 대부분 모순적이고 부조화로 얽힌 결함들을 상시적으로 안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