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정자의 여름山亭夏日/당唐 고병高騈
綠樹陰濃夏日長 초록 숲 짙은 녹음 여름날 해 긴데
樓臺倒影入池塘 누대 그림자 연못에 거꾸로 비치네
水晶簾動微風起 수정 발 찰랑찰랑 실바람 불어오니
滿架薔薇一院香 시렁의 장미꽃 정원에 가득한 향기
이 시의 제목이 <산거하일(山居夏日)>로 된 곳이 많다. 산정(山亭)보다는 산거(山居)가 범위가 넓다. 시 내용을 보면 제목에서 밝힌 대로 산속 정자에서 향유하는 여름 풍경을 시의 소재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여름의 더위 때문에 녹음이 짙기도 하고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 눈에 녹음이 더 두드러지기도 한다. 날이 더운 한낮에 답답한 시인은 정자로 나간다. 누각 그림자가 맑은 연못에 거꾸로 비쳐 있다. 물이 아주 맑아 수정 같다. 바람이 불어오니 잔물결이 일어난다. 마치 수정 발 같다. 이 수면에 불어오는 미풍을 타고 정원에 시렁을 만들어 키운 장미의 향기가 그윽하게 코에 와 닿는다. 여름의 색에 이어 여름의 바람과 여름의 향기를 느낀다.
수정렴(水晶簾)은 실제의 발이 아니라 물결을 비유한 표현으로 보인다. 짙은 나무 그늘에서 누각 그림자 때문에 연못으로 옮겨간 시선에 잔물결이 포착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잔물결은 다시 미풍을 떠올리고 이어 장미향으로 시상이 연쇄적으로 옮겨 간다. 때문에 3구를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인과 관계를 고려하여 ‘실바람 불어오니 수정 발 찰랑찰랑’이라고 함부로 번역하면 시상을 망친다.
시인이 무인인 것을 감안하면 표현력이 놀랍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녹음이 짙다는 말로 여름의 더위가 맹렬함을 표현하였고 연못물이 맑다는 것을 누각의 그림자로 드러냈다. 정원에 만개한 장미꽃은 실바람에 실려 온 향기로 상상력을 부추긴다.
이런 기법을 볼 때 이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런 정취 있는 여름의 풍경을 음미하는 자신의 세련된 감각일 것이다.
고병(高騈, 821~887)은 자가 천리(千里)로 당나라 때 여러 절도사를 지내고 양주(揚州)일대에서 할거하다가 부하에게 피살된 인물이다. 신라사람 최치원이 황소(黃巢)의 난 때 종사관으로 모신 상관이 바로 고병이다. 고병은 무인이지만 이 시에서 보듯이 문학을 상당히 애호하였다. 최치원과 말이 잘 통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구판본 《참가시》에 발해인(渤海人)이라 한 것은 이 사람이 고구려 후예라는 말이 아니라 산동의 발해 고씨라는 말이다. 그의 고향은 유주(幽州), 즉 지금의 북경 남쪽이고 조부의 고향은 지금의 하북성 경현(景縣)에 해당한다.
365일 한시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