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 부부 14
그 전 여자친구와의 로맨스는 벌써 십 년이 다 되었고 돌아보면 가벼운 설렘으로 시작해 서로 합의 하에 끝낸 것이 다였다. 밀당부터 이별까지 시간을 다 합쳐도 일 년이 채 안 됐으며 샤오놘이 대학에 입학하기 2년여 전에 벌써 관계가 끝이 났다. 헤어질 때는 그래도 친구로 지내자고 말한 듯했지만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멀리했다. 계속 대학을 다니면서 레이례는 자기가 사쉐팅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서로를 경계하듯 지나가다 마주쳐도 못 본 체했다.
이별은 레이례가 먼저 제안했다. 그는 사쉐팅이 교양 있는 척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귀면 사귈수록 그녀가 공들여 가꾸는 단정한 이미지에 반감이 들었다. 예를 들어 그는 그녀가 삼복더위에도 고집스레 검은 팬티스타킹을 착용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자연스럽게 맨 다리를 드러낸 캠퍼스의 여학생들 속에서 그녀는 언제라도 레드 카펫 위를 걸을 준비가 돼 있다는 듯이 가늘지도 않은 두 다리를 눈에 거슬리게 감싸고 다녔다. 그리고 그녀가 늘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사귄 지 6주 반이 되면 촛불을 켜고 만찬을 즐겨야 한다”거나 “연애 99일째에는 깜짝 선물을 해야 한다” 같은 연애의 상투적인 형식들도 다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매일 패션 잡지를 들고 다니며 이 머리 스타일이 어떤지, 저 목걸이가 예쁜지 묻는 것도 참아주기 힘들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행복은 물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에 지나지 않았으며 패션 잡지만 보고 그림 없는 책은 읽지도 못하면서 걸핏하면 남들과 책 보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 그녀는 절대 책을 ‘읽는다’고 하지 않고 책을 ‘본다’고 했다. 레이례는 그녀가 쓸데없는 데에만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에 속하는 스테이크, 핸드백, 드레스 따위는 죄다 그와 무관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뚜렷한 인생관을 갖고 있어서 여자는 부드럽고 고상해야 하며 로맨스를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레이례는 그렇게 거창한 문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또 자기는 그녀에게 그런 고상함과 로맨스를 계속 보장해줄 수 없음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구경할 때는 사람을 매료시키지만 정작 입주하면 바로 갖가지 불편함을 알게 되는, 겉만 번드르르한 모델하우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례가 헤어지려고 마음먹었을 때 사쉐팅도 두 사람의 연애가 닭갈비처럼 짜증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때 눈물을 흘린 것은 단지 그에게 차이는 것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고통은 이별 때문이 아니라, 그 이별을 상대방이 제안했고 자기는 먼저 우아하게 이별을 고하는 쪽에 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소문을 들어보니 그녀는 이미 사업가의 아내가 되어 그 많고 자질구레했던 삶의 이상을 손쉽게 실현한 듯했다. 생각해보면 꽤 여러 해 못 보기는 했지만 레이례는 그녀에 관해 전혀 궁금한 것이 없었다.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러도 그럴 것 같았다.
“오늘 오후에 MSN에서 모기 언니랑 마주쳤지 뭐야. 이번 모임은 가족 동반이라면서 나도 같이 오라고 했어.”
선후배의 좋은 점은 바로 같은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당연히 그 영역이 좁다는 것이다.
“우리 갈까?”
레이례는 조금 주저했다.
“가야 되지 않아? 선배도 사람이면 그래서는 안 되지. 친구가 외국에서 돌아왔는데 안 만난다고? 예전 여자친구가 좋은 데로 이사를 갔는데 축하도 안 해준다고?”
샤오놘은 레이례와 사쉐팅의 옛날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것에 관해 꼬치꼬치 캐물은 적이 없었다. 단지 이따금 참지 못하고 사쉐팅의 스타킹 속 굵은 다리를 비웃곤 했다. 레이례는 샤오놘이 둔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 샤오놘의 기질과 도량을 잘 드러냈다. 그녀는 이제껏 무슨 가상의 적을 설정해본 적이 없었고 자기와 관련 없는 자잘한 일에 신경 쓰는 것도 싫어했다.
“너는?”
레이례는 샤오놘이 같이 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다. 그는 샤오놘과 사쉐팅의 만남이 필연적으로 다른 친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사쉐팅은 기세등등하고 샤오놘도 지기 싫어하니 역시 필연적으로 보기 안 좋은 장면이 연출될 것 같았다. 그는 그녀가 안 갔으면 했다. 쓸데없는 말썽을 피하기를 바랐다.
“내가 가는 게 싫어?”
“그냥 가.”
레이례는 조금 고민했지만 결국 자신의 염려를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때는 진짜 이유도 가짜 이유처럼 들리게 마련이고 또 괜한 걱정을 한다고 핀잔을 들을 것 같았다.
“그러면 케이크 만들어서 가는 건 어때?”
샤오놘은 그가 왜 머뭇대는지는 상관도 안 했다. 신경이 온통 케이크에만 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