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왕안석王安石 하씨댁 정원의 정자에 쓰다題何氏宅園亭

하씨댁 정원의 정자에 쓰다題何氏宅園亭/송宋 왕안석王安石

荷葉參差卷 연잎은 이냥저냥 말려 있고
榴花次第開 석류꽃 차례차례 피어나네
但令心有賞 마음에 즐기는 게 있을 뿐
歲月任渠催 세월은 가는 대로 맡기거니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이 만년에 지은 작품으로 추정된다. 노년기에 세상에서 물러나 화초에 마음을 붙이며 세월을 보내는 모습을 시에 담았다. 지금까지 왕안석 시 몇 편을 소개하였는데 시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반면 참고할 서적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종래 왕안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연구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까? 왕안석 시는 작품 수준이 높아 연구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첫 구의 ‘참치(參差)’는 연잎이 어떤 것은 많이 말리고 어떤 것은 덜 말리고, 또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해서 ‘가지런하지 않은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이다. 3구의 ‘령(令)’은 ‘~ 하게 하다’는 사역의 의미이다. ‘임거최(任渠催)’의 거(渠)는 앞에 나온 ‘세월’을 말한다. 세월이 재촉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상(賞)은 ‘상완(賞玩)’, ‘상심(賞心)’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대상을 애호하여 거기에 마음을 붙이고 즐기는 것을 말한다. 3, 4구의 의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마음이 몰입되어 세월을 잊고 산다는 것이다.

이 시를 하씨 댁의 정원 정자에 썼기 때문에 1차적으로는 하씨 댁 정자의 주인이 연잎과 석류꽃을 감상하며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신선처럼 산다는 칭찬으로 우선 이해된다. 그러나 이 시를 왕안석이 지었다는 점에서 파란만장한 정계에서 은퇴한 노인 왕안석의 생각을 읽을 수도 있다.

자신이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화초가 될 수도 있고 서화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겐 여행이나 독서가 될 수도 있고 봉사 활동이 될 수도 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더 늦기 전에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마련해야 할 것이고, 나이가 젊은 사람은 보다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붙이며 노년을 보낼 준비를 한다면 더욱 인생이 값지게 될 것이다. 루쉰 공원이나 탑골 공원 등에서 노인들이 할 일 없이 서성이는 것은 살풍경이다.

이 시는 기본적으로는 취미 생활에 빠져 여생을 보내는 처세를 다루고 있지만 인생 전체를 염두에 두고 시의(詩意)를 확장해 볼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며 인생을 보낸 사람이 ‘자신이 진정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서 자신의 생명과 노력을 쏟아 부어라.’라고 하는 충고로 연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격언 같은 마지막 2구는 왕안석의 깨달음이 담긴 듯도 하여 의미심장한 여운이 감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시를 읽고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드는지 궁금하다.

《清人畫弘曆是一是二圖軸》, 北京故宮的館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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