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언덕을 혼자 걸으며 꽃을 구경하다가 江畔獨步尋花/당唐 두보杜甫
黃四娘家花滿蹊 황씨네 넷째 딸 집 앞길에 꽃이가득
千朵萬朶壓枝低 천 송이 만 송이 가지가 늘어졌네
留連戲蝶時時舞 못 떠나는 나비는 때때로 춤을 추고
自在嬌鶯恰恰啼 자유로운 꾀꼬리는 교태스럽게 우네
761년 봄, 두보 나이 51세 때 성도의 초당에서 7언 절구 7수를 연작으로 쓴 시이다. 58회에서 <물가 정자에서[水檻遣心]>를 소개하였는데 이 시가 지어지기 1년 전의 시이다. 두보가 765년 54세로 배를 타고 정처 없이 선상 생활에 돌입하기 전까지 안정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던 시기인 만큼 이처럼 생활의 여유와 정취가 묻어나는 한적한 시가 나온 것이다.
완화계 강둑을 따라 걸으며 꽃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황사랑(黃四娘) 집 앞에 왔다. 황사랑은 중국 특유의 표현으로 황씨 성을 쓰는 집의 4번째 딸을 말한다. 그 딸이 출가해 사는 집에는 주인이 꽃을 좋아하는지 집 앞 진입로 소로에 꽃이 만발하였다. 영산홍, 죽단화, 철쭉은 천 송이로 세고 이팝나무, 조팝나무, 씨리 꽃은 만 송이로 셀만한데 다 가지가 늘어졌다. 나비는 이 꽃들이 너무 좋아 다른 데 갈 생각을 않고 이곳에서 가끔 빙빙 춤을 추며 놀고 있고, 꾀꼬리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꽃나무 어느 가지에서 자유롭게 울어 본다.
이 시에서 말하는 강은 바로 초당 옆으로 흐르는 완화계(浣花溪)이다. 흡흡(恰恰)은 꾀꼬리의 울음을 표현한 의성어이다. 중국 한시에는 의성어, 의태어가 매우 많이 나오는데, 우리말로 번역할 때 늘 어려움을 느낀다. 우리나라 언어에 발달한 형용사의 어미나 접두사 등을 외국인들 역시 어려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맨 앞에는 꽃을 구경하는 장소를 제시하고 ‘황사랑’이란 말을 써서 친근한 시골 정서를 환기한다. 이어 집 앞 소로와 꽃을 차례로 클로즈업한다. 이어 그 꽃에서 놀고 있는 나비를 포착하고 다시 그 나비를 보는 시인의 시선을 그린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꾀꼬리 울음소리로 여운을 남긴다. 그러므로 마지막의 ‘교(嬌)’는 꾀꼬리의 모습을 말한 것이 아니라 매끄러우면서도 가볍게 미끄러지듯 나는 꾀꼬리 특유의 소리를 말한 것이다. 그 소리를 ‘흡흡(恰恰)’으로 표현한 것인데, ‘꾀꼴꾀꼴’이란 말로는 도저히 그런 뜻이 담기지 않고, 이 ‘교(嬌)’ 자도 살리고 싶고 해서, 억지로 ‘교태스럽게’라고 번역해 보았다. 독자들이 좋은 표현을 찾아주길 기대한다.
사람이 생활이 어려우면 생각도 복잡하고 시도 침울하게 나오며, 삶에 여유가 있으면 생각이 절로 밝아지고 윤기가 난다. 두보의 침울한 다른 시들과 달리 이 시 연작은 51세 두보가 즐거운 늦봄의 한 때를 만끽하는 찬란한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365일 한시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