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晩春 唐 韓愈/당唐 한유韓愈
草樹知春不久歸 초목들은 봄이 머지않아 끝날 것을 알고서
百般紅紫鬪芳菲 온갖 종류의 색깔로 아름다운 모습 다투네
楊花榆莢無才思 버들개지 비술나무 열매는 딴 재주는 없고
惟解漫天作雪飛 하늘 가득 눈을 만들어 뿌릴 줄은 아는군
봄은 머지않아 갈 것이다. 나무와 풀은 누구보다 이것을 분명히 안다. 때문에 온갖 종류의 화초와 수목은 봄이 가기 전에 저마다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아름다운 모습을 경쟁적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보아하니, 버드나무 꽃과 비술나무 열매는 기화요초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적인 초목에게도 내세울만한 별다른 재주나 생각이 없고, 오직 하늘 가득히 버들개지와 비술나무 열매에 달린 꽃을 이용해서 눈을 만들어 뿌리는 것만 안다는 듯이 지금 그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것들 참. …… 허허허.
이 시는 연재 80회에서 소개한 백거이의 <봄바람[春風]>과 짝이 되는 시이다. 백거이의 시가 모든 사물은 각자 제 나름대로의 봄바람을 가진다는 메시지를 준다면 이 시는 모든 사물은 저 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철리를 제시하며 사람들에게 시간이 있을 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현하라는 가르침을 준다.
‘재사(才思)’는 아름다움을 드러낼 만한 재주나 좋은 생각을 말한다. 버들개지와 비술나무 열매는 이런 능력이 다른 일반적인 초목에 비해 떨어진다. 이 나무들이 가진 유일한 능력은 하얀 버들개지와 비술나무 열매를 이용해 하늘 높이 날려 봄에 눈처럼 내리게 하는 것이다.
얼핏 이 두 사물을 비꼬거나 흉보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시인이 그런 걸 무엇 하러 시에 쓰겠는가? 오히려 기특하게 생각하는 유머가 담긴 표현으로 보인다. 한유(韓愈, 768~824)는 이전의 형식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4.6 변려문을 반대하고 진한 이전의, 뜻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 산문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였다. 즉 다양한 의미를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표현하자는 말이다. 대신 문장 속에 성현의 도를 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백거이 역시 일상 속에서 시의 제재를 즐겨 찾고 통속적인데 많은 관심을 보인 상당히 대중 취향이 있었던 시인이다. 기존의 획일적인 문풍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한유나 백거이는 서로 통한다. 이런 정신이 결국 모든 사물이 가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사상을 시로 구현해 낸 것이라 본다.
지난번에 소개한 송나라 시인 좌위(左緯)는 시의 뜻[意]과 이치[理], 정취[趣] 3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는데, 그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시는 전달하는 뜻이 좋고 자연 사물을 통해 인간 삶의 이치를 담았고 늦봄의 정취를 구비한 시라 할 수 있다.
한유와 같은 심원한 안목을 가진 시인의 눈으로 이 늦봄에 본래 있었지만 우리가 미처 유념하지 못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365일 한시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