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깊어 가는데春遠/당唐 두보杜甫
肅肅花絮晚 사르르 꽃잎 버들개지 떨어지고
菲菲紅素輕 하늘하늘 붉고 흰 것 떠다니네
日長惟鳥雀 날은 길어도 새들만 와서 지저귀고
春遠獨柴荊 봄은 깊어도 사립문 홀로 서 있네
數有關中亂 자주 관중에 전란이 발생하니
何曾劍外清 어찌 검각 이남 다시 안정될까
故鄉歸不得 고향으로 돌아가지를 못하니
地入亞夫營 곽자의 군영이 주둔하고 있네
이 시는 765년 두보가 54세 때 성도의 초당에서 지내면서 지은 시이다. 이해 4월에는 두보를 후원해 주던 절도사 엄무(嚴武)가 병사하고 5월에는 두보가 배를 타고 가족들을 데리고 길을 나선다. 그러므로 이 시는 완화계(浣花溪)에서 지내던 마지막 늦봄에 지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행에 아보(亞父)라고 한 것은 한 나라 문제 때의 주발(周勃)을 말한다. 당시 흉노(凶奴)가 침입하자 장안 서쪽에 세류영(細柳營)을 구축하여 막은 일이 있다. 지금 당나라는 안사의 난은 어느 정도 퇴치하여 급한 불은 껐는데, 이 틈을 노리고 위구르가 쳐들어 와서 곽자의(郭子儀)가 그들을 방어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시에서 말하는 아보의 군영은 바로 곽자의의 군영을 말하고 그 군영에 고향 땅도 편입되었기 때문에 돌아갈 수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두보의 고향은 52회 연재에서 말하였듯이 본래 하남 공현(鞏縣)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그는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주로 낙양(洛陽)에서 보냈으므로 사실상 우리의 개념으로 본다면 고향은 공현이고 실제로 자란 곳도 낙양인 셈이다. 그럼 마지막 말은 무슨 뜻일까?
두보는 35세 때부터 주로 장안에서 지냈다. 두보가 말하는 고향은 장안(長安)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주두시(補註杜詩)》 등에서는 고향을 장안으로 잡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여기서 말한 고향은 ‘이전에 살던 곳’ 즉 ‘구거(舊居)’의 의미에 오히려 가깝다. 검외(劍外)는 검각(劒閣) 이남, 즉 촉도를 나오면 마주하는 사천 일대를 말한다.
앞 4구는 늦봄의 서경을 말하였고 뒷 4구는 자신의 심경을 서술하였는데 특히 3, 4 구에서 외진 곳에 있는 자신의 집을 아무도 찾지 않는 상황을 묘사한 구절은 정말 특별하다.《두시상주(杜詩詳註)》 에서 황생(黃生)이 말한 ‘경치가 있는 경치를 묘사하는 것은 시인들이 대체로 능숙하지만 경치가 아닌 경치를 묘사하는 데는 오직 두보만이 독보적이다. [寫有景之景, 詩人類能之, 寫無景之景, 惟杜甫擅場.]’라는 지적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1, 2 구의 서술어는 만(晩)과 경(輕)이다. 만은 꽃과 버들개지가 사르르 떨어지는 소리를 통해 봄이 저물어간다는 것을 말하고, 경은 붉은 꽃과 흰 버들개지가 가볍게 하늘에 떠서 날리는 것을 말한다. 꽃잎은 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내려 앉거나 바람에 날려가고 버들개지는 눈처럼 내린다.
첫 4구는 모두 대구가 절묘한데 뒤의 감회부분과 어울려 처량한 고독감과 상실감을 준다. 두보의 시는 마치 마른 떡과 같아 꼭꼭 씹어서 음미하면 정말 뛰어나다는 것을 절로 알게 된다. 다른 여타 시인들과 확실히 차원이 다른 수준에 도달한 느낌을 받는다.
증(曾)은 ‘일찍이’가 아니고 ‘어찌’라는 말이다. 앞에 하(何)와 함께 그렇게 될 턱이 없다고 비탄에 잠긴 말이다.
365일 한시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