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에 벗을 작별하며春夜別友人/당唐 진자앙陳子昻
銀燭吐青煙 밝은 촛불은 맑은 연기 토하고
金樽對綺筵 술잔 잡고 화려한 주연 대하네
離堂思琴瑟 연회에선 금슬 연주에 잠겨들고
別路繞山川 떠나가면 산천을 굽이돌아 가리
明月隱高樹 밝은 달은 키 큰 나무에 가렸고
長河沒曉天 긴 은하수는 새벽이라 흐릿하네
悠悠洛陽道 멀고도 먼 낙양으로 가는 길
此會在何年 이런 만남 어느 해에 다시 할까
이 시는 진자앙(陳子昻, 661~ 702)이 낙양으로 떠나기에 앞서 봄밤에 친구들과 이별하면서 술자리를 마치기 전에 지은 시이다. 진자앙은 당나라 초기의 시인으로 육조 시기의 나약한 시풍을 반대하고 한위 시대의 풍골로 돌아갈 것을 내세우고, 현실을 시문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684년 어느 봄날 24세의 진자앙은 과거를 보기 위해 고향 사천의 사홍(射洪)을 떠나 낙양으로 간다. 진자앙은 679년에 장안 국자감에 입학해서 공부하여 과거에 응시하였지만 떨어져 고향으로 돌아가 경사백가(經史百家)를 두루 공부하여 682년에 다시 응시했지만 또 떨어졌다. 이번 3번째 응시를 위해 떠나기 전날 밤 친구들이 모여 연회를 베풀어 준 것이다. 그런데 전에는 장안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낙양으로 더 멀리 가야한다. 그 이유는 무측천이 실권을 잡아 낙양으로 수도를 옮겼기 때문이다. 이 시는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새벽에 떠나기에 앞서 지은 시이다.
시에서 밝은 촛불을 뜻하는 은촉(銀燭), 좋은 술잔을 의미하는 금준(琴樽), 그리고 화려한 주연 석상을 말하는 기연(綺筵), 송별연을 좋은 집에서 마련한 것을 알 수 있는 이당(離堂), 연회 석상에 풍악을 베푼 것을 보여주는 금슬(琴瑟), 이런 말을 구사한 것은 모두 자신의 장도를 축하해주는 벗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은 표현으로 보인다. 금준은 좋은 술이 담긴 술 단지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술잔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 6구는 모두 대구로 이루어져 있어 진자앙의 시문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1, 3구는 끝에 ‘~하니’ 토를 붙여야 할 것 같지만 이런 작가의 의도를 고려하면 ‘~요’ 토를 붙여야 한다. 특히 ‘離堂思琴瑟이요, 別路繞山川이라.’는 ‘離堂思琴瑟하니, 別路繞山川이라.’로 토를 붙여 ‘이별 연회를 마련한 전당에서 금슬 연주를 들으니, 절로 이별하고 가는 앞길에서 산천을 구비 돌아가는 것 같다.’는 말로 해석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전후 구의 구성을 고려하면 지금처럼 토를 붙여 ‘지금은 이별의 전당에서 금슬 연주를 들으며 사념에 빠져들고, 내일은 산천을 굽이돌아 낙양으로 가겠지.’로 해야 작자의 의도에 부합할 듯하다.
금슬(琴瑟)은 《시경》 <녹명(鹿鳴)>에서 유래한 것으로 귀한 손님이나 벗을 맞이하여 연주하는 음악을 말한다. 그러므로 ‘思琴瑟’은 ‘벗과의 우정을 추억한다.’는 말 보다는 ‘금슬 연주를 들으며 말없이 여러 생각에 잠겨든다.’는 의미로 보인다. 또 이당(離堂)을 ‘집을 떠나면’으로 해석하는 것은 전후 대구를 고려하지 않은 해석이다. 3, 4 구가 아주 정채가 있는데 특히 사(思)자와 요(繞)자가 묘하다.
이런 작품을 지은 진자앙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 과거에 급제하여 우습유 등 관직 생활을 하게 된다. 때문에 마지막 연에서 말한 ‘이런 모임’을 다시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의 친구들이 오히려 장안에 와서 술을 대접받았는지 모른다. ‘유유(悠悠)’는 그의 운명을 예감한 말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에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궈다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용악의 시가 주막에서 만난 여인과 지나간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라면, 진자앙의 이 시는 벗과의 이별을 앞두고 음악을 들으며 여러 생각에 잠겨들고, 또 혼자 가는 먼 길에 대한 사념을 담고 있다.
술자리가 깊어 어느덧 새벽까지 이어졌다. 달도 기울어 큰 나무에 가리어졌고 밤하늘에 뜬 은하수의 수많은 별들도 이제 밝아오는 여명 속에 흐려져 간다. 멀고도 먼 낙양으로 가는 천 리 만 리 길, 이제 가면 이 정다운 친구들과 언제나 다시 만날까.
친구들과의 우정이 가슴을 파고드는 청년기의 감수성을 지닌 작품이다. 지금은 대중가요가 모두 ‘사랑’ 일색이고 음료 역시 ‘커피’ 하나로 ‘평천하’ 되었지만, 고인들의 작품을 보면 친구와의 우정이 지금의 사랑 못지않게 절절하다. 사람들의 감정이 고금에 차이가 없다면 남녀의 사랑에 몰입하지 않은 옛날이 오히려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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