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봄날春晩/당唐 최도융崔道融
三月寒食時 삼월 한식 이 무렵엔
日色濃於酒 햇살이 술보다 진하네
落盡牆頭花 담장 위 꽃은 다 지고
鶯聲隔原柳 꾀꼬리도 저편 버들에서
중국 시인들의 시를 보면 우리나라 보다 대략 20일 정도는 빠른 계절감을 보인다. 시가 많이 지어진 중원이나 강남이 우리나라 보다 그만큼 남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 시 역시 초여름의 계절감이 드러나 있다.
‘술보다 진하다’는 말은 햇살이 강해졌다는 의미이다. 장두(牆頭)는 담장의 위를 말한다.
한식 무렵이 되니 햇살이 강해진다. 담장 위에 탐스럽게 피어 있던 꽃들은 이제 다 졌고 꾀꼬리도 어느새 녹음이 진 저편 언덕의 버드나무에서 운다. 이제 봄날이 가는가보다.
시인들의 시를 보다보면 나의 눈도 덩달아 예리해진다. 지난 33회에 소개한 육유(陸游)의 시 <입춘 전 3일에[立春前三日作]>에 “스르르 잠들었다 일어나니, 해가 벌써 쪼끔 길어졌네[悠然睡還起, 已覺日微長]”라는 표현이 있어 입춘 무렵에 해가 길어짐을 알았는데, 이 시를 보면 한식 무렵에 햇살이 강해짐을 새삼스레 깨닫고, 한식 앞에 곧 청명이 있거나 날이 겹침을 기억하게 된다.
봄은 따스한 햇살과 함께 왔다가 점점 강해지는 햇살과 함께 지나가는가 보다. 시인의 서정은 배제하고 계절의 변화 자체를 소재로 다룬 시여서 계절감이 더 부각된다.
최도융(崔道融, 880년전~907년)은 당 말의 시인으로 형주 강릉(江陵) 사람이다. 그는 젊어서 섬서, 화북, 하남, 강서, 복건 등지를 여행하였고 징사(徵士)로 뽑혀 우보궐(右補闕)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전란을 피해 민(閩)으로 들어가 동구산인(東歐散人)이라고 자호하였다. 사공도(司空圖) 등과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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