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서쪽 물가에서 滁州西澗/위응물韋應物
獨憐幽草澗邊生 물가에 자라는 풀 특별히 사랑하는데
上有黃鸝深樹鳴 그 위 무성한 나무에서 꾀꼬리가 우네
春潮帶雨晚來急 봄 물결 비와 함께 저물녘 밀려드는데
野渡無人舟自橫 인적 없는 나루터에 빈 배만 흔들리네
이 시는 위응물(韋應物, 737~804)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위응물은 783년 저주 자사에 부임한 뒤에 늘 이 서간에 와서 휴식을 취했는데 그가 자사에서 물러난 뒤에도 이곳에 와서 자연을 즐기곤 하였다. 이 작품은 785년에 지어진 것으로 《당인절구선》에선 보고 있다. 이 시에 대해서는 종래 2가지 관점이 있어 왔다.
먼저 회화성이 특별히 뛰어난 산수시라는 정통적 해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시는 왕유, 유종원 등의 시와 함께 회화성이 뛰어나고 시의 전반적 정조는 도연명의 시풍과 같다. 특히 불어난 봄 물결이 갑자기 쏟아지는 봄비와 함께 기세를 띠는 광경과 사람 없는 나루에 빈 배만 몇 척 흔들리고 있는 풍경은 자연이 만든 한 폭의 수묵화이다.
이 시의 무대가 되는 저주는 구양수의 <취옹정기> 산실이기도 하다. 저주의 서쪽에 바로 낭야산과 호수가 있는데 이 시에서 말한 서간은 바로 그 호수의 한 모퉁이 계곡으로 보인다. 제목 번역을 시내나 계곡으로 하지 않고 물가라고 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위의 두 구는 비가 오지 않을 때 서간의 아름다운 광경을 그리고, 아래 두 구는 비가 올 때의 광경을 묘사하였는데 모두 청유(淸幽)한 정취를 띠고 있다. 나루에서 흔들리고 있는 배는 더욱 시인의 마음이 이입되어 있다.
또 다른 시각은 이 시가 풍자시라는 관점이다. 왜 하필 ‘특별히 사랑한다.[獨憐]’이런 말을 썼겠으며 갑자기 비가 왜 오느냐는 것이다. 군자는 물가에 버려져 있는데 반해 소인은 높은 데서 득세를 하고 있다. 비를 데리고 다급하게 몰아치는 것은 소인배들의 흉포한 탄압이다. 그런 가운데 아무도 없는 나루에 빈 배가 놓여 있는 것은 군자가 산림에 은거하고 있는데 아무도 천거해 주지 않는 것을 암시한 것이라 한다.
이런 해석은 《만수절구선(萬首絶句選)》과 《천가시(千家詩)》에 나온다. 요즘 새로 주석을 낸 책에는 전반적으로 정통적 해석을 앞세우고 이런 해석은 부수적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특이하게 《칠언당음》을 보면 먼저 풍자시 관점으로 이 시를 소개한 다음, 산수시 관점으로 이 시를 보충 해석하고 굳이 풍자시로 볼 것 없다고 마무리 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에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너무나 뛰어나 귀신이 와서 도와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금에 이 구절이 회자되는 것은 그 시취와 화경이 어울려 빚어내는 그윽하고 맑은 정취에 공명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후인들 시를 보면 이 구절을 인용하거나 점화(點化)한 것이 많다. 이 시를 풍자시로 보려고 하는 이유도 이 시가 산수를 묘사하긴 하였지만 그 풍경이 무언가 산수 이상의 것을 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것이다. 우리가 뛰어난 자연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자연 자체로만 보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때로 자연의 이치가 인간의 삶인 것도 같고 인간의 삶이 자연의 이치와 닮은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 이 시를 다시 보면서 춘조(春潮)라는 말을 널리 찾아보았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물을 가리키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봄에 불어난 강물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호수의 물이 불어나 시인이 있는 나루터 부근까지 밀려 든 것으로 이해된다. 독린(獨憐)의 의미는 1구까지만 걸리는 것이 역시 자연스럽다.
이 시는 역대 당시를 뽑은 작품집에는 거의 빠짐없이 들어 있고 현대에도 마찬가지로 사랑받고 있다. 《당시배항방》에 20위에 올라 있다.
365일 한시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