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백거이白居易 전당호의 봄 산책錢塘湖春行

전당호의 봄 산책錢塘湖春行/당唐 백거이白居易

孤山寺北賈亭西 고산사 북에서 가공정 서쪽 지역
水面初平雲脚低 수면은 넘실넘실 구름은 나직하네
幾處早鶯爭暖樹 몇 곳의 이른 꾀꼬리 양지를 다투고
誰家新燕啄春泥 뉘 집 온 제비인지 봄 진흙을 쪼네 
亂花漸欲迷人眼 꽃들은 점점 사람의 눈을 유혹하고
淺草纔能沒馬蹄 풀들은 이제 말발굽을 가릴만 하네
最愛湖東行不足 내 사랑 서호의 동쪽 아쉬움 남아
綠楊陰裏白沙堤 초록 버드나무 그늘 드리운 백사제

823년 봄 백거이가 항주 자사로 부임한 52세 때 지은 시이다. 봄날 서호 백제(白堤)를 산책하며 즐기는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하고 있다.

서호에 대해서는 이 연재 45, 63, 74회 등의 작품에서 말한 적이 있다. 서호십경 중에서 보통 제 1경을 단교잔설로 친다. 서호의 구경도 여기서부터 하는 게 가장 좋고 실제로 서호에 가 보면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다. 단교 부근은 서호의 동쪽이자 북쪽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백제를 따라 가면 고산(孤山)이 나오는데 이 고산을 끼고 가는 길을 고산로(孤山路)라고 한다. 이곳에 절강성박물관, 누외루(樓外樓) 등이 있고 마지막에 서령인사(西泠印社)가 나오고 서령교를 지나 섬을 나가면 악비 사당이 있다. 고산 뒤를 돌아가면 임포(林逋)의 방학정이 나온다.

지금 백거이가 말하는 고산사는 영복사(永福寺)로 고산 꼭대기에 있던 사찰을 말하며 가정은 백거이보다 먼저 항주 자사를 지낸 가전(賈全, 785~804)이 세운 정자, 즉 가공정(賈公亭)을 말한다. 가정은 문헌에 전당호(錢塘湖)에 정자를 세웠다고만 되어 있고 50년이 채 안되어 없어졌기 때문에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세운 곳을 전당호라고 한 점이나 시 내용을 미루어 단교를 건너가지 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백제와 고산로를 따라 걷는 구간을 백거이가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 나오는 백사제(白沙堤)는 흔히 백제(白堤)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이 백거이가 처음 만든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백거이 이전부터 있던 것으로 보인다. 《백거이집전교(白居易集箋校》 (상해고적출판사)와 《백거이시집교주(白居易詩集校註)》(중화서국)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그 점을 고증하고 있다. 백거이가 전당호를 수축한 것은 이 시를 쓴 이듬해인 824년, 53세 때이다. 백사제를 줄여 백제, 사제(沙堤)로 부르던 것이 공교롭게 백거이의 성과 동일하여 이런 혼동이 발생한 것으로 고증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른 아침에 이 고산을 거닐면 확실히 좋다. 강희제의 행궁도 이 고산에 있었고 서호 일대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음식점 누외루도 바로 이 고산에 있다. 백거이가 이 시에서 말한 아름다운 경치는 바로 지금 항주 서호로 가서 이 고산로를 따라 걸으면 대부분 확인할 수 있고 그날 날씨에 따라 더 멋진 광경도 얼마든지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서호십경을 모두 다 가보았는데 두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하나는 서호에 작은 배를 빌려 호젓하게 호수 위를 떠다니며 풍광을 감상하지 못한 것이고 또 하나는 영은사에 가보지 못한 것이다. 서호에서 유람산을 타고 삼담인월(三潭印月)을 가 보면 확실히 더 아름다운데 왜 백거이가 배를 타고 서호를 떠다니는 것을 시로 쓰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이 시는 처음과 끝이 수미쌍관으로 되어 있다. 첫 구에서 말한 전경이 끝 부분에서 자신이 말한 ‘가장 사랑하는 서호의 동쪽’이다.

‘수면이 처음으로 평평해지고 구름의 다리가 낮아져 있다.[水面初平雲脚低]’는 말은 봄이 되어 수면이 제방과 평평해질 정도로 물이 많아지고 하늘의 구름도 낮게 드리워 물빛에 구름이 비치는 아름다운 경관을 말한다. 하늘빛과 물빛, 버드나무 푸른빛이 서로 어울리고 비추는 풍경이 바로 서호의 기본 경관이다.

‘다녀도 부족하다[行不足]’라는 말은 경치가 너무 좋아 싫증이 전혀 나지 않고 산책을 마치면 부족한 듯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다.

이 시는 가운데 부분이 참 아름답지만 ‘꽃들은 점점 사람의 눈을 유혹하고[亂花漸欲迷人眼]’와 ‘풀들은 이제 말발굽을 가릴만 하네[淺草纔能沒馬蹄]’는 관주를 칠 만하다. 여기 저기 자연스럽게 핀 꽃들이 사람의 시선을 점점 끌 정도로 한창 아름다움을 다투고 있고, 키가 작은 풀들은 이제 겨우 지나가는 말발굽을 가릴 정도로 자랐다. 사람의 눈을 혼미하게 한다는 ‘미인안(迷人眼)’과 말발굽을 가린다는 ‘몰마제(沒馬蹄)’란 표현이 특히 묘미가 있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백거이가 서호를 노래한 시는 30여수 정도 되며 이 시들은 모두 서호를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이 시는 바로 그런 시들 중의 명작이라 할 만하다.

항주 서호 사진 출처 19lo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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