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유운柳惲 강남곡江南曲

강남곡江南曲/남북조南北朝 유운柳惲

汀洲采白蘋 강 모래섬에서 마름 뜯으니
日暖江南春 날이 따뜻해진 강남의 봄
洞庭有歸客 동정호에 돌아오는 손님
瀟湘逢故人 소상에서 남편을 만났네
故人何不返 남편은 왜 안 돌아오나요
春花復應晚 봄꽃도 다시 지려 하는데요
不道新知樂 새 여자와 단꿈 꾼다 말 못하고
只言行路遠 그저 길이 멀다고 말하였네

이 시는 일종의 민요풍의 시로 남녀 두 사람이 번갈아 노래하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다. 객지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여인의 그리움과 불안함이 교차하는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시를 읽어보면 매우 노련한 작가의 솜씨임을 느끼게 된다.

유운(柳惲, 465~517)은 남조 양(梁)나라에서 시중 등 고관을 지낸 사람으로 저명 시인이다. 이 사람은 시 외에도 음률에 밝고 금(琴) 연주에 정통했으며, 바둑, 의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심약(沈約)과 함께 시율을 정하기도 하였고 오흥 태수(吳興太守)를 지내며 시를 많이 지었다고 한다.

이 시의 화자는 객지에 나갔다가 귀향하는 어떤 사람을 동정호에서 만났는데 이 사람이 남편을 소상강에서 목격했다고 한다. 여인이 ‘우리 남편은 왜 안 오나요? 이제 봄도 다시 저물어 가는데요.’라고 묻는 질문에, 차마 딴 여자를 만나 새로 살림을 차렸다는 말을 못하고 그저 길이 멀어 그렇다고 둘러댄다.

맨 앞 두 구는 합창을 하면 좋게 되어 있는데 강남의 아름다운 배경을 소개하였다. 이 시를 처음 볼 때는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지만 여운이 짙게 감도는 사연을 듣고 다시 이 풍경을 보면 이전과 다른 풍경임을 느끼게 된다.

여인의 말에 봄꽃이 다시 지려 한다는 말을 보면 남편이 떠난 지 최소 만 1년 이상 지난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해가 지났을 지도 모른다.

어떤 판본에는 暖이 落으로, 應이 將으로, 只가 且로 되어 있다. 이 글자로 바꾸어 보면 한자의 쓰임도 알게 되고 미묘하게 또 다른 맛이 나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에 고인(古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만약 다른 책에 이 말이 있다면 ‘옛 사람’이나 혹은 ‘죽은 사람’, ‘옛 친구’ 등의 의미로 쓰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여기서는 내용상 마름을 뜯는 여인의 남편이나 최소한 정인이 되어야 한다. 동정호에서 만난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물을 수 있으려면 ‘남편’이란 의미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47회에 소개한 오균(吳均)의 시에 새로 사귄 사람을 ‘신지(新知)’라 하였는데 이 시에도 새 여자를 ‘신지’로 그 여자와 살림하는 재미를 ‘신지락(新知樂)’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아마도 그 당시, 전에 사귀던 사람이나 남편, 혹은 아내를 고인이라 하고 새 사람을 신지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일반 민간에 남녀 관계가 상당히 자유스러웠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중국에서 유학이 본격적으로 퍼진 것은 한나라 때이지만 민간에 널리 보급된 것은 송나라 정도에 와야 한다. 이런 시를 통해 남북조 시대 강남 사회의 자유분방한 애정 풍속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연애의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자유분방하여 좋지만 그 반대로 이 여인처럼 순정파에게는 하나의 슬픔이나 비극을 초래하는 양면성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시가 보여주는 사연의 함의가 만만치 않다.

아름다운 동정호를 배경으로 이런 애절한 사연을 담은 노래를 부르며 배를 저어가는 것을 상상해 보면 호수와 초목, 그리고 하늘이 빚어내는 푸른빛이 훨씬 깊게 다가온다. 지금 마침 비가 내리니 시가 더욱 잘 어울린다.

洞庭湖 사진 曾柳荻 출처 cppfo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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