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위응물韋應物 장안에서 풍저(馮著)를 만나長安遇馮著

장안에서 풍저(馮著)를 만나 長安遇馮著/당唐 위응물韋應物

客從東方來 그대가 동쪽에서 와서 그런지
衣上灞陵雨 웃옷에 패릉의 빗물이 묻었군요
問客何爲來 무슨 일로 장안에 오셨나요 
采山因買斧 산에서 나무하는 도끼를 사려구요
冥冥花正開 말 없는 가운데 꽃은 한창 피고
颺颺燕新乳 오가는 제비는 새끼를 먹일 테죠 
昨別今已春 작년에 이별하고 지금 벌써 봄이니
鬢絲生幾縷 흰 머리가 몇 가닥 더 났겠네요

위응물(韋應物, 737~804)은 중당 시기의 시인으로 산수 자연과 은거를 소재로 한 시를 많이 지었다. 이 시에 객으로 나오는 풍저(馮著) 역시 위응물과 다소간의 교분이 있던 사람으로 은자로 보인다. 연구자들은 위응물이 769년 ~ 778년 동안 장안에 거주하였고 풍저가 장안에 온 것은 769년이나 다시 방문한 777년이므로 이 시가 769년 무렵이나 777년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객(客)’은 제목에서 밝힌 풍저를 말한다. 특히 3구에서는 직접 한 말을 쓴 것이 아니라 간접 인용방식을 취하였기 때문에 객이라 한 것인데 번역에서는 직접 인용으로 하였기 때문에 ‘그대’라 하였다. 소동파의 <적벽부>에서 쓰인 객의 용법과 같다. 당시 풍저가 위응물을 방문하였기 때문에 객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볼 때 위응물이 이 시를 풍도에게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시에서 그런 분위기가 나타나 있다. 첫 2구에서 동쪽에서 왔으니 패릉에 내린 비가 옷에 남아 있는 것 같다는 말이나 마지막 2구에 1년 만에 다시 보는데 흰 머리 좀 늘었느냐고 묻는 것은 상대에게 반가운 정을 드러내는 유머로 보이기 때문이다.

패릉(覇陵)은 한 문제의 능이 있는 곳으로 은거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부부간에 극진히 공경한 거안제미(擧案齊眉)의 주인공 양홍(梁鴻), 약초를 캐어 팔았던 한강(韓康)이 살던 곳이다. 한강은 늘 약값을 균일하게 받았으며 한 환제(桓帝)에게 초빙되었으나 도중에 달아나 다시 산으로 간 인물이다. 패릉의 비가 옷에 묻었다는 말은 풍저에게 은자의 풍모가 있다고 인정하는 말이다.

1년 만에 만났으니 당연히 무슨 일로 장안에 오셨는지 묻게 마련이다. 풍저는 산에 나무하러 갈 때 필요한 도끼를 사러 왔다고 한다. 인(因) 자가 채산(采山) 앞에 놓이는 것이 일반적 어순이나 이렇게 쓰는 경우도 많다. 이 부분을 어떤 주석가들은 《주역》 <여괘(旅卦)>의 말을 무리하게 끌어와 풍저가 철광산을 개발해 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길게 달았는데 천착으로 보인다. 정말로 그렇다면 5, 6구에 묘사된 은자가 사는 곳의 아름다운 자연은 허공에 뜬 말이 된다.

5,6구가 이 시에서 가장 정채로운 부분이다. 명명(冥冥)은 소식의 <희우정기(喜雨亭記)>에 ‘태공은 아무 말이 없다[太空冥冥]’라고 할 때의 ‘명명’과 같다. 즉 하늘은 아무 말이 없지만 사시가 운행되고 봄이 되면 꽃이 피는데, ‘명명’은 본래 이러한 천도(天道)를 형용한 말이다. 다만 여기서는 대를 이루는 아래의 ‘양양(颺颺)’이 제비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것을 형용한 것에 비추어, 산에서 아무 보는 사람이 없어도 조용히 피었다 지는 꽃의 태도를 형용하고 있다. 김소월의 <산유화>에 나오는 꽃의 태도와 일치한다. 즉 앞뒤를 정(靜)과 동(動)으로 나누어 경물을 묘사한 것이다. 이 두 구는 위응물이 은자 풍저가 살고 있는 곳의 경관을 말한 것이기도 하지만 은자의 생활을 비유한 함축이 있는 말이라 이 시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부분이다.

기존의 번역에서는 ‘명명’을 ‘꽃이 무성한 모양’이나 ‘비가 오는 모양’으로 이해하였는데 어디에 근거하였는지 알 수도 없고 시의 맥락을 잘 살피지 못한 의견으로 보인다.

유(乳)는 본래 명사이지만 여기서는 위에 ‘개(開)’가 ‘꽃이 피다.’라는 동사로 쓰이고 있어 이 말 역시 동사로 전성되어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다.’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마지막 구절은 ‘기루(幾縷)’라는 말이 의문문을 만들고 있지만 정말로 풍저에게 흰 머리가 몇 가닥인지 나에게 알려달라고 묻는 말이 아니라 ‘흰 머리가 더 났군요?’ 정도의 말이다. 이 말이 ‘흰 머리가 몇 가닥 더 났다.’는 평서문과는 약간 차이가 있으므로 중국에서는 의문문으로 표점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두 사람이 해후하여 나누는 대화에 해학이 녹아 있다. 그리고 평범하고 소박한 표현 속에 은자의 생활을 깊이 이해하는 시인의 생각 역시 담겨 있다. 《당시삼백수》의 해설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닌데 이 시는 핵심을 벗어나 있는 듯하다.

覇陵 사진 출처 陕西会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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