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門外/ [宋] 여도화黎道華
대문 밖 누런 먼지
한 자 넘어 깊은데
바보들은 죽어라고
다투며 부침하네
초가 처마 한 치 태양
그 누가 알리요
한적한 내게 하늘이 준
만금의 보물임을
門外黃塵尺許深, 癡兒抵死競浮沈. 誰知一寸茅簷日, 天付閑人値萬金.
내가 2년여 전 이사온 곳은 대구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나이 50 후반에 시골로 이사간다는 소문이 나자 사람들은 내가 전원주택을 지어 금의환향하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내가 지금 사는 곳은 15층 아파트다. 금의환향은 고사하고 오히려 내 고향에서 더 멀어진 감이 있다. 포의(布衣)를 입고 더 먼 타향으로 떠도는 신세라 해야 한다. 다행이 아파트 뒤로 매화가 피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물안개 피는 낙동강이 멀지 않아 다소나마 사계절따라 변하는 자연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또 아침이면 낙동강 너머 동쪽 산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시골 면 소재지의 고즈넉한 야경을 조망할 수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는다.
실제 대도시와 떨어진 물리적 거리는 30분이지만 심정적 거리는 “이 풍진 세상 밖” 아득히 먼 곳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새벽이면 닭이 울고 낮이면 동네 개가 컹컹 짖는다. 아파트 바로 밖에 작은 기차 역이 있고 KTX 철길도 지나지만, 추운 겨울 날 창을 닫고 앉아 있으면 천애(天涯)의 적막강산이 따로 없을 정도로 고즈넉하다. 이 시의 묘사처럼 누런 먼지가 한 자 넘어 쌓인 속세에서 부침하는 사람들이 덧없게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더러 정좌(靜坐)에 들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을라치면 명리에 골몰하는 나 자신의 모습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된다.
더구나 오늘처럼 미세먼지나 황사가 심한 날에는 아침마다 하늘이 내게 보내주는 보물인 일출조차 볼 수 없다. 천지사방은 희뿌연 먼지로 뒤덮여 원근조차 구별이 안 된다. 이 풍진 세상은 30분 밖 대도시에만 있지 않다. 이 세상 모든 곳이 모래바람 불고 누런 연무 뒤덮인 속세다. 휴대폰 벨 소리는 수시로 울리고 초고속 광케이블은 책상 앞까지 달려온다. 세상으로 들어감(入世)이 따로 없고 세상을 떠나옴(出世)이 따로 없다. 1600년 전에 도연명은 벌써 “사람 사는 경계 안에 오두막을 엮고(結廬在人境)” 한적한 삶을 향유했다지만, 나 같은 속인에겐 너무나 아득한 경지다.
다만 세상 밖과 세상 속을 구별할 수 없는 이 망망한 천지 간에 태양이 만물을 명징하게 비춰줄 수 있도록 희뿌연 미세먼지라도 깨끗이 걷혔으면 좋겠다. 내일이면 더 좋고 모래면 또 어떠랴? 그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하늘이 내게 보내 준 만금의 보물”이지 않을까?
한시, 계절의 노래 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