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새벽春曉/당唐 맹호연孟浩然
春眠不覺曉 날 샌 줄도 모르고 자는데
處處聞啼鳥 여기저기 지저귀는 새소리
夜來風雨聲 밤사이 들리던 비바람 소리에
花落知多少 꽃잎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멀리 굽이치는 양양(襄陽)의 한수(漢水) 위로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비가 지나간 초목에는 여명의 햇살이 훤하게 비친다. 새싹이 터서 갓 신록을 이루기 시작하는 수목들 사이로 여기 저기 꽃도 보인다. 한 폭의 담채화가 전개된다. 여기는 녹문산(鹿門山) 골짜기, 은자 맹호연의 초당. 새들이 집 주변의 나무에 날아들어 이리저리 날면서 지저귄다. 처마와 나무 밑동의 축축한 비가 말라가고 있다. 햇살은 집 안으로도 비쳐 든다. 침상에 한 은자가 뒤척이며 누워 있다. 눈꺼풀을 몇 번 움직이더니 시나브로 눈을 뜬다. 새들의 소리가 다시 들린다. 은자는 기지개를 켜는가 싶더니 다시 몸을 뒤척이며 온기를 찾는다. 그리고 새 소리를 듣는다.
이윽고 화면에는 천천히 ‘춘면불각효, 처처문제조……’라는 초서 글씨가 나타난다.
차 몰고 오면서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세상에 나가 출세하여 이름을 날리고 싶거나 생활에 내몰려 허덕이지 않는 사람만이 이런 시를 쓸 수 있다. 평온한 마음으로 자연 속에 살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겠는가?
이 시의 제목이 <춘면(春眠)>으로 된 곳도 많다. 이 시는 늦잠의 분위기가 있어 춘효보다 춘면이 더 어울려서일까? 이렇게 고쳐진 곳이 많다. 야래의 來를 어조사로 보기도 하는데 入夜以來의 의미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이 시에서 종래 논점이 된 것은 ‘지다소(知多小)’를 어떻게 보는가였다. 간찰이나 남의 안부를 묻는 여러 공문서에 보면 문장 앞에 ‘부지(不知)’라는 말이 무수히 나온다. 시에도 이런 말은 많다. 어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아닌가?”의 형태로, 또 어떤 사람들은 “~인지 모르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과감하게 그 말을 생략하고 “~인가?”라는 의문문으로 바로 해석했다. 지금은 전에 비해 번역이 많이 정교해 진편이라 “~인가”의 형태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 부지(不知)는 의문문을 이끄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전 사람들 중에 의문문으로 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어떤 경우에는 “~인지 모르겠다.”고 번역해야 할 때가 있긴 하다. 이 시에 쓰인 지(知)는 이 부지(不知)의 의미이다. <<오칠당음>>에는 ‘지다소’를 ‘지기하(知幾何)’로 풀어 놓았다.
여기서는 꽃잎이 얼마나 많이 떨어졌는지를 정말 몰라서 묻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는지를 알려주려고 하는 말도 아니다. 봄날 새벽에 아직은 찬 기운이 남아 있어 온기를 찾다가 늦게 새소리에 깨어 간밤에 잠결에 들은 비바람 소리를 생각하고 지금 새가 우는 곳에 있는 나무의 꽃으로 관심이 옮아간 것뿐이다. 즉 그러한 봄날의 정경을 노래한 것으로 “꽃이 얼마나 떨어졌을지.”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형태의 말인 것이다. 잠에서 갓 깬 사람은 바깥 풍경 중 자신에게 먼저 지각되고 먼저 관심이 생기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시인에겐 그것이 꽃인 것이다. 집 주변의 나무나 풀은 왜 관심이 없겠는가? 시인이 곧 일어나 거닐며 다 둘러 볼 것이다. 나 같으면 더덕 싹이 얼마나 자랐을지, 오이 싹이 망가지지나 않았나 나가 볼 것도 같은데 이 사람은 꽃이라니 과연 시인 맹호연인가 한다.
이 시는 5언절구 중에서 반드시 뽑아야 할 작품인데 <<당인절구선>>에 이 시가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맹호연(孟浩然,689~740)은 이백보다 12살 많고 두보보다는 23살이 많다. 이름으로 사용하는 호연은 실제 그의 자이다. 고향인 양양의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해 살았는데 이곳은 후한의 방덕공(龐德公) 등 은자들이 많이 살던 곳이고 제갈공명이 살았던 융중(隆中)과도 멀지 않은 곳이다. 나이 40에 장안에 와서 왕유, 이백 등과 교유하였다. 이 시처럼 전원풍의 시가 많다.
이 시는 중국인들의 애송시를 조사한 책 <<당시배항방>>에 62위에 올라 있다. 이 시가 그런 평점 밖에 못 받은 것이 다소 의아하다.
365일 한시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