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화의-이백李白 노 사호에게 주노라贈盧司戶

노 사호에게 주노라贈盧司戶/이백李白

秋色無遠近, 가을빛 원근 없이 똑같은데
出門盡寒山. 문 나서니 모두 추운 산뿐이로다.
白雲遙相識, 흰 구름 멀리서 알아보고
待我蒼梧間. 날 창오산에서 기다리누나.
借問盧躭鶴, 묻노니 그대 노탐처럼 학이 되어
西飛幾歲還? 서쪽으로 날아 언제 돌아올 텐가?

[해제]

제목의 노 사호는 노상(盧象)을 말한다. 자는 위경(緯卿)이고 전후로 좌습유(左拾遗), 선부원외랑(膳部員外郎)을 지냈으며 안록산(安祿山)의 난 이후 그의 수하에서 관리가 되었다가 758년에 영주사호참군(永州司户參军)으로 폄적되었다. 유우석(劉禹锡)의 <당고상서주객원외랑노공집기(唐故尚書主客員外郎盧公集紀)>에서 노상은 “처음에 장구로 개원 연간에 이름을 떨쳤고, 왕유·최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머리를 들었으며 일시에 유행했다.(始以章句振起于開元中, 與王維、崔顥比肩驤首, 鼓行於時.)”라고 했다.

≪수경주(水經注)·뇌수(耒水)≫편에서는 등덕명(鄧德明)의 ≪남강기(南康記)≫ 구절을 인용하여 “옛날에 노탐은 사주에서 치중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신선술을 배워 구름 속을 나는 방법을 잘 알았다. 매일 저녁마다 하늘 높이 올라가 귀가했다가 새벽에 사주로 돌아왔다. 일찍이 정월 첫 조회에 늦어 댈 수 없게 되자, 백학이 되어 궐 앞에 이르러 빙빙 선회하다가 내려오려고 하자, 위의가 돌을 던져 신발 한 짝을 맞혔다. 노탐은 깜짝 놀라 돌아와 자기 자리로 들어가자 내외·좌우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했다.(昔有盧躭, 仕州爲治中. 少學仙術, 善解雲飛. 每夕輒凌虛歸家, 曉則還州. 嘗于元會至晩, 不及朝列, 化爲白鹤, 至閣前回翔欲下, 威儀以石擲之,得一只履. 躭驚還就列, 内外左右莫不駭異.)”고 말했다.

창오산(蒼梧山)은 구의산(九嶷山)이라고도 한다. 호남성 남부 영주시(永州市) 영원현(寧遠縣)에서 남쪽으로 60리 거리에 있다. 창오산은 순 임금의 남순(南巡) 과정에서 얻은 이름이다.

이백은 일찍이 노상과 교류하였는데 건원(乾元) 2년(759)에 사면을 받고 영주(永州)에 갔다가 그를 만나 이 시를 써서 주었다. 이 시에서는 만난 시간, 장소를 밝히고 있으며, 7, 8구에서는 노탐의 전고를 인용하여 노상도 사면되어 조정에 나아가길 기원했다.

사진 창오산 출처 bbs.guilinlife.com

오언고시 상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