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풀春草/당唐 당언겸唐彦謙
天北天南遶路邊 남쪽이나 북쪽이나 길가에 붙어서는
托根無處不延綿 뿌리에 의지하여 이리저리 뻗어가네
萋萋總是無情物 무정한 저 풀은 모두 무성도 하건만
吹綠東風又一年 푸른 풀에 부는 동풍 다시 또 한 해
객지에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다시 무성해지는 봄풀에 의탁한 시이다. 봄풀이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상징하는 건 층층이 유래가 있다.
회남소산(淮南小山)이 지은 <<초사(楚辭)>> <초은사(招隱士)>에 “왕손은 떠돌아다니며 돌아오지 않는데, 봄풀은 돋아나 무성하구나. 날은 저물어 마음 기댈 곳 없건만 매미들만 처연하게 울어대네. [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 歲暮兮不自聊, 蟪蛄鳴兮啾啾.]”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 나오는 왕손(王孫)은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굴원이 초나라 왕족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굴원은 자신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방랑하다가 멱라수에 자살하였는데 <초은사>는 바로 그런 굴원에게 어둡고 무서운 그런 깊은 산에 있지 말고 빨리 돌아오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여기 등장하는 풀은 ‘또 한 해가 지나 새로 봄풀이 돋아나건만 우리 왕손, 굴원님은 언제나 돌아오시려나!’라고 하는 애타는 기다림과 안타까운 탄식의 정한이 스며있는 시어이다.
이 초은사에서 유래한 춘초(春草)는 왕유의 <산중송별>에도 “봄풀은 해마다 푸를 텐데, 왕손은 언제 오시려나[春草年年綠, 王孫歸不歸]”라는 대목이 있으며, 백거이 시에도 “또 그대를 보내는데, 봄풀 우거진 곳에 이별의 정 가득하네.[又送王孫去, 萋萋滿別情.”라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내력이 있어 봄풀은 이별과 귀향 이런 것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성이 담기게 되었다. 필자가 기억하는 것이 이 정도여서 그렇지 마음먹고 찾아보면 아마도 많은 사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萋萋總是無情物’은 외관상 ‘萋萋’가 주어이고 그러한 것이 모두 무정물이라는 구조로 보이지만 실상은 뒤의 무정물이 주어이고 ‘처처’는 형용사로 서술어의 역할을 하는데 도치된 구조이다. 본래의 어순대로 정리하면 ‘無情物總是萋萋’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우선 4,3의 구조로 말이 정돈되지 않고 또 감정도 잘 안 담기게 된다. 이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처처’이기 때문에 이 말을 앞으로 도치한 것이다. 천근한 비유로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장난하나? 지금 나랑’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이러한 구법은 한시에 아주 많다.
무정물은 지각이 없는 사물로 바위, 돌, 이런 것을 주로 말하는데 나무나 풀도 무정물이라 한다. 그래서 이 구절은 ‘저 무정한 풀은 봄이 되어 다시 무성해 졌건만 나는 고향에 가지도 못하네.’ 이런 의미가 된다.
봄바람 부는 야외에 시인이 나와 있다. 저 먼 언덕에도 이쪽 산비탈에도 봄풀이 자라난다. 그러고 보니 천하에 다시 봄이 돌아와 겨울바람이 할퀴고 간 산야에 새 풀이 돋아나 어느새 무성해 지고 있다. 이렇게 무정한 봄풀은 해마다 돋아나건만 나는 올해도 고향에 가지 못하나. 또 객지에서 떠돌아야 하나.
당언겸(唐彦謙, ?~893)의 이 시는 바로 춘초(春草)에 중첩된 이런 귀향의 의미를 환기한 것이다. 오래도록 객지에 있으면서 고향이 가지 못하는 것이 ‘우일년(友一年)’이란 말에 녹아 있다.
당언겸은 산서성 태원(太原) 출신으로 만년에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여 호가 녹문선생이다. <<구당서>>에 그의 전(傳)이 수록되었는데 문사가 장려하며 7언시에 특히 능하고 글씨, 그림, 음악 등에 아주 뛰어났다고 한다. <<전당시>>에 2권의 시집이 전한다.
이 사람은 안녹산의 난이 끝나고 다시 황소의 난이 발생하고 나중에 주전충 등이 일어나는 등 당나라가 쇠약하여 5대의 혼란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살아 몇 년 동안 한수(漢水) 남쪽에 숨어서 난을 피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벼슬살이를 상당히 하다가 위에서 말한 양양 녹문산에도 은거하였는데 나중에는 고향이 아닌 한중(漢中)에서 작고하였다. 이 시가 어느 때에 지어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러한 난의 여파로 몇 년 동안 고향에 가지 못할 때가 아닌가, 일단 추정해 본다.
불광동 대조 시장에 오래된 순대국집이 있는데 그 집 카운터에는 자작시 한수가 코팅되어 있다. 앞에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죽 적은 뒤에 마지막 부분에 ‘후회만 남은 인생, 지난해에도 반성 못하고 올 해도 반성 못하고 다시 또 한 해.’ 대강 이런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또 일 년’이라는 무게가 정말 실감되었다. 이 봄에 나 말고도 여러 가지 사연으로 ‘또 일 년’의 회포를 안고 봄풀을 바라볼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진 양양 녹문산, 출처 www.soh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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