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섭소옹葉紹翁 정원에 놀러 갔으나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遊園不値

정원에 놀러 갔으나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遊園不値/송宋 섭소옹葉紹翁

應憐屐齒印蒼苔 이끼에 신 자국 나는 것 아파할까봐
小扣柴扉久不開 살살 사립문 두드리나 계속 안 열리네
春色滿園關不住 정원 가득한 춘색 가두어 둘 수 없어
一枝紅杏出牆來 살구꽃 한 가지 담장을 넘어 와 있네

매우 이채로운 시이다. 아취 있는 스토리 중에서 가장시적인 장면 하나를 잘라 제시한 듯하다. 마당에 감상용으로 기른 이끼가 상할까봐 함부로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사립문을 두드리는 방문객의 발상도 고사의 운치 있는 풍도이거니와 마지막 두 구는 특이한 정채를 띠며 다양한 비유와 상상의 날개를 펴게 만든다. 자라나는 사물을 억지로 막을 수 없고 사람의 춘정을 마냥 누를 수만은 없는 법칙이나 순리가 담겨 있는 듯도 하다. 정취(情趣)도 있고 화취(畵趣)도 있으며 선취(禪趣)마저 감돈다.

섭소옹(葉紹翁, 1194~?)은 송나라 시대 절강성 용천(龍泉) 사람으로 항주 서호(西湖)에 은거한 시인인데 행적은 비교적 자세하지 않고 7언 절구에 아주 능했다고 한다. 이 시 한 편만 봐도 그 내공이 강력하게 감지된다.

깊은 산골 계곡에 가면 아주 탐스러운 이끼가 자란다. 집으로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 그런 이끼 위를 나막신의 발굽으로 꽉 밟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시를 쓴 사람도 아취 있는 고사인데 시에서 묘사된 사립문을 닫아 건 정원의 주인은 더 고사같은 인상을 풍긴다. 서호(西湖) 고산(孤山)에 살던 매처학자(梅妻鶴子) 임포(林逋)의 유적을 몇 년 전에 탐방해 본 적이 있는데 서호는 뒤로 큰 산들이 있어 갈홍(葛洪) 낙빈왕(駱賓王) 이런 사람도 살았고 많은 고사들이 살았으며 수많은 시문들이 전해 오는 곳이다. 전에 <서호십경을 거닐다>(문헌과해석)에서 서호 관련 문헌을 앞에 소개한 적이 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정원의 주인 역시 서호에 은거해 살던 사람으로 보인다. 고대에 요 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물려주겠다고 하자 허유가 화를 내며 계곡물로 자신의 귀를 씻었다는 은자의 이야기 있다. 그런데 소보(巢父)-발음이 ‘부’가 아님에 주의-라는 인물은 이 보다 한 술 더 떠 자신이 먹이고 있는 소에게 허유의 귀를 씻은 물을 먹일 수 없다면서 상류로 몰고 간 희한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천하를 놓고 살벌하게 자웅을 겨루는 자들에게 핵폭탄을 투하하는 이야기이다. 이 시를 지은 섭소옹이 세상을 피해 은거하는 허유라면 정원의 주인은 소보와 같은 절대 은자로 시가 설정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첫 구의 응련(應憐)은 ‘응당 ~ 애석해 할 것이다.’라는 강한 추정을 나타낸다. 응(應)이 ‘응당~ 해야 한다.’라는 당위의 구문에도 많이 쓰이지만 이처럼 강한 추정을 나타낼 때도 쓰인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련(憐)’ 대신에 ‘혐(嫌)’으로 된 판본도 많은데 이 경우 뜻이 더 직접적이기만 하지만 의미는 ‘련’이 더 깊어 보인다. 유사한 부사 중에 당(當)이 있는데 역시 당위와 강한 추정에 두루 쓰인다. 또한 보조 동사 가(可)의 경우 ‘~ 할 수 있다.’라는 가능에도 쓰이지만 ‘~ 해야만 한다.’라는 구문도 상당히 많으며, <<승정원일기>>에는 가야(可也)의 형태로 ‘~ 하라.’는 명령형에도 쓰인다. 이런 부사들은 산문은 물론이지만 시의 경우 매우 섬세하게 알고 있어야 시인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부주(不住)는 ‘~하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관부주(關不住)는 ‘가두어 놓지 못하다.’의 의미가 된다.

이 시는 <<천가시>> 7언 절구 항목에 수록되어 있다. <<천가시>>는 우리나라에는 크게 통용되지 않았는데 중국에서는 널리 유통되어 다양한 판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은 본래 위에는 그림이 있고 아래 시 본문과 해설이 있는데 <<오칠당음>>에 붙은 해설과 아주 비슷하다. 해설을 누가 한 것인지 궁금해 전에 연구를 했는데 언제 그만두었는지 모르겠다.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천가시>> 그림책을 찾으니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아 절로 탄식이 나온다. 다만 오늘처럼 문헌이 풍부하지 않아 고증에는 더러 이상한 데가 있지만 시를 보는 안목과 수준은 매우 뛰어나다는 한 마디를 하고 싶다.

지금은 대만의 구섭우(邱燮友)와 유정호(劉正浩)선생이 주석을 낸 삼민서국 본이 아주 좋다. 내가 천가시를 좋게 보는 이유는 3가지다. 하나는 그림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측이 표시되어 있다는 것이며 나머지 하나가 해설이 좋다는 것인데 구섭우 선생 책은 뒤의 두 가지를 만족했으나 그림이 없는 것이 불만이다. 전에 대만 고궁에서 매우 뛰어난 천가시 판본을 발견했는데 너무 비싸 사지 못하였다. 그 책은 도판의 그림이 아주 정밀하고 일일이 손으로 그린 것이라 정말 볼만하였다.

나는 늘 시는 그림과 함께 있어야 빛이 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평소 제화시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시급히 끈 다음, 나도 하고 싶은 이런 일을 좀 해 보려고 벼르는 중이다.

내가 지금 연재하는 이 <365일 한시>를 달포 전에 중문학자 리무진 선생님이 주선하여 <중국학센터>(https://sinology.org/)에 올려놓고 있다. 최근 어떻게 해 놓았나 궁금해서 몇 번 들어가 보니 신경 써서 좋은 사진이나 그림을 구해 함께 올려놓았다. 글이 더욱 빛나는 듯하였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은 그 사이트에 가셔서 한 번 감상해 보기 바란다. 아울러 다른 글들도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 읽어보기를 권유한다.

그림 : 일본의 중국어 학습 교재에 수록한 사진인데 이 시를 다소 에로틱하게 해석한 그림이다. 인상적이라 기억에는 오래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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