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집게로 새치를 뽑다鑷白/ [宋] 양만리
오십에도 어떻게
젊은이라 하리요
아이 불러 새치 뽑으며
마음을 못 추스리네
새해 돼도 아무 공을
못 세웠다 말하지만
서리 내린 코밑수염
예순 가닥 길러냈네
五十如何是後生, 呼兒拔白未忘情. 新年只道無功業, 也有霜髭六十莖.
늙음을 알려주는 가장 대표적인 신체 현상이 흰 머리다. 백발은 몇 살부터 생길까? 사람마다 다르다. 전설에 의하면 도가(道家) 철학의 개창자 노자(老子)는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었다고 한다. 우리 집 첫 아이도 어려서부터 왼쪽 귀 바로 위쪽에 몇 가닥 흰 머리가 있었다. 걱정이 되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백반증일지 모르므로 약을 발라보라고 했다. 다행이 지금까지 흰 머리가 늘지도 줄지도 않고 그대로이다. 뱃속에서부터 새치를 갖고 태어난 사례다. 어쩌면 노자의 백발도 후세에 덧붙인 전설이 아니라면 심한 백반증일 가능성이 크다. 백발이 무슨 성인을 증명하는 신비한 신체 현상은 아닌 셈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는 대개 40~50대를 넘기면서 새치가 생기기 시작하여 점차 머리 전체가 백발로 변한다. 처음 새치가 보일 때는 내가 벌써 노인이 되었나 하는 무상감으로 슬픔에 젖어들기 마련이다. 옆지기나 아이를 불러 부지런히 새치를 뽑게 한다. 심지어 새치 한 가닥에 천 원씩 보상금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는다. 나는 새치가 생기기 전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기에, 50이 넘어 새치가 생기기 시작할 때는 감히 몇 가닥 새치조차 뽑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머리카락 한 올이 귀하기 이를 데 없는데 어찌 나락논에 피 뽑듯 새치를 괄세할 수 있겠는가? 새치 보기를 황금 보듯 했다.
옛날부터 백발을 묘사한 시는 많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당시(唐詩)의 절대지존 이백은 백발을 “아침에는 푸른 실 같더니 저녁에는 흰 눈이 되었네(朝如靑絲暮成雪)”(「장진주將進酒」)라 했고, 심지어 “흰 머리가 삼천 길이다(白髮三千丈)”(「추포가秋浦歌」)라고 묘사했다. 백발을 노래한 천고의 명구이지만 지나친 과장에 뭔가 허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양만리의 이 시는 그렇지 않다. 우리 일상에서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새치 뽑기를 너무나 진솔하게 그려냈다. 몇 번 언급한 것처럼 이것이 당시와 다른 송시의 특징이다. 이런 소소하고 감칠맛 나는 송시의 진미에 빠지면 당시의 허황함이 가소롭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시를 읽으면 인간의 일상, 감정, 관습이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바뀌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오늘도 거울 속 흰 머리를 보며 인생무상을 슬퍼하시는가? “아! 나는 백발이 성성하도록 무엇을 했나? 또 한 해가 덧없이 흘러가는구나!” 하지만 슬퍼하지 마시라. 양만리도 묘사한 것처럼 우리는 아무 공적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다. 이 찬란한 은빛 백발은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나 스스로 이룩한 공적이다. 올 한 해 우리는 너무나 혁혁한 공적을 세웠다. 백발, 주름살, 배둘레헴 등등 이 모든 것이 내 불멸의 업적이다. 올해도 전쟁 같은 삶의 현장을 무탈하게 살아낸 나의 심신에 ‘건신공로훈장(健身功勞勳章)을 수여하시기를…
한시, 계절의 노래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