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양만리楊萬里 새 봄의 수양버들新柳

새 봄의 수양버들新柳/송宋 양만리楊萬里

柳條百尺拂銀塘 백 척의 버들가지 맑은 연못에 스치네
且莫深青只淺黃 짙은 청색 말고 연한 황색으로만 남기를
未必柳條能蘸水 꼭 버들가지가 물에 잠길 필요는 없네
水中柳影引他長 물속 버드나무 그림자가 길게 잡아당기니

어제 잠시 나들이를 다녀오면서 최근 입춘 시에 버드나무가 언급된 것이 생각나 저절로 눈여겨보게 되었다. 확실히 양만리가 <입춘일> 시에서 풍광선착류(風光先著柳)- 풍광은 버들에 먼저 찾아왔다.-라 한 것처럼 버들 빛은 어느새 달라졌는데 이 시에서 말한 것보다 더 옅은 황색 빛이 났다. 아마도 지금쯤 중국 서호에는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 같다.

버드나무는 대체로 가지가 위로 자라는 楊과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柳로 구분할 수 있다. 봄에 버들피리를 만들어 부는 갯버들은 楊이고 가지가 길게 발처럼 드리워져 풍치가 아주 좋은 것은 柳이다.

가늘고 긴 버들가지가 수면에 닿을 정도로 발처럼 늘어져 있고 다시 그 물 속에 비친 그림자가 길게 이어져 있다. 바람이 불면 버들가지가 흔들거리고 그에 따라 물속의 그림자도 흔들리는데 물속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데에 따라 실제의 버들이 움직이는 착각도 일어난다.

이 시인은 바로 이 점을 시로 묘사해 낸 것이다. 즉흥적인 것 같지만 물속의 버드나무 그림자가 실제의 버들가지를 잡아 당겨 늘이므로 굳이 실제의 버들이 물에 잠기려고 애써서 가지를 늘일 필요가 없다는,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진술과 약간의 웃음을 유발하는 표현을 얻으려면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서(四書)>>에 있는 주자의 주석에는 어려운 글자들이 거의 없다. 이 시에 쓰인 말들이 그렇다. 우선 시의 함축미를 위해 즐겨 사용되는 고사나 고사의 변용이 전혀 없다. 어려운 한자도 ‘잠기다’는 뜻의 ‘잠(蘸)’ 1자이다.

이전의 전고를 환골탈태시켜 새로운 맛을 내고 시어를 잘 매만지는 시풍이 송나라 때 황정견(黃庭堅)을 조종으로 하는 강서시파(江西詩派)인데 양만리도 처음에는 강서시파의 일원인 왕안석, 진사도 등의 시를 배웠으나 나중에는 이 시처럼 매우 쉬운 말을 사용하고 전고를 쓰지 않으며 해학이나 그윽한 정취를 추구하는 시풍을 개척하였다. 이를 사람들은 양만리의 호 성재(誠齋)를 붙여 ‘성재체(誠齋體)’라고 부른다.

쉬운 말만 사용해도 묘한 생각을 표현하려면 자연 산문과는 다른 시의 문법이 생기기 마련이다. 두 번째 구절의 ‘且莫深青只淺黃’은 深靑과 淺黃이 각각 동사의 역할을 한다. 深靑 자체로는 부사 深과 형용사 青의 결합이지만 이 문장에서는 ‘짙은 청색으로 변하다.’는 동사의 역할을 한다. 뒤의 淺黃 역시 ‘옅은 황색으로 남다.’는 동사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처럼 한자는 문장에서의 역할에 따라 본래 자신의 품사를 변화하여 다른 품사의 역할을 하면서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이 가능하게 되는데 시에서는 더욱 그러한 면이 있다. 且莫은 부디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시인이 마지막에 引자를 써서 첫 구에 버들가지가 百尺으로 늘어진 이유를 해명한 것도 매우 용의주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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