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육유陸游 납월臘月

臘月 陸游臘月납월(12월)/육유陸游

今冬少霜雪 이번 겨울은 서리와 눈이 적어
臘月厭重裘 납월인데도 두꺼운 갖옷 부담되네
漸動園林興 점차 원림에 나가 볼 흥취 생기고
頓寬薪炭憂 완전히 땔감 걱정도 줄어드네
山陂泉脈活 산 연못에는 샘물 다시 흐르고
村市柳枝柔 촌마을에는 버들가지 물 올랐네
春餅吾何患 춘병을 무엇하러 걱정할 것인가
嘉蔬日可求 맛있는 나물을 날마다 뜯어 먹네

매우 신선하고 뛰어난 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육유의 시 중에는 이처럼 생활 밀착형이면서도 시적인 성취를 거둔 작품이 많다.

우리나라가 1980년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농경문화가 사회 저변에 남아 있었고 어릴 때 한문을 배운 노인들이 상당수 있었다. 이제 세월이 지나가면 이런 시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시라는 것이 자신의 체험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면 알 것이다. 겨울 내내 묵은 김치와 고들빼기, 무말랭이, 이런 몇 가지 반찬으로 밥을 먹다가 이른 봄, 달래나 씀바귀, 난생이(냉이), 이런 걸 캐어 반찬을 하면 얼마나 맛이 있는지. 그리고 시골에서 밥을 짓거나 소여물을 끓이자면 많은 나무가 필요한데 이 때 ‘물거리’라 하는 잔가지 위주의 나무는 불을 처음 지필 때 사용하고 불이 크게 일어나면 장작을 동개 놓곤 한다. 이 ‘물거리’를 본문에 ‘신(薪)’이라 쓴 것이고 장작이 타서 잉걸불이 생기면 이를 화로에 담아 방에 들이거나 나중에 쓸 요량으로 숯을 만들면 ‘탄(炭)’이 되는 것이다. 군불을 지필 때도 상당량의 장작이 필요하다. 그 많던 나무가 설날 전후가 되면 많이 줄어들게 되어 날이 추워지면 은근히 걱정이 된다.

육유가 이 시를 쓰던 해의 섣달은 날씨가 꽤나 푹했던 모양이다. 겨울엔 추워야 제 맛이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사치레이고 실제로는 사람들이 푹한 날씨를 좋아한다. 날이 푹하니 두터운 모피 옷이 오히려 귀찮다. 내가 지난번에 상해에 갔는데 너무 좋은 외투를 입고 가서 더워 애를 먹은 기억이 새롭다.

두 번째 구의 납월(臘月)을 ‘납월이라’라고 인과형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나처럼 ‘납월이지만’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내가 ‘납월이지만’으로 번역한 것은 그 앞에 ‘今冬少霜雪’이 왔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여느 해 같으면 눈이 많이 와 납월에 추웠는데 올 겨울은 눈이 적어 따뜻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한시는 해당 구절이 아니라 전후의 문맥과 내용에서 의미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예전 어른들은 주로 문리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날씨가 온화하니 몸을 움직여 원림에도 나가본다. 땔감 걱정도 한결 줄어든다. 날씨가 풀렸는지 산 속에 있는 저수지에는 물이 다시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마을에 선 버드나무 가지에도 어느덧 생기가 돈다. 이런 날씨는 밥상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춘병에 넣어 먹을 나물을 내가 뭐하러 걱정하겠나. 날마다 맛있는 나물을 밭에 가서 캐면 되는데.

내가 이 시를 신선하고 좋은 시라 한 것은 이런 전통 생활양식이 고스란히 이 시에 담겨 있으면서도 구태의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묵어 있는 언어의 밭에 다시 입맛을 돌게 하는 시라고나 할까.

중국에서는 입춘에 춘병(春餠)과 생채를 먹는 풍습이 있다. 입춘은 대개 섣달그믐 주변에 오고 우리나라는 찰밥을 해 먹고 남은 나물을 다 먹기 위해 비빔밥을 해 먹는 풍습이 있으니 서로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반대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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