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핀 꽃早花/당唐 두보杜甫
西京安穩未 서울 장안은 평안한지
不見一人來 오는 사람 하나 없네
臘月巴江曲 납월의 파강 물굽이에
山花已自開 산꽃이 벌써 피었네
盈盈當雪杏 눈 앞의 살구꽃은 소담하고
艶艶待春梅 봄 기다린 매화는 아리따워라
直苦風塵暗 다만 전란의 여파가 괴로울 뿐
誰憂容鬢催 뉘라서 수척한 얼굴 걱정하리
763년 10월에 토번이 장안을 함락하여 약탈한 일이 있는데 그 해 12월에 사천 낭주(閬州)에 있던 두보가 이 소식을 접하고 지은 시이다. 안록산의 난이 755년~763년에 걸쳐 있었다는 걸 상기할 때 이 시에 스며있는 전란에 대한 피로감이 이해된다.
장안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 이후 소식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다. 살구꽃, 매화가 피어 봄은 예전처럼 왔지만 전란에 대한 걱정으로 자신이 늙어가는 것도 신경 쓸 여가가 없다.
시를 보면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두보가 쓴 격정적이고 침울한 정서와는 다르다. 이제 전란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된 듯하다. 지난 박근혜 정권 말기에 나라가 위태롭던 시절에도 일상을 영위하던 우리의 심사를 생각하면 이 시가 잘 이해 될 듯하다.
未는 否의 의미로,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의문사이다. 3구의 臘月巴江曲은 술어가 없다. 이처럼 한 구에서 의미가 정리되지 않고 다음 구로 넘어가는 구법이 한시에는 더러 있다. ‘盈盈當雪杏이요 艶艶待春梅라’는 한문 자체로는 순서적으로 이해되지만 우리말 구문에서는 雪을 當한 杏은 盈盈하고 春을 待하는 梅는 艶艶하다고 풀어야 어법에 맞는다. 當하다는 말은 ‘눈에 被하다’의 의미도 되고 ‘눈을 面하다’의 의미도 된다. 살구꽃이 눈을 맞으면 그대로 녹을 것이므로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마주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容鬢催는 얼굴에 난 귀밑머리를 재촉한다는 말이니 귀밑머리가 점점 희어진다는 말이다.
이 시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梅花에 어떤 이념이나 이미지가 덧씌워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살구꽃이 매화꽃과 같이 이른 봄에 피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평소 두보가 쓴 시를 보면 실제 사실에 입각해서 쓰므로 아마 사천 일대에는 일찍 피는 살구꽃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매화가 늦거나. 매화에 艶艶이라는 약간은 탐미적인 의태어를 붙인 것에서도 아직 두보 당시에는 매화와 선비의 지조가 연결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살구와 매화를 대구로 쓴 것은 여러 모로 흥미를 끈다.
하긴 요즘 봄이 되면 매화, 살구, 벚꽃이 한꺼번에 피어 어느 것이 먼저 피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심지어 개나리와 진달래가 거의 같은 시기에 마구 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사람들이 정신이 없어 꽃들이 한꺼번에 핀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365일 한시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