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 밤에十二月十五夜/ 원매袁枚
沉沉更鼓急 둥둥 경고 소리 급해지고
漸漸人聲絕 점점 사람 소리 끊어지네
吹燈窗更明 등불 끄자 창이 다시 밝으니
月照一天雪 달빛 온 하늘의 눈을 비추네
원매(袁枚, 1716~1797)는 청나라 항주 출신의 시인이자 문장가이다. 강희 건륭 연간에 최고 수준의 시인이었다.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신위, 이덕무, 박지원 등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당대 일류 문사이다.
첫 구의 침침(沉沉)은 얼핏 밤이 깊어가는 것을 형용한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여기서는 북소리가 잦아드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신유(申濡) 해사록(海槎錄)에 실린 <배 가운데서 듣는 경고(更鼓) 소리 – <종군오경전(從軍五更轉)>을 모방해서[舟中更鼓擬從軍五更轉]> 라는 시에 보면 1경의 북소리는 명(鳴)으로, 2경의 북소리는 훤(喧)으로, 3경의 북소리는 쇠(衰)로, 4경의 북소리는 침(沈)으로, 5경의 북소리는 동(鼕)으로 표현하고 있다.
〈종군오경전(從軍五更轉)〉이란 시는 진(陳)나라 복지도(伏知道)가 지은 오언절구 5수를 말하는데, 국경을 수비하는 군사가 추운 밤 외로움에 잠을 못 이루는 광경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를 모방하여 조선의 신흠, 김창협 등이 지은 시가 있다. 군인이 밤에 잠자리에 누워 잠이 안 오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뒤척이게 마련인데 그런 걸 시로 지은 것이다.
오늘날에는 하루가 24시로 구성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12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밤 7시부터 아침 5시 파루를 치기 전까지를 밤이라 할 때, 이 10시간을 각각 2시간씩 나누어 1경, 2경, 이런 식으로 부른 것이다. 그러므로 밤 11시부터 1시까지는 3경이라 하여 특히 밤이 가장 깊은 시간이다.
이 시에서 沉沉을 쓴 것을 보면 3경이나 4경 무렵이 아닐까 한다. 즉 겨울밤에 밤이 깊어 나다니는 인기척은 전혀 없는 적막한 가운데 북 소리만 빠르게 울리고 있다. 이제 등불을 끄고 자야 할 시간이다. 등불을 후 불어 끄고 누웠는데 이상하게 밖이 환하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아! 흰 눈이 가득 내리고 달빛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시는 그런 내용이다.
조선 시대에는 밤 2경 3점, 즉 10시에 종을 28번 쳐서 통금을 알리고, 5경 3점 즉 아침 5시에 종을 33번 쳐서 통금을 해제하였는데 이 시에서 북 소리가 급하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경고(更鼓)로 치는 북 역시 여러 번 짧은 간격으로 친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 시는 月照一天雪의 표현이 매우 참신하다. 雪이 白으로 된 경우도 있는데 더 참신하다. 겨울철에만 느낄 수 있는 밤의 서정을 이 시인이 새롭게 발견한 것이라 하겠다.
시는 아주 작은 변화에도 큰 차이가 나서 마치 차를 마시듯 음미해야 한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도 기존의 방식에 젖어 있게 마련이라 새로운 이미지를 개발하고 신선한 표현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이 시인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겨울밤의 한 순간을 포착해 내고 있다.
시에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한 해가 저무는 12월 보름에 시인은 여러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밤이 깊었다는 경고 소리를 듣고 잠들기 직전에 이런 새로운 경험을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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