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설을 읊다賦殘雪/ [宋] 석건강釋乾康
육각 눈꽃 얼었다가
녹아 내리니
고을 성에 차례로
누대 보이네
사람들아 진흙으로
보지 말지니
한 조각도 하늘에서
날아왔다네
六出奇花已住開, 郡城相次見樓臺. 時人莫把和泥看, 一片飛從天上來.
당나라 말기에 태어나 송나라 초기까지 생존한 건강(乾康) 스님은 격조 높은 시를 쓰는 시승(詩僧)으로 유명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시승이던 제기(齊己) 스님과 교유하며 시재(詩才)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용모는 그리 잘 생긴 편이 아니었던 듯하다.
송 태조 건덕(建德) 연간에 왕신(王伸)이란 사람이 영주(永州)의 수령으로 재직했는데 건강이 그를 방문했다. 왕신은 건강의 나이가 벌써 노령인데다 모습도 볼 품 없는 것을 보고 “이처럼 추하게 생긴 사람이 어찌 시를 잘 지을 수 있겠는가?”라며 무시했다. 그 때 바야흐로 눈이 녹는 시절이라 왕신은 그래도 건강의 시재를 시험해보려고 녹는 눈을 소재로 시를 짓게 했다. 건강이 즉석에서 위의 시를 지어올리자 왕신은 깜짝 놀라 “시의 뜻이 깊다”고 하며 특별한 예를 갖춰 건강을 대접했다.
물론 이 시는 일종의 선시(禪詩)다. 눈에 덮여 본 모습이 드러나지 않던 성 위의 누대가 눈이 녹으면서 진면모를 드러낸다고 했다. 이는 오온(五蘊)의 번뇌와 망상이 걷힌 진정한 마음자리에 대한 비유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건강의 진정한 의도는 다음 구절에 담겨 있다. 녹아내리는 한 조각 하얀 잔설이라도 진흙과 동일하게 간주하지 말라는 묘사야 말로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저속한 안목의 소유자 왕신을 질타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진리를 속되지 않은 선시로 멋지게 깨우쳐줬다. 그야말로 성성(惺惺)을 불러오는 죽비 소리다.(사진출처: 太平洋撮影博客)
한시, 계절의 노래 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