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수레- 사랑을 잇는 비행기

들어가며

비록 근대 이후 서구 열강의 물리력에 눌려 강제 개항의 치욕을 당해야 했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서구식의 산업을 발전시켜 이른바 ‘선진국’들의 경제적 번영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현실이 중국인들이 예로부터 인류의 과학적 발명과 발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겨놓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들이 발명한 나침반과 화약, 종이, 인쇄술은 현대 산업사회의 초석이 되었고, 심지어 최근에 이르러서는 서구식의 방법론에 입각한 현대 물리학의 중요한 업적들이 그 기본적 내용이 《묵자墨子》나 《시자尸子》와 같은 전국시대의 사상가들에 의해 이미 언급되었던 적이 있다는 점도 차츰 밝혀지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고대 중국의 유명한 장편 소설인 《삼국연의三國演義》에는 제갈량諸葛亮이 발명했다는 ‘목우木牛’와 ‘유마流馬’에 관한 흥미로운 상상이 서술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서구와 같은 형식논리의 부재로 인해 고대 중국인들의 과학적 발견과 그에 관련된 상상들은 종종 그 진정한 가치를 평가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예는 진지하고 엄격한 학술적 탐구 활동 외의, 이른바 ‘문학적’ 영역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고대 중국의 문학은 서구와 같이 엄격한 장르의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과학 또는 여타 학문과 문학 사이의 구별조차도 분명하지 않았다. “위대한 도리는 갈림길이 많아서 양을 잃는 것처럼 그 목표를 추구하기 어렵고, 학자들은 다양한 방법론 때문에 생애를 잃는다(《열자列子·설부說符》: 大道以多跂亡羊, 學者以多方喪生.)”는 지적처럼, 고대 중국인들은 부분적인 말단보다는 전체적인 본질을 추구하는 것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 중국의 불행이 소위 ‘전문화’를 거스르는 이러한 취향 때문에 야기되었다고 믿는 (혹은 그렇게 강요된 의식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고대 중국인들의 이런 취향을 일종의 ‘결함’으로 취급해왔다. 심지어 ‘민족주의자’임을 자처하는 근대 이후의 많은 논자들까지도 고대 중국의 문화에서 서구와 같은 ‘분화된’ 학문과 문학이 있었음을 ‘증명’하려는 헛된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웃지 못 할 희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고대 중국의 소설사 서술과 관련해서 최근까지도 불식되지 않고 있는 ‘소설’의 기원과 개념, 그리고 장르의 규정에 관한 논쟁도 실은 이와 같이 어설픈 (혹은 기만적인) 민족주의자들의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대인들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 하겠다. 이런 논자들의 기본적인 논조는 고대의 중국인들이 이미 《장자莊子》가 저술되었던 시대부터 ‘소설’이라는 특정한 장르에 대한 초보적인 자각을 하고 있었고, 시대가 지나면서 그에 합당한 제반 규칙들을 정교하게 다듬어오다가, 어느 특정한 시기부터는 서구 ‘소설’의 형식적 조건에 완전히 부합하는 문학 장르의 개념으로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설명의 뒷면에는 서구의 ‘소설’과 같은 장르의 존재 여부가 곧 문화적 우열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짧은 강좌는 기본적으로 이런 편견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고대 중국의 문화적 성취와 문학적 역량을 되짚어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관련된 복잡하고 전문적이 논의를 피해, 좀 더 쉽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목표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어지는 강좌에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문학 작품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종류의 글들을 포함한 고대 중국인들의 각종 문헌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과학적 상상의 내용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정리해볼 것이다. 또한 인용된 문헌의 딱딱한 어투를 순화시키고, 지나치게 압축된 서술을 다시 풀어서 서술하고, 나아가 같은 주제 혹은 같은 모티프를 드러내는 여러 문헌들의 내용을 새롭게 한 곳에 엮어 제시함으로써, ‘읽는 재미’를 조금이나마 강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어떤 이야기에서는 기본적인 줄거리를 제외한 배경에 관한 서술이랄지, 사건과 사건 사이의 매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사건처럼, 실제 문헌에는 없는 내용들을 기술적으로 가미할 생각이다.

비록 짧은 분량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 강좌에 인용된 많은 이야기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모든 서술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써야 한다[實錄直書]”는 유가적儒家的 현실주의現實主義의 제약 아래서 고대의 문인들이 어렵게 기록한 허구적 상상의 이야기가 예상 외로 풍성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데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나아가 각 이야기에 대한 해설을 통해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을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첫째, “이른바 과학적 실증(=학문)과 허구적 상상(=문학)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이고, 또 이 양자는 어떤 점에서 유사한가?” 둘째, “허구적 상상은 반드시 서구의 소설처럼 형식적으로 세심하게 규정된 장르의 개념을 전제로 발전하는 것인가?” 라는 것이다. 물론 앞서 제기한 문제에서 우리의 ‘음모’가 어느 정도 들통이 나버렸지만, 우리는 이 질문들에 대한 부정적 답변에 대해 긍정하는 입장에서 독자들이 한 번쯤 진지하게 사색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

참고로, 이 강좌에서 선별한 이야기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양펑楊鵬 등 네 명의 현대 중국인들이 편찬한 《중국 고대의 공상과학 이야기》(원제: 《中國古代科幻故事》, 北京: 少年兒童出版社, 2001)와 일본의 다케다 마사야武田雅哉와 하야시 히샤유키林久之가 공동 저술한 《중국과학환상문학관(中國科學幻想文學館)》(東京: 大修館書店, 2001)에서 발굴·소개한 자료들의 도움을 받았다. 필자는 위 두 자료에 언급된 문헌들의 원문을 다시 찾아 새롭게 번역하거나 번안해서 활용했고, 나머지는 《태평광기太平廣記》와 같은 고대 중국의 ‘이야기’들을 모은 문헌들에서 보충했음을 밝혀둔다. 물론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좀 더 진지한 독자들을 위해서, 서술되는 각 이야기의 출처와 새로운 번안飜案 과정에서 끼워 넣은 내용에 대해서는 각 이야기에 대한 별도의 해설에서 분명히 밝혀줄 것이다.

사랑을 잇는 비행기

인간에게 비상飛翔은 먼 옛날부터 줄곧 식지 않은 열망이었고, 현대의 비행기와 우주왕복선에까지 이어졌다.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 이카로스Icarus는 비상—혹은 그 단어로 비유되는 유한한 물리적 현실에 대한 초월—을 향한 인간의 의지와 좌절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그리고 고대 중국인들에게도 그런 꿈은 오랜 기원을 가진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끊임없이 추구되어 왔다. 다만 고대 중국인들에게 비상은 대개 이카로스처럼 외적인 기계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도교의 수련과 같은 특수한 방법으로 인간의 육체 자체를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더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그들은 종종 어깨 죽지 혹은 겨드랑이에 새처럼 깃털이 생겨나 하늘로 올라가는 신선이 되거나, 열자列子처럼 몸이 가벼워져서 바람을 타고 자유자재로 하늘과 땅을 오가는 존재를 꿈꿔왔다. 놀라운 수련을 통해 일반적인 인간에게 불가능한 도약을 해내는 무협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렇듯 중국적인 비상의 꿈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여기고자 하는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열망을 상징하는 상상적 산물이다. 그리고 그런 꿈들은 이른바 ‘동양적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끈질기게 추구되고 있다.

그러나 고대 중국인들의 비상에 대한 상상이 반드시 그와 같은 신비주의적 방법—현대 서구인의 관점에서 보자면—으로만 추구된 것은 아니다. 진晉나라 때 장화(張華: 232~300)가 편찬한 《박물지博物志》에는 은殷나라 탕왕湯王 때에 서쪽의 기굉국奇肱國이라는 나라의 과학자들이 ‘나는 수레[飛車]’를 타고 찾아와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그림 1 참조).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산해경·해외서경海外西經》에 대한 곽박郭璞의 주석에도 수록되어 있다. 탕왕은 백성들이 그걸 보면 놀라고 무서워할까봐 수레를 분해해버렸는데, 그로부터 십년 후에 강한 동풍이 불자 그들을 그 ‘수레’를 조립해서 그걸 타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고 한다. 또한 남조南朝 시대에 유경숙(劉敬叔: 390?~470?)이 편찬한 《이원異苑》에는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안리왕安釐王이 목격한 나무로 만든 백조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어느 기술자는 자신을 믿지 않는 황제가 지켜보는 앞에서 직접 자신의 작품을 타고 까마득한 하늘로 날아 가버렸다고 한다.

《박물지》에는 은나라 탕왕 때 서쪽의 기굉국이라는나라의 과학자들이 하늘을 나는 수레를 타고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처럼 고대 중국인들은 뛰어난 기술자가 만든 비행기에 대한 상상을 여러 곳에서 기록으로 남겨놓았는데,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는 전국시대 노魯나라의 명장名匠 공수반公輸班에 관한 것이라 하겠다. 한漢나라 때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기원전 179~기원전 122)의 지시로 편찬된 《회남자淮南子·제속훈齊俗訓》과 동한東漢 때의 왕충(王充: 27~97?)이 지은 《논형論衡·유증편儒增篇》, 그리고 당나라 때 단성식(段成式: 803~863)이 편찬한 《유양잡조酉陽雜俎》(《태평광기太平廣記》 제225권 〈기교伎巧 1〉에 수록) 등에 흩어져 있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보면, 다음과 같은 낭만적이고도 비극적인 이야기가 나타난다.

공수반은 그의 고국이 노나라이기 때문에 흔히 노반魯班이라고 불렸는데, 손재주가 좋아 그의 명성이 당시 온 천하에 널리 퍼져 있었다. 한 번은 그가 초楚나라 국왕의 초정을 받아 성을 공격하는 무기를 제작하게 되어서, 일년이 넘도록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의뢰 받은 무기를 완성할 날은 도무지 기약이 없는데 초나라에서는 도무지 휴가조차 주지 않는지라, 그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도저히 달랠 길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이런 근심을 달랠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즉 자신을 태우고 짧은 시간 안에 초나라와 노나라를 왕복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일단 그런 결심이 서자 그는 곧 작업에 착수하여, 장장 다섯 달 동안 심혈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솔개 모양의 나무 기구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날 밤이 깊어지자, 그는 맑고 고요한 달빛 아래에서 자신의 발명품을 직접 시험해보기로 했다. 사실 이런 발명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초나라 왕에게 알려지면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것이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계의 제작부터 시험까지 은밀히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두 개의 커다란 날개를 쭉 펴고, 접고 펴기가 가능한 다리를 세운 그의 발명품은 나지막한 덤불에 가려진 채 처녀비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계의 등 부분은 어른 한 사람이 충분히 앉을 만한 넓이의 평평한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노반은 옷을 단단히 여미고, 모자를 꾹 눌러 쓴 채, 조심스럽게 솔개의 비행기의 등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기구의 아랫부분을 더듬어 스위치를 눌렀다. 그 순간,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솔개의 몸체가 맹렬히 공중으로 솟구쳤다.

노반은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꼈지만, 거세게 귓전을 스치는 차가운 밤공기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해서 조심스럽게 솔개의 비행 방향을 조절해서 노나라 쪽을 향하게 했다. 그리고 밝은 달빛 덕분에 그런대로 뚜렷한 윤곽이 드러난 발밑의 풍경 덕분에 그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노나라 상공에 도착할 수 있었다. 뒤이어 부친과 아내가 살고 있는 고향 집의 모습이 눈물로 가득 찬 그의 눈에 비쳤다. 아무래도 사회적 신분이 낮은 그의 집은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의 과수원과 밭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공중에서 찾기도 비교적 쉬웠고, 비행기의 커다란 몸체가 남에 눈에 발각될 염려도 덜했다.

“마침내 집에 도착했구나!”

나직하게 환호성을 지르며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솔개의 속도를 늦추고, 조심스럽게 착륙 장소를 향했다. 마침 그의 아내가 집 뒤에 가꿔놓은 텃밭은 안성맞춤의 장소를 제공했다. 그의 꼼꼼한 솜씨를 입증하듯, 나무로 만든 솔개는 매우 유연하게 정확한 지점을 찾아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선 그는 이슬에 젖은 밭두렁의 풀숲을 헤치고 정신없이 아내의 침실 쪽을 향해 달렸다. 찬바람을 잔뜩 맞은 그의 얼굴이며 귓불, 손가락은 아직 얼얼한 상태였지만, 아내를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들뜬 그에게 그런 것쯤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불 꺼진 아내의 창은 사실 그가 착륙한 곳에서 스무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열 번의 호흡을 채우기도 전에 그는 아내의 창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얀 달빛 속에 둥글게 빛나는 두 쪽 미닫이 식 창틀에 장식된 섬세한 매화문양은 신방을 꾸미면서 노반이 직접 조각한 것이었다.

똑! 똑, 똑!

잠든 아내를 깨우기 안쓰러웠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흥분 때문에 손놀림이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창을 두드리는 소리는 그가 듣기에도 부자연스러운 데가 있었다.

“……”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라 잠이 깊이 들었는지, 아니면 낯선 소리에 놀라서 경계하는 것인지 방안에서는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인기척 때문에 풀벌레들이 소리를 죽인 까닭에, 창으로 쏟아지는 적막이 한층 더 무겁게 느껴졌다.

똑, 똑, 똑! 이번에는 조금 세게 창을 두드리면서 그는 낮은 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여보, 나요! 문 좀 열어보구려!”

“……”

안에서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노반은 다급해져서 다시 손을 들어 창을 두드렸다. 아니, 두드릴 뻔했다. 왜냐하면 그의 손이 창틀에 닿으려는 순간, 창틀의 미닫이가 조심스럽게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방안으로 흘러드는 달빛을 따라, 살짝 찌푸린 채 의혹으로 빛나는 아내의 커다란 눈망울이 천천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 눈은 이내 경악의 감정을 드러내며 동그랗게 반짝였다.

“다, 당신? 어떻게…?”

“긴 얘기는 들어가서 해줄 테니, 어서 방문이나 좀 열어주시오. 이거 밤길을 왔더니 추워 죽을 지경이오.”

맨발로 달려 나온 아내가 방문을 열어주자, 노반은 온돌에 깔린 이불 밑으로 손을 밀어 넣으며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아, 그렇게 입을 벌리고 서 있지만 말고, 어서 따뜻한 차라도 한 잔 주시구려.”

그날 밤 이들 부부가 회포를 푼 모습은 기록에도 없으니,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아무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어둠이 서서히 걷혀갈 즈음이 되자, 노반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옷가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아내도 따라 일어나 옷 입는 것을 거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벌써 가셔야 할 때가 되었군요?”

이제는 솔개 비행기가 있으니까 달빛이 밝은 매월 보름마다 찾아올 수 있게 되었다는 남편의 얘기를 이미 들은 바 있는 아내는 차분하게 작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그녀가 조심스럽게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아버님께 인사는 드려야 되지 않겠어요?”

“……”

순간 노반은 낯빛이 변하며 잠시 눈길을 허공으로 돌렸다. 한참 후에 그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냥 둡시다, 아직은…”

아내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긴 그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네요.”

솔개는 마치 왔던 길을 외우고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허공을 날았다. 그러나 그 등에 앉은 노반은 가슴이 한없이 무거웠다. 귓전을 스치는 찬바람 사이로 한 동안 노나라 전역에 퍼져 있던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재주 많은 노반.
재주 많은 노반.
너무 뛰어난 재주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다네…

원래 노반은 모친은 도무지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다리에 병이 생겨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모친을 안쓰럽게 생각한 노반은 모친이 자유롭게 바람이나 쐬고 다니실 수 있게 해드리려는 생각에, 나무 인형이 운전하여 자동으로 움직이는 수레를 만들어 선물했다. 덕분에 어머니는 어지간히 험한 곳이 아니면 마음 내키는 대로 오갈 수 있게 되었고, 노나라 사람들은 재주 많은 아들을 둔 그녀를 몹시 부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그랬던 것처럼 아들이 선물한 수레를 타고 혼자 집을 나선 노반의 모친이 밤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온 가족이 밤을 새워 온 성안을 두루 찾았지만 모친은 끝내 찾을 수 없었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가족들도 단념하고 말았다. 노반은 백발이 성성한 부친 앞에 무릎을 꿇고, 경솔하게 그런 물건을 만들어 모친께 선물한 자신의 죄를 벌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부친은 한숨을 내뱉으며 그저 한 마디만 던지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네 녀석은, 네 녀석은 너무 재주가 많아서 탈이야!”

이 소문은 삽시간에 노나라 전역에 퍼졌고, 어디서 배웠는지 아이들은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노반을 풍자하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재주 많은 노반.
재주 많은 노반.
너무 뛰어난 재주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다네!
나무로 만든 수레는 위풍도 당당했지.
마부도 필요 없고, 풀을 먹일 필요도 없었지만,
늙은 어머니 싣고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가버렸지!

이번에 노반이 만든 날아가는 솔개는 예전에 모친께 선물했던 자동 수레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한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부친이 알게 되면 당신의 심정이 어떨지는 생각해보나 마나 한 일이었다. 결국 그는 초나라에서 일이 끝날 때까지 당분간 부친 몰래 아내만 만나고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초나라 왕과 약속한 기한이 꼭 한 달을 남겨두게 되었다. 애초에 초나라 왕은 음력 8월 15일이 되면 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했고, 노반이 만들기로 한 무기도 그 즈음이면 넉넉히 완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니 결국 노반 부부의 이 위험한 만남도 오늘로써 마지막이 되는 셈이었다.

창틈으로 은은히 스며드는 금목서金木瑞 나무의 달콤한 꽃향기를 음미하며, 노반은 품에 안긴 아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오늘 돌아간 이후로 다시는 저 나무 솔개를 타지 않을 작정이오.”

“그래요. 사실 그 동안 저걸 타고 오가는 당신을 보면서 저도 은근히 불안했다구요. 다행히 아직 아버님이 모르고 계시니까, 오늘 초나라에 돌아가시면 바로 저걸 없애버리세요.”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다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게 아니듯이, 이 부부의 마지막 대화는 그만 창가에서 엿듣고 있던 노반의 부친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나이가 들면 눈치도 따라 는다고 하지 않던가? 노인은 몇 달 전부터 며느리의 안색이 갑자기 밝아진 것을 눈치 채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짐작했던 것이다. 오랜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추론해보건대, 젊은 아낙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도는 것은 틀림없이 알 만한 사연이 개입되어 있을 터였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씩, 깊은 밤에 행해지는 부부의 재회를 포착하기란 끈기 있는 그 노인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그날 노인이 며느리의 창가에 오게 된 것은 다분히 우연, 혹은 운명의 장난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날따라 노인은 한밤중에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문득 며느리 방 쪽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인의 귀가 유난히 밝았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한밤중이라 사방이 너무 고요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소리도 잘 들렸기 때문이었는지는 기록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거니와, 여기서 굳이 그걸 따질 필요도 없는 일이다.

“어쨌든 저렇게 나무 몇 조각을 맞춰 하늘을 마음대로 나는 물건을 만들어낼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당신 하나밖에 없을 거예요.”

애교와 감탄이 뒤섞인 며느리의 목소리가 다시 창틈을 흘러나왔다.

“그런들 뭐하겠소? 부친께조차 그걸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아들의 한숨 소리가 노인의 귓전을 무겁게 눌렀다.

“어쨌든 절대 아버님께서 이 일을 아시게 해서는 안 되오. 하긴 애초에 내가 이런 물건을 만들지 않았으면 되는 것을……. 난 이미 불효자식이 되어버렸소.”

점점 잠겨가는 노반의 목소리는 쓸쓸한 비탄에 젖어 있었다.

“이번에 초나라에 돌아가면 저걸, 저걸 태워버리겠소!”

노반은 이를 꽉 깨물며 혼자 다짐하듯 말을 이었다.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난 그저 신혼부부의 침상이나 남의 집 탁자 따위나 만들어주는 평범한 목수 노릇이나 하며 살겠소. 어느 집 외양간이 망가졌다면 그런 거나 고쳐주면서 말이오. 다시는 저런 신기한 발명품 따위는 만들지 않겠소. 신비한 손을 가진 공수반은 오늘 이후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요!”

추위도 잊은 채 창가에 서 있던 노인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왔다. 아비만큼 자식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노인은 그토록 신기한 손재주를 묻어두고 살기에는 아들의 재능과 열정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알았다. 노반의 존재는 비단 노인 자신뿐만 아니라 노나라 전체의 자랑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오늘 이후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스스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한 동안 멍하니 며느리 방의 창문을 응시하던 노인은 천천히 등을 돌려 텃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달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나무 솔개는 당당히 서서 마지막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놈이 이번엔 정말 대단한 걸 만들었구나!’

노인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나무 솔개의 몸통을 몇 차례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솔개의 등 위로 올라앉아, 허리를 숙인 채 몸통 아래의 기관 장치를 이것저것 만져보았다. 그러다가 노인의 손이 작은 막대기를 당기는 순간, 갑자기 나무 솔개가 맹렬히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얘야! 이 나무 솔개는 정말 대단하구나!”

자리에 마련된 손잡이 필사적으로 움켜쥐면서 노인은 며느리의 방을 향해 힘껏 소리쳤다. 맨발로 뛰쳐나온 노반 부부는 달을 향해 점점 높이 떠가는 솔개를 보면서, 그저 입을 딱 벌린 채 어쩔 줄 몰랐다.

“네 어미도 이걸 탔다면 아주 좋아했을 게다!”

노반은 점점 높아지는 나무 솔개의 모습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고 있던 그가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이, 이런! 아버님은 조종 방법을 모르시잖아!”

그는 그만 땅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버렸다. 서리를 뒤집어쓴 낙엽이 쌀쌀한 가을밤의 바람을 타고 음산하게 날렸다.

노반이 부친의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후였다. 노반의 부친이 첫 비행을 한 다음날 새벽에, 노나라에서 천리도 넘게 떨어진 오吳나라 땅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했다. 한 마리 거대한 새가 등에 노인을 태우고 오나라의 수도가 있는 고소성姑蘇城(지금의 쟝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 위로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온 나라 사람들이 요괴가 나타났다며 소란을 피우던 와중에, 개중 용감한 병사 하나가 밧줄을 던져 새의 날개에 걸어서 끌어내렸다. 흥분한 군중들은 그 ‘요괴’를 때려죽이고, 나무 솔개를 부숴버렸다.

부친의 시신과 엉망으로 부서진 솔개의 잔해는 그로부터 한 달 남짓 지나서야 노반의 집으로 운송되었다. 그 사이에 초나라 왕에게 약속한 일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노반은 부친의 삼년상을 마친 후, 대문을 걸어 닫고 다시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미리 밝혔듯이, 이 이야기는 나무로 솔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았다는 신묘한 기술자를 소재로 한 세 편의 서로 조금씩 다른 기록 즉, 《회남자·제속훈》과 《논형·유증편》, 그리고 《유양잡조》의 내용을 새로 엮은 것이다. 그런데 실은 위 책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은 원래 모두가 ‘노반魯般’으로 되어 있고, 특히 《유양잡조》의 기록에 등장하는 돈황燉煌 출신의 노반은 전국시대의 공수반과 다른 인물로 밝혀져 있기도 하다. 필자가 다시 엮은 이야기의 후반부는 대개 《유양잡조》의 기록을 근거로 삼고 있는데, 다만 결말 부분에 대해서는 임의로 약간 변화를 주었다. 원래의 기록에 따르면, 돈황의 노반은 부모가 모두 살아 있고, 양주凉州라는 곳에서 절의 탑을 제작하고 있었다.

물론 그도 아내를 그리워하다가 나무로 솔개를 만들어 왕래하며 지냈으나, 아내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부모에게 들통이 난다. 그런데 나중에 그의 부친이 몰래 솔개를 타다가, 조정을 잘못해서 오나라에 떨어지게 되고, 결국 그곳에서 요괴로 오인되어 맞아죽는다. 여기까지는 필자가 새로 엮은 글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그러나 원래의 기록에서 돈황의 노반은 부친이 오나라에서 맞아죽은 후에, 다시 나무 솔개를 만들어 타고 오나라로 가서 부친의 시신을 수습해 온다. 또한 부친을 죽인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신선 인형을 만들어 그 신비한 힘으로 오나라 땅에 삼년 동안 큰 가뭄이 들도록 저주를 내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일정 정도의 체제와 규모를 갖춘 ‘이야기’에 관한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관념에서 《유양잡조》에 등장하는 노반에 관한 이야기처럼 비극적인 줄거리를 갖고 있는 것은 대단히 드물다는 점은 지적해둘 필요가 있겠다.

이런 형상은 본질적으로 자신들이 속한 세계를 그물망처럼 엮인 유기체적有機體的 인소因素들의 잘 조화된 혼돈으로 파악하는 고대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이에 관해 자세히 살펴볼 여유가 없다. 다만 여기서는 《유양잡조》에 수록된 이야기들 가운데 몇몇이 일반적인 고대 중국의 이야기들과 다른 경향을 보이는 이유가 이 책의 본질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정도로 충분할 듯하다. 즉 이 책의 경우는 처음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생각보다는, 작자가 살고 있던 시대의 세계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건 보존해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일종의 지식을 기록해둔다는 목적에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수록된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문학 작품으로서 창작된 소설들과 약간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에서 오늘날의 소설과 같은 목적에서 산문으로 된 이야기들이 창작되어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빨라도 13세기 송·원 시대에나 가능했다. 특히 직업으로서 이야기의 창작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작자의 수가 현저하게 늘어난 것은 16세기 명나라 중엽에나 이르러서야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비행기와 같은 이야기의 소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늦어도 기원전 3세기 무렵이라는 사실은 어쨌든 놀라운 일이 아닌가! 더욱이 “두 개의 커다란 날개를 쭉 펴고, 접고 펴기가 가능한 다리를 세운” 이 비행기의 구조는 양 팔의 힘을 이용하는 이카로스의 깃털 날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비록 동력원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없지만 그것은 분명 스위치를 통해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명실상부한 비행기였던 것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19세기 즉, 청淸나라 후기부터 나온 소설 작품들에는 훨씬 정교하고 발전된 형태의 비행기에 대한 묘사가 종종 발견된다. 이것은 어쩌면 명明나라 때부터 비약적으로 대두한 도시의 시민 계층들이 키워온 현실적인 사고방식과 청나라 초기부터 사상계를 주도한 이른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 그리고 이미 명나라 때부터 중국에 들어가 활동하기 시작한 서양 선교사들이 전한 서구식 자연과학의 개념 등이 점차 발전하고 있던 소설가들의 서사 기술과 융합하면서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경화연》에 묘사된 ‘나는 수레’는 바귀 대신 프로펠러를 달고 돛을 내건 재미있는 모습니다. 이 수레는 순풍을 타면 하루에 1만 리도 날 수 있었다고 한다.


1818년 쑤저우蘇州에서 처음 간행된 이여진(李汝珍: 1763∼1830)의 《경화연鏡花緣》에는 묘사된 ‘나는 수레[飛車]’는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하겠다. 이 장편의 해양 모험 소설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이 수레는 높이가 약 90cm이고 길이는 약 120cm, 폭이 약 60cm인 소형이지만, 하루에 2~3천리 즉 1,000km 정도를 날 수 있다. 심지어 순풍을 타면 만 리 즉 4,000km도 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여기에서는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이 기계의 구조와 조종법에 관해서까지 상당히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몸통이 버드나무로 된 이 수레의 내부에는 방위를 측정할 자석이 장치되어 있고, 후미에는 방향타가 튀어나왔으며, 몸체 아래에는 바퀴 대신에 구리로 만든 크고 작은 프로펠러가 무수히 달려 있다. 그것들은 종이처럼 얇지만 단단한 금속 물질이며, 당연히 그것들을 작동하는 엔진도 달려 있다(다만 그 엔진의 구조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이 없다). 또한 조종할 때에는 시동과 비행, 정지의 기능을 가진 세 가지 막대 손잡이를 사용한다. 그리고 비행 중에 우회전을 할 때에는 조종간을 왼쪽으로 기울이고, 좌회전을 할 때는 그 반대로 오른쪽으로 기울인다.

재미있는 것은 이 수레가 순풍을 맞아 속도를 높일 때면 ‘돛’을 내건다고 묘사된 점이다. 현대의 과학적 상식으로 생각하자면 그런 식의 돛은 결국 공기의 저항 때문에 비행기의 속도를 방해하는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오히려 이런 발상이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유쾌하고 상큼한 양념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기술적 타당성을 떠나서 앞에 인용된 그림 속의 인물들에게 그 비행기 여행은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지게 느껴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