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예술기법 35 선성탈인법先聲奪人法

선성탈인법先聲奪人法

【정의】

‘선성탈인법’은 원래 《좌전》에서 나온 말로 군사가가 용병할 때 먼저 자신의 우렁찬 소리로 적의 사기를 꺾는 것을 가리킨다. 나중에 문예 창작에 응용되어 인물의 성격을 빚어내는 기법으로 쓰였다. 곧 작중 인물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전에 그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독자가 그 목소리로 인물 성격의 맥박을 더듬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희곡에서 말하는 ‘규장叫場’이나 ‘마문강馬門腔’으로, 인물의 ‘량상亮相’을 보여주는 하나의 기법이다. 희곡이나 소설이나 등장인물은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어 관중이나 독자와 만날 때 ‘량상’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희곡 예술가 거쟈오톈蓋叫天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희곡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거의 모두 이렇게 많은 연기 동작을 해야 한다. 이런 동작들은 간단해 보이지만, 잘 해내기는 쉽지 않다. 몇 십 년 간 희곡을 연기해도 몇 발자국의 걸음도 반드시 잘 해낸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인물의 신분이나 품격은 그 한 대목이 끝나고 다음 대목으로 넘어갈 때吊場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게 해야 한다.每出戱每個人物出場差不多都得有這麽多表演的動作, 這些動作看似簡單, 可不容易做得好, 有演幾十年戱, 也不一定能做好這幾步路的. 人物的身份, 品局, 要打出場一個吊場就得讓人感覺出來.”

【실례】

《요재지이》 「잉닝嬰寧」에서 왕 생이 잉닝의 집에 갔을 때 노부인은 그가 자신의 생질임을 알아본다. 그리고는 계집종을 시켜 양녀인 잉닝을 불러 서로 만나게 한다. 그런데 계집종이 나가고 난 뒤 왕 생의 귀에 들린 것은 “문밖의 웃음소리”였다. 이에 무안해진 노부인이 “잉닝아, 여기 네 사촌 오라비가 왔다”고 말하지만, “그런데도 문밖에서는 깔깔거리고 웃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계집종에게 떠밀려 방안으로 들어오면서도 여전히 입을 가린 채 웃음을 그칠 줄 몰랐다.”

여기서 왕 생은 그녀를 보기 전에 먼저 그 웃음소리를 듣게 된다. 웃음소리도 다양해서 처음에는 깔깔거리고 웃다가 입을 가린 채로 웃고, 나중에는 허리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웃는다.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 하거니와 웃음은 잉닝이라는 아가씨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인 셈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웃음은 그 사람의 진실한 감정의 표출이고 유형의 ‘영혼’이다. 잉닝의 웃음이야말로 그녀의 천진하고 활발하며 밝은 성격을 드러내 보여주는 표현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즈옌자이脂硯齋가 말한 바, “아직 그 모습을 묘사하지 않고 먼저 그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 이른바 ‘화려하게 수놓은 깃발이 열리니 멀리 영웅의 자태가 드러난다’未寫其形, 先使聞聲, 所謂‘綉幡開遙見英雄俺’”는 것이다.

【예문】

문득 노부인이 물었다.

“도령의 외조부 성이 혹시 우 씨吳氏가 아닌가요?”

왕 생이 그렇다고 대답하니 노부인이 놀라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너는 내 생질이구나! 너의 어머니가 바로 내 여동생이야. 몇 해 동안 살림살이가 어려운 데다 집안에 또 남정네가 없어 소식을 전하지 못했더니, 조카가 이렇게 장성한 줄도 모르고 있었네.”

“제가 이번에 온 것은 이모님을 뵙기 위해서랍니다. 그런데 분주하게 서두르다 보니 그만 이모님의 성씨를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지 뭡니까.”

“우리 집 성은 친 씨秦氏란다. 나는 자식을 두지 못했지. 딸아이가 하나 있지만 그 아이는 서출이야. 그 어미가 개가하면서 나한테 맡기는 바람에 그만 내가 기르게 되었지. 우둔하진 않은데 배운 것이 없어서 그저 놀기나 좋아하고 세상 걱정을 모르는 아이란다. 조금 있다 오라고 해서 인사를 시켜주마.”

얼마 후 계집종이 밥상을 내왔는데 손아귀에 꽉 찰 듯 굵은 닭다리까지 놓여 있었다. 노부인이 권하는 대로 식사를 마치자 계집종이 밥상을 내갔다.

“잉닝嬰寧 아가씨를 좀 오라고 해라.”

노부인의 분부에 그녀는 대답과 함께 자리를 비켰다. 한참 있으니 문 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노부인이 다시 말했다.

“잉닝아, 여기 네 사촌 오라비가 왔다.”

그런데도 문밖에서는 깔깔거리고 웃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계집종에게 떠밀려 방안으로 들어오면서도 여전히 입을 가린 채 웃음을 그칠 줄 몰랐다. 노부인이 눈을 흘기며 나무랐다.

“손님이 계셔도 상스럽게 웃기만 하다니, 이게 무슨 꼴이냐?”

여자는 그제서야 웃음을 참고 똑바로 섰다. 왕 생이 그녀에게 목례를 하자, 노부인은 그를 여자에게 소개했다.

“이 왕 도령은 네 이모의 아들이다. 일가끼리 서로 알아보지도 못했으니 남들이 웃을 노릇이구나.”

“누이는 나이가 몇 살인가요?”

왕 생이 물었지만, 노부인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왕 생이 재차 묻자, 여자가 다시 웃기 시작했는데 허리를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다. 노부인이 왕 생에게 말했다.

“배운 게 없다고 말했더니, 이것만 봐도 알 수 있겠구나. 나이는 열여섯이나 먹은 것이 철딱서니 없기는 어린애 같단 말이야.”

“그러면 저보다 한 살이 아래군요.”

“조카가 벌써 열일곱이나 됐다면, 경오庚午 생 말띠가 아니냐?”

왕 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조카며느리는 어느 집 딸인고?”

“아직 없는데요.”

“너처럼 출중한 아이가 어떻게 열일곱이나 되도록 장가를 들지 않았니? 우리 잉닝이도 배필을 정하지 않았으니 서로 좋은 한 쌍이 될 수 있으련만 애석하게도 친척지간이라 혼인하기가 어렵겠구나.”

왕 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잉닝을 주시하느라고 다른 곳을 쳐다볼 겨를조차 없었다. 계집종이 귓속말로 그녀에게 소근댔다.

“눈알을 번득거리는 게 도적 심보를 아직도 못 버렸네요.”

그러자 잉닝은 또다시 큰소리로 웃었다. 그녀는 계집종을 돌아보며, “벽도화碧桃花가 피었는지 보러 가지 않겠니?”라고 말하더니 벌떡 일어나 소매로 입을 가린 채 종종걸음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문밖에 나가서는 마음 놓고 큰소리로 웃어젖히는 것이었다.( 《요재지이》 「잉닝嬰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