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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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록대부(光祿大夫) 진풍애(陳楓崖)가 해준 이야기이다.

강희연간(1662~1723)에 풍경진(楓涇鎭)에 한 태학생이 있었는데, 한번은 별장에서 글을 읽었다고 한다. 하루는 잡초더미에서 부식되고 깨진 돌비석 하나를 발견했는데, 겨우 수십 글자 정도 남아 있었다. 간혹 한 두 부분이 문장이 되었는데 요절한 여자의 무덤 같았다. 원래부터 호사가였던 태학생은 그 무덤이 틀림없이 근처에 있을 꺼라 생각하고는 매번 비석에 음식을 차려놓고 장난스러운 말로 명복을 빌었다.

1년 남짓 뒤에 아름다운 여자가 혼자 텃밭 사이를 거닐고 있는데, 손에 들꽃을 들고 태학생을 향해 한번 웃어보였다. 태학생은 여자 가까이로 달려가 눈웃음치더니 여자를 데리고 울타리 뒤에 있는 잡풀더미 사이로 들어갔다. [그 순간] 여자가 우두커니 서서 똑바로 쳐다보며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자기 뺨을 때리면서 말했다.

“100년 넘게 마음이 마른 우물과 같았는데, 하루아침에 난봉꾼에게 마음이 흔들리다니!”

그녀는 발을 몇 번 동동 구르더니 돌연 사라졌다. 태학생도 비로소 그 여자가 무덤 속 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림원(翰林院) 수찬(修贊) 채계실(蔡季實)이 말했다.

“‘옛 사람들이 말하는 개관논정(盖棺論定)으로 이 일을 보니, 관 뚜껑을 덮고도 도리어 그 사람을 평가하기 힘든 것임을 알겠다. 그 여자는 본래 정절을 아는 귀신이었으나, 순간의 생각 차이로 옛날의 정절도 잃을 뻔했구나!”

회암(晦庵) 선생의 시에 “세상에 사람의 욕심만큼 위험한 것이 없거늘,

대개의 사람들은 이 때문에 평생을 그르친다.”고 하더니 진실로 그러하구나!

陳楓崖光祿言. 康熙中, 楓涇一太學生, 嘗讀書別業. 見草間有片石, 已斷裂剝蝕, 僅存數十字. 偶有一二成句, 似是夭逝女子之碣也. 生故好事, 意其墓必在左右, 每陳茗果於石上, 而祝以狎詞. 越一載餘, 見麗女獨步菜畦間, 手執野花, 顧生一笑. 生趨近其側, 目挑眉語, 方相引入籬後灌莽間. 女凝立直視, 若有所思, 忽自批其頰曰: “一百餘年, 心如古井, 一旦乃爲蕩子所動乎!” 頓足數四, 奄然而滅. 方知卽墓中鬼也.

蔡修撰季實曰: “古稱蓋棺論定, 觀於此事, 知蓋棺猶難論定矣. 是本貞魂, 猶以一念之差, 幾失故步.” 晦庵先生詩曰: “世上無如人欲險, 幾人到此誤平生.” 諒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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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렴(孝廉) 왕금영(王金英)이 해준 이야기이다.

강녕(江寧)의 한 서생이 고택의 황폐한 정원에 묵게 되었다고 한다. 달 밝은 밤에 한 아름다운 여자가 창문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속으로 귀신이 아니면 여우라고 생각했다. 여자의 아름다운 용모에 이끌려 두려움도 잊고 여자를 방안으로 불러들였더니 여자도 자연스럽게 따르며 다가왔다. 그러나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서생이 물어봐도 대꾸도 않은 채 그저 미소를 머금고 추파만을 던졌다. 한 달 남짓 이렇게 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루는 여자를 붙잡고 한사코 묻자, 여자가 붓을 가져오게 하더니 이렇게 적었다.

“저는 본래 명나라 때의 모 한림(翰林)의 시첩이었으나 불행하게도 요절했습니다. 생전에 사람들을 이간질시키고 부추겨서 결국 한 집안의 사람들을 물과 불처럼 원수지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저승관리께서는 저를 꾸짖고 그 벌로 벙어리 귀신이 되게 했는데, 이미 200여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나리께서 저를 위해 《금강경(金剛經)》 10부를 초록해주시어 부처의 힘으로 고해의 바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시면 대대로 나리의 큰 은혜에 감사드리겠습니다.”

이에 서생은 그 바람대로 해 주었다. 《금강경》을 다 필사하던 날 그녀는 서생에게 두 번 절하고 난 뒤 다시 붓을 들고 이렇게 적었다.

“《금강경》에 힘입어 참해하고 이미 귀신의 세계에서 벗어났습니다. 업에 따라 왕생할 수 있게 되었으나, 전생에 지은 죄가 너무나 커 내세 삼대동안 벙어리로 산 연후에야 비로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王孝廉金英言. 江甯一書生, 宿故家廢園中. 月夜有艶女窺窗, 心知非鬼卽狐. 愛其姣麗, 亦不畏怖, 招使入室, 卽宛轉相就. 然始終無一語, 問亦不答, 惟含笑流盼而已. 如是月餘, 莫喩其故. 一日, 執而固問之, 乃取筆作字曰:“妾前明某翰侍姬, 不幸夭逝. 因平生巧於讒搆, 使一門骨肉如水火. 冥司見譴, 罰爲瘖鬼, 已沉淪二百餘年. 君能爲書《金剛經》十部, 得仗佛力, 超拔苦海, 則世世銜感矣.” 書生如其所乞. 寫竣之日, 詣書生再拜, 乃取筆作字曰: “藉《金經》懺悔, 已脫鬼趣. 然前生罪重, 僅能帶業往生, 尙須三世作啞婦, 方能語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