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격률을 읽고 한마디 지껄이다讀律膚說

격률을 읽고 한마디 지껄이다讀律膚說1]

시(詩)가 너무 평담(平淡)하면 맛이 없고, 너무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면 감동되는 것이 없다. 나긋나긋 교태가 있으면 겉모습은 화려해도 우아한 멋이 없고, 함축적이고 뜻이 깊으면 정신을 상하게 하여 유약한 쪽으로 흐르게 하기 쉽다. 너무 얕게 하려고 해서도 안되고, 너무 깊게 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격률(格律)에 구속당하면 격률의 제약을 받으니, 이는 시의 노예[詩奴]가 되는 것이고, 비속한 쪽으로 흐르는 결점이 있게 되어, 오음(五音)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반면에 격률에 구속을 당하지 않으려고 하면 음률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이는 시의 마귀[詩魔]가 되는 것이고, 방종한 쪽으로 흐르는 결점이 있게 되어, 오음이 위치와 질서를 잃게 된다. 오음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시의 격[色]이 없어지고, 오음이 질서를 잃으면 시의 음(音)[聲]이 없어진다.

대개 시의 음과 격은 성정(性情)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인데, 억지로 끌어다 맞추어 일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저절로 성정으로부터 일어나면 저절로 예의(禮義)에 머무는 것이지, 성정 밖에 다른 무슨 머무를 예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끌어다 맞추려고 하면 잘못되게 되니, 따라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성정 이외에 또 달리 이른바 ‘저절로 그러한 것’[自然而然]은 없다.

따라서 성격이 해맑은 사람의 음조는 저절로 유창하고, 성격이 느긋한 사람의 음조는 저절로 완만하고, 성격이 탁 트인 사람의 음조는 저절로 호탕하고, 성격이 호매한 사람의 음조는 저절로 장렬하고, 성격이 침울한 사람의 음조는 저절로 시큰하고, 성격이 특이한 사람의 음조는 저절로 유별나다. 어떤 성격이 있으면 그에 따른 음조가 나오게 되니, 이는 모두 각각의 성정이 저절로 그러한 것[情性自然]을 이르는 것이다.

저마다 성정이 없는 것이 없는데, 하나의 격률을 적용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自然]은 의도적으로 저절로 그렇게 되게 하려고 한다고 해서 갑자기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의도적으로 저절로 그렇게 되게 하려고 한다면 억지로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자연지도(自然之道)라는 것은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권3)


 [1]. 중국의 시가(詩歌)는 남북조(南北朝) 시기에 엄격한 율격(律格)이 정착되기 시작했고, 당․송 시대에는 우수한 작가와 작품이 많이 나와,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명대에는 당․송 시대 시의 창작 정신을 배우기보다 그 율격을 철저히 따르는 것에 지나치게 치중함으로써, 율격에 구속되고 구시(舊詩)를 모방하는 풍조가 만연하기도 했다. 이지는 당시 일세를 풍미하던 시의 율격에 관한 이론을 보고 나서, 이 글을 쓴 듯하다.

讀律膚說

淡則無味,直則無情。宛轉有態,則容冶而不雅;沉著可思,則神傷而易弱。欲淺不得,欲深不得。拘於律則爲律所制,是詩奴也,其失也卑,而五音不克諧;不受律則不成律,是詩魔也,其失也亢,而五音相奪倫。不克諧則無色,相奪倫則無聲,蓋聲色之來,發於情性,由乎自然,是可以牽合矯强而致乎?故自然發於情性,則自然止乎禮義,非情性之外復有禮義可止也。惟矯强乃失之,故以自然之爲美耳,又非於情性之外復有所謂自然而然也。故性格淸徹者音調自然宣暢,性格舒徐者音調自然疏緩,曠達者自然浩蕩,雄邁者自然壯烈,沉鬱者自然悲酸,古怪者自然奇絕。有是格,便有是調,皆情性自然之謂也。莫不有情,莫不有性,而可以一律求之哉!然則所謂自然者,非有意爲自然而遂以謂自然也。若有意爲自然,則與矯强何異。故自然之道,未易言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