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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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가 모두 정해져 있다고 하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자년(戊子年) 봄에 나는 어떤 사람을 위해 「번기사렵도(蕃騎射獵圖)」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백초(白草)는 하늘에 잇닿아 있고, 들짐승은 살쪄있네.
나는 듯 한 말 위에서 활시위를 당기기를 좋아했네.
언제 빨리 황양(黃羊)의 피를 마실 수 있을까?
한번 천산(天山)에 올라 눈 속에서 사냥이나 해야지.

그해 8월 결국 [나는] 서역으로 수자리 서러 갔다.

또한 동문각(董文恪) 공이 일찍이 나를 위해 「추림멱구도(秋林覓句圖)」를 그려주었다. 내가 우루무치에 가서 보았더니 성 서쪽에 삼림이 우거져 있고, 노목(老木)은 구름을 향해 뻗어 있는데, 수십 리에 걸쳐 이어져 있었다. 전임 장군 오미태(伍彌泰)가 숲 속에 정자를 세우고, ‘수야(秀野)’라 이름 부쳤다. 그 사이를 천천히 거닐다보니, 앞서 본 「추림멱구도」 속의 정경과 꼭 같았다. 신묘년(辛卯年)에 북경으로 돌아와 절구 한 수를 지었다.

서리 맞은 나뭇잎은 노랗게 물들었으나 돌은 푸릇푸릇하고,
홀로 시 읊조리며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신세 스스로 탓하네.
일찍이 서역에 갈 징조가 있었는지 누가 알았겠는가?
노목, 찬 구름, 수야정이 그것이로세.

事皆前定, 豈不信然! 戊子春, 余爲人題「蕃騎射獵圖」曰: “白草粘天野獸肥, 彎弧愛爾馬如飛. 何當快飮黃羊血? 一上天山雪打圍.” 是年八月, 竟從軍於西域.

又董文恪公嘗爲余作「秋林覓句圖」. 余至烏魯木齊, 城西有深林, 老木參雲, 彌亙數十里. 前將軍伍公彌泰建一亭於中, 題曰: ‘秀野.’ 散步其間, 宛然前畵之景. 辛卯還京, 因自題一絶句曰: “霜葉微黃石骨靑, 孤吟自怪太零丁. 誰知早作西行讖? 老木寒雲秀野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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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피(南皮)에 외과 의원 아무개가 있었는데, 의술이 매우 뛰어났다. 그러나 그는 암암리에 독약을 즐겨 사용하면서 많은 돈을 요구했으며,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환자가 죽어나가곤 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비밀스러워 다른 의원들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어느 날 그 아들이 벼락을 맞고 죽은 일이 일어났다. 그 사람은 지금도 살아있으나, 감히 어느 누구도 그를 청해 병을 고치려 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가 아무개가 죽인 사람은 너무 많은데, 어찌하여 하늘은 그를 죽이지 않고 그 아들을 죽였는가? 하늘이 벌을 내림에 형평성을 잃었다고 말했다. 무릇 죄가 지극하지 않으면, 형벌이 그 처자에 미치지 않고, 악이 극에 달하지 않으면, 재앙이 다음 대에 미치지 않는다. 그 자식을 죽인 것은 화가 후대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南皮瘍醫某, 藝頗精. 然好陰用毒藥, 勒索重貲, 不饜所欲, 則必死. 盖其術詭秘, 他醫不能解也. 一日, 其子雷震死. 今其人尙在, 亦無敢延之者矣.

或謂某殺人至多, 天何不殛其身而殛其子? 有佚罰焉. 夫罪不至極, 刑不及孥, 惡不至極, 殃不及世. 殛其子, 所以明禍延後嗣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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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관(安中寬)이 해준 이야기이다.

옛날에 오삼계(吳三桂)가 [삼번(三藩)의] 난을 일으켰을 때, 육임술(六壬術)에 정통한 한 술사(術士)가 오삼계에게 투항하러 가던 길에 한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그 사람도 오삼계에게 투항하려 한다고 해서 두 사람은 함께 묵게 되었다. 그 사람이 서쪽 담벼락 아래서 자려하자 술사가 말했다.

“그곳에서 자지 마시오. 밤 11시가 되면 담이 무너질 것이요.”

그 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아직 술법에 정통하지 않군요. 담은 바깥쪽으로 무너지지 안쪽으로 무너지지 않소.”

밤 11시에 과연 담은 바깥쪽으로 무너졌다.

나는 이 이야기가 억지로 꿰맞춘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람은 담이 어느 쪽으로 무너질지 알고 있었다면, 오삼계가 필패할 것이라는 것은 몰랐단 말인가!

安中寬言. 昔吳三桂之叛, 有術士精‘六壬’, 將往投之. 遇一人, 言亦欲投三桂, 因共宿. 其人眠西墻下, 術士曰: “君勿眠此. 此墻亥刻當圮.” 其人曰: “君術未深. 墻向外圮, 非向內圮也.” 至夜果然.

余謂此附會之談也. 是人能知墻之內外圮, 不知三桂之必敗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