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곳에나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유럽의 ‘유토피아’와 미주 대륙의 ‘엘도라도’, 중국의 ‘무릉도원’을 들 수 있는데, 서양인들에게는 동양에 대한 자신들의 신비감을 덧칠해 만든 ‘샹그릴라’라는 이상향이 하나 더 있다. 굳이 “서양인들에게는”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이것이 원래부터 중국에 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허구이기 때문이다.
‘샹그릴라’가 사람들의 주목을 끈 것은 1933년.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턴(1900∼1954)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때문이었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거대한 살육전이 막 끝난 뒤임에도 멈출 줄 모르는 제국주의 세력의 야욕이 분출되어 세계 각지에서 각축전이 벌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공황이 발생해 누구라 할 것 없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사람들이 창세기의 무대인 에덴 동산과 같이 인간의 갈등과 탐욕이 없고 온갖 종교가 서로 화합하고 공존하는 이상향을 꿈꾸고 있을 때, 이 소설은 사람들에게 현세에 존재하는 낙원을 제시함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왔고, 1937년에는 미국 콜럼비아 영화사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잃어버린 지평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럽에서 한창 제국주의의 각축전이 벌어지던 1930년대 초 인도의 바스쿨(현재의 파키스탄)에서 주민 폭동이 일어나자 영국 영사 콘웨이와 부영사 멜린슨, 천주교 동방전도사 브링클로, 미국인 바너드 등은 소형 비행기를 타고 현지를 탈출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그들이 탄 비행기는 티벳의 젊은이에게 납치돼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티벳인들이 사는 ‘푸른달의 계곡’이라는 거대한 협곡에 불시착한다. ‘푸른달의 계곡’은 주변을 둘러싼 설산(雪山)과는 달리 푸른 초원과 갖가지 꽃과 풀, 비옥한 토양, 무한대의 금광(金鑛)이 있는 ‘세외도원(世外桃園)’이었다. 비행기를 조종한 젊은이는 불시착 직후 ‘샹그릴라’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둔다. 이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장(張)이라는 한족(漢族) 노인에 의해 인근 라마교 사원으로 안내된다. 콘웨이는 이곳에서 ‘페로’라는 프랑스 국적의 천주교 수도사와 만주국 공주 ‘로센’을 만난다.
샹그릴라는 천주교, 불교, 도교, 유교 등 각종 종교가 공존하며, 사람들간에 갈등과 분쟁이 없고, 중용(中庸)의 미덕을 숭상하며, 사람들이 장수하는 곳이었다. 샹그릴라에서는 사람들이 보통 200살이 넘게 살았고, 100살 정도면 아이 취급을 받았다. 그곳에서 일행은 80대 노인 페로를 만나는데, 그는 놀랍게도 1700년 초에 동방 선교에 나섰다 실종된 기독교 선교사였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들리기에 찾아 들었더니 120세 된다는 쇼팽의 제자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그곳에 오게 된 서양인들은 모두 샹그릴라에서의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지만 멜린슨만은 이곳을 벗어나려 한다. 콘웨이는 멜린슨의 간청에 못 이겨 멜린슨 및 그와 사랑에 빠진 로센과 함께 샹그릴라를 탈출한다. 하지만 샹그릴라를 벗어나자 로센은 본래의 나이인 90세로 되돌아가 숨지고 만다. 이에 뒤늦은 깨달음으로 콘웨이는 잃어버린 낙원으로 되돌아가려 하지만 끝내 그 입구를 찾지 못한다.
영화가 만들어졌던 1937년은 바야흐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시기로 유럽인들은 자신들을 암울한 현실에서 구원해줄 희망을 ‘샹그릴라’에서 찾았다. 마침내 전쟁이 발발하고, 한참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42년 전쟁에 지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메릴랜드주에 대통령 별장을 지었는데, 그 이름을 ‘샹그릴라’로 명명했다. 그 역시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꿈꾸었던 것이었을까? 이것이 오늘날 미국 대통령들이 휴가를 보낼 때마다 찾는 ‘캠프 데이비드 별장’이다.
티벳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들은 샹그릴라(香格里拉·shangrila)의 뜻을 두 가지로 풀이한다. 우선 샹(香)은 ‘마음’, 그(格·중국어 발음은 거)는 ‘∼의’, 리(里)는 ‘태양’, 라(拉)는 ‘달’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에 따르면 샹그는 ‘흰 달빛’, 리라는 ‘태양’을 의미하며 중뎬(中甸·현 샹그릴라)현의 고성(古城) 이름인 일월성(日月城)을 가리키는 것이라 한다. 또 샹그릴라는 티벳불교 경전에 나오는 ‘샹바라(香巴拉)’의 중뎬 지방 방언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샹바라는 ‘불국정토(佛國淨土)’ ‘피안(彼岸)세계’, ‘이상향’을 뜻한다.
그런데 요즘 중국에서는 때아닌 ‘샹그릴라’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 내에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관광 수입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되자 지역마다 자신들의 지역 특색에 맞는 관광 상품이 될만한 명승지를 찾고 있다. ‘샹그릴라’ 역시 그런 유행이 빚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던 ‘샹그릴라’ 찾기가 이제는 지역으로 번져, 대상지로 떠오르는 쓰촨(四川)과 윈난(雲南) 일대에서는 서로 자기 지역이 ‘샹그릴라’라고 주장하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중국판 ‘원조’ 경쟁이라고나 할까.
현재 ‘샹그릴라’로 공인되고 있는 곳은 윈난(雲南)성 디칭(迪慶) 티벳 자치주의 주도 중뎬(中甸)현으로, 이곳은 2000년 말 아예 샹그릴라(香格里拉)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곳은 사방으로 둘러싸인 설산과 울창한 원시 삼림, 거울처럼 맑은 호수, 꽃들이 만개한 초원 위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와 양떼들, 황금빛 찬란한 라마교 사원 등이 어울어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모든 티벳인들이 우러러 모시는 10대 성산(聖山) 중 으뜸인 메이리(梅里) 설산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어 윈난과 쓰촨(四川) 일대에서 신봉하는 라마교의 일파인 황교(黃敎)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전쟁의 포화를 겪은 일이 매우 드물고, 험산준령을 넘어 이곳으로 이주해오는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해 이곳은 오래된 생활방식과 문화전통을 완벽하게 보존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쓰촨의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한 마을이 새롭게 떠오르면서 또 다시 ‘샹그릴라’ 논쟁에 재연되고 있다. 그곳은 윈난성 중뎬현에서 첩첩산중 길을 12시간 정도 더 간 곳에 있는 쓰촨성의 다오청(稻城)의 야딩(亞丁) 자연보호구다. 이곳 역시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데, 워낙 오지라 그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해 천혜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그곳 사람들은 이미 관광객들의 발길에 찌들대로 찌들은 윈난의 중뎬현(현재의 샹그릴라현)보다는 이곳이 샹그릴라에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원조 샹그릴라 논쟁이 서로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윈난성과 쓰촨성 사이의 신경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 곳 모두 나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굳이 어느 곳이 원조인가 하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샹그릴라라는 이상향의 존재가 관광 수입이나 지역 경제의 활성화 등의 이유로 그리 나쁠 게 없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샹그릴라 논쟁은 몇 가지 점에서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흔히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샹그릴라는 중국인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유럽인들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허상을 거꾸로 중국인들이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이 소설이나 영화 속의 샹그릴라에 가까운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은 어딘지 억지춘양격이라는 생각을 거두기 힘들다.
우리말 ‘억지춘양’, 또는 ‘억지춘향’이라는 표현의 올바른 표기와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경북 춘양 지역에서 나는 소나무인 춘양목은 ‘백목(百木)의 왕(王)’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데, 그 때문에 인근의 춘양 장동(춘양 소로리)과 내성(봉화) 장날이면 상인들이 내다 팔러 가져온 자기들 나무가 진짜 춘양목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해서 ‘억지춘양’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춘양목의 경우는 우리 것을 두고 서로 자기 것이 좋은 거라 억지를 부리고 싸우는 형국이지만, 샹그릴라의 경우는 애당초 중국에 있지도 않은 것을 두고 싸우는 것이니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샹그릴라’현으로 바뀐 ‘중뎬(中甸)’현을 여전히 예전 이름 그대로 부르고 있다.
게다가 원작 소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잃어버린 지평선뿐 아니라 왜 서양인들의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꼭 남자 주인공이 현지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지. 뭐 청춘 남녀가 만나 서로 느낌이 통하고 피가 끓어 사랑에 빠지는 것까지야 뭐라고 할 수 없겠지만, 왜 그 반대의 경우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혹자는 이런 현상을 페미니즘과 제국주의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제국주의는 강자고 식민지가 약자라면, 똑같은 논리로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따라서 강자인 제국주의가 약자인 식민지를 침략하고 수탈하듯, 강자인 백인 남성이 약자인 유색인 여성을 소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눈에도 백인 남자가 한국인이나 중국인 여자와 사귀는 것은 흔히 보이고 또 으레 그러려니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도시 엄두가 안 나고 실제로도 실현되는 경우가 극히 드문 게 사실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뿌리깊게 자리잡아 더 이상 이게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때로 제국주의 당사자의 그것보다 이런 류의 자기 안의 오리엔탈리즘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