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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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景州) 사람 노원(露園) 이기각(李基塙)은 강희(康熙) 갑오년(甲午年: 1853)에 효렴이 되었는데, 바로 나의 처남이다. 그는 박학하고 단정하며 시를 잘 지었다. 임용을 기다리던 어느 날 꿈에서 두 구의 시를 지었다.

난새의 깃털과 같았던 혜강,

달처럼 고아했던 굴원.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스스로 그 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뒷날 그는 호남(湖南)의 한 현령이 되었다가 임지에서 죽었는데, 바로 굴원이 노닐면서 시를 읊었던 곳이다.

景州李露園基塙, 康熙甲午孝廉, 余僚婿也. 博雅工詩. 需次日, 夢中作一聯曰: “鸞翮嵇中散, 蛾眉屈左徒.” 醒而不能自解. 後得湖南一令, 卒於官, 正屈原行吟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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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할머니 장태부인(張太夫人)은 작은 얼룩 개 한 마리를 키우셨다. 하녀들은 얼룩개가 고기를 훔쳐 먹는 것을 싫어해서 몰래 개를 목 졸라 죽였다. 그 가운데 유의(柳意)라 불리는 하녀가 있었는데, 꿈에 늘 그 개가 와서 자신을 물어뜯는 것을 보고 잠 잘 때마다 번번이 잠꼬대를 했다. 장태부인이 그 사실을 알고 말했다.

“너희들이 함께 개를 죽였는데, 어째서 유독 유의(柳意)에게만 원한을 품는단 말인가? 유의도 고기를 함께 훔쳐 먹어서 얼룩개가 불복한 것이 틀림없다.”

유의를 불러 물어본 결과 정말 그랬다.

先祖母張太夫人, 畜一小花犬. 群婢患其盜肉, 陰搤殺之. 中一婢曰柳意, 夢中恆見此犬來囓, 睡輒囈語. 太夫人知之, 曰: “群婢共殺犬, 何獨銜冤於柳意? 此必柳意亦盜肉, 不足服其心也.” 考問果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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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건성 정주(汀州) 시험장의 당(堂)앞에 오래된 측백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모두 당나라 때 심은 것으로 귀신이 붙어있다고들 했다. 내가 이곳에서 시험 감독할 때 한 관원이 내게 나무에게 절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나는 나무의 정령은 해가 되지 않으니 그대로 놔두어도 되고, 제사의 예법에 있는 것도 아니니, 천자의 사자가 절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나무는 잎이 무성하게 우거지고 위로 치솟아 있어서 몇 집을 사이에 두고도 보였다. 어느 날 저녁 달빛을 밟으며 섬돌로 가서 고개를 들어보았더니 나무 위에 붉은 옷을 입은 노인 두 명이 나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천천히 사라졌다. 나는 막료들을 불러 보게 했는데, 여전히 그 모습이 보였다. 이튿날 나는 측백나무 두 그루 앞으로 가서 답례인사를 하고, 사당문 옆에 시 두 구를 새겨 넣었다.

하늘을 향한 측백나무의 녹음은 언제나 이와 같으니,

머리를 끄덕이던 붉은 옷 입은 노인이 혹 그대가 아닌가 싶네.

이 일은 아주 기이하다. 원자재(袁子才: 袁枚)도 예전에 이 일을 《신제해(新齊諧)》에서 기록한 적이 있는데, 줄거리가 약간 다르다. 아마도 전해지면서 착오가 생긴 듯하다.

福建汀州試院, 堂前二古柏, 唐物也, 云有神. 余按臨日, 吏白當詣樹拜. 余謂木魅不爲害, 聽之可也, 非祀典所有, 使者不當拜. 樹柯葉森聳, 隔屋數重可見. 是夕月明, 余步堦上, 仰見樹杪兩紅衣人, 向余磬折拱揖, 冉冉漸沒. 呼幕友出視, 尙見之. 余次日詣樹, 各答以揖, 爲鐫一聯於祠門曰: “參天黛色常如此, 點首朱衣或是君.” 此事亦頗異. 袁子才嘗載此事於《新齊諧》, 所記稍異. 蓋傳聞之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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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 사람 송청원(宋淸遠) 선생이 해준 이야기이다.

여도사(呂道士)는 어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환술(幻術)을 잘 했으며, 일찍이 호부상서 전산강(田山疆)의 집에 객으로 있었다고 한다. 주등화(朱藤花)가 한창 피었을 때, 전산강이 손님들과 함께 꽃을 감상하던 중이었다. 한 속된 선비가 자리를 같이했는데, 그 말이 비루하기 짝이 없었으며, 계속해서 주절대는 바람에 다른 사람의 흥취까지 깨버렸다. 또 한 젊은이는 천성적으로 경박하고 다른 사람을 심하게 무시했다. 그에게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질책하면서 두 사람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싸울 기세였다. 한 나이든 선비가 그들을 화해시키려 했으나, 두 사람이 모두 말을 듣지 않자 나이든 선비도 노기를 드러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들 때문에 모두 흥이 나지 않았다. 여도사가 어린 아이에게 귀엣말로 종이와 붓을 가지고 오라고 하더니, 부적 세 장을 그리고 그것을 불태웠다. 그러자 세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서 정원으로 가서 몇 차례 돌기 시작했다. 속된 선비는 종종걸음으로 동남쪽 모퉁이에 가서 앉더니, 혼자 중얼대기 시작했는데, 그 말을 귀 기울여 들어보았더니 처첩과 함께 집안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잠시 뒤에 그는 좌우를 돌아보면서 화해하는 것 같더니 잠시 후 밝은 얼굴로 자신을 변호하는 듯 했고, 별안간 다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무릎을 꿇더니 별안간 계속해서 고개 숙여 사과했다.

젊은이를 보았더니, 그는 서남쪽 모퉁이 난간에서 눈길을 던지며 부드러운 말로 다정하게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는 웃고 한편으로는 겸손하게 사과했다. 그는 잠시 뒤 낮은 목소리로 「완사기(浣紗記)」를 중얼중얼 읊어대더니 손으로 박자를 치면서 온갖 요염한 태도를 취했다.

나이든 선비는 돌계단 위에 단정하게 앉아서 《맹자》 가운데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齊桓晋文之事)」장을 이야기하는데, 자구를 분석하면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네댓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오!”라고 하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아직도 이해가 안 되시오?”하고 말하면서 ‘어흠!’하고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놀라서 웃자 도사는 손을 내저으며 웃지 말라고 했다.

술자리가 파할 무렵 도사가 다시 부적 세 개를 태우자, 세 사람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잠시 뒤 비로소 제 정신이 돌아왔는지 술에 취해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다며 결례를 범했다고 사과했다. 사람들은 웃음을 참으면서 흩어졌다. 여도사가 말했다.

“이것은 작은 재주에 불과해 말할 것이 못됩니다. 섭법선(葉法善)이 당나라 현종(玄宗)을 월궁(月宮)으로 인도할 때 이런 부적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사람들 가운데는 그를 진짜 신선이라고 오해하는 이도 있었고, 또 어리석은 유생들은 엉터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모두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식견이 좁은 탓이지요.”

후에 여도사는 여관에서 부적을 이용해서 길 가던 귀인(貴人)의 첩의 혼을 잡아왔다. 첩은 제정신이 들자 마차를 타고 [자신이 잡혀갔던] 집을 기억해내고는 귀인에게 급히 그를 잡아오라고 했지만, 도사가 이미 달아난 뒤였다.

바로 이 때문에 《주례》에 정신 이상자의 궁중출입을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게 된 것이 아닌가!

德州宋淸遠先生言. 呂道士, 不知何許人, 善幻術, 嘗客田山疆司農家. 値朱藤盛開, 賓客會賞. 一俗士言詞猥鄙, 喋喋不休, 殊敗人意. 一少年性輕脫, 厭薄尤甚. 斥勿多言, 二人幾攘臂. 一老儒和解之, 俱不聽, 亦慍形於色, 滿坐爲之不樂. 道士耳語小童, 取紙筆, 畵三符焚之. 三人忽皆起, 在院中旋折數四.

俗客趨東南隅坐, 喃喃自語. 聽之, 乃與妻妾談家事. 俄左右回顧若和解, 俄怡色自辯, 俄作引罪狀, 俄屈一膝, 俄兩膝並屈, 俄叩首不已.

視少年, 則坐西南隅花欄上, 流目送昐, 妮妮軟語. 俄嬉笑, 俄謙謝. 俄低唱「浣紗記」, 呦呦不已, 手自按拍, 備諸冶蕩之態.

老儒則端坐石磴上, 講《孟子》 「齊桓․晋文之事」一章. 字剖句析, 指揮顧昐, 如與四五人對語. 忽搖首曰“不是!”, 忽瞋目曰“尙不解耶?”, 咯咯癆嗽, 仍不止. 衆駭笑, 道士搖手止之.

比酒闌, 道士又焚三符, 三人乃惘惘凝坐, 少選始醒, 自稱不覺醉眠, 謝無禮. 衆匿笑散. 道士曰: “此小術, 不足道. 葉法善引唐明皇入月宮, 卽用此符. 當時誤以爲眞仙, 迂儒又以爲妄語, 皆井底蛙耳.” 後在旅館, 符攝一過往貴人妾魂. 妾蘇後, 登車識其路徑門戶, 語貴人急捕之, 已遁去. 此《周禮》所以禁怪民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