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베이징

장헌수이張恨水(1895∼1967)]
장헌수이는 원래 이름이 장신위안张心远으로 안후이 성安徽省 안칭 시安庆市 쳰산 현潜山县 사람이다. 중국 장회소설가로 원앙호접파의 대표 작가이다. 생계를 위해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소설을 발표하였다. 1924년 90만 자의 장회소설 『춘명외사春明外史』를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이 소설은 당시 관계官界와 사회 상의 각종 기문괴사奇闻怪事를 폭로하고 조롱하는 한편 질책을 가한 작품이었다. 1929년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과 지지 속에 5년 여의 연재를 끝낸 뒤 장헌수이는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1948년 지병으로 사직을 할 때까지 수많은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창작에 매진했다. 1949년 『창작 생애 회고写作生涯回忆』를 발표한 장헌수이는 이후 문화부 고문, 중앙문사관中央文史馆 관원馆员, 중국작가협회中国作家协会 이사 등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몇 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1967년 베이징에서 뇌일혈로 세상을 떴다. 장헌수이는 다작으로 유명한데, 여러 편의 소설을 동시에 집필하기도 했다. 최고 기록은 7편의 장편소설을 동시에 집필한 것이다. 그리고 붓을 잡으면 한 번에 끝까지 나가서 수정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타고난 글쟁이였던 것이다.

동방의 건축미를 대표할 만한 도시로, 세계에서 베이징을 제외하면 두 번째 가는 곳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베이징을 묘사한 글은 중국어에서 외국어까지, 원대에서 오늘날까지 너무나도 많다. 그런 글들을 베껴 쓰면 아무렇거나 백만 자 정도 되는 전문서가 나올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베이징을 이야기 하자면 네 시대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니 할 말이 없게 된다. 베이징의 인물에 대해 쓰자면, 현재만 놓고 이야기해도, 문예에서 과학까지, 가장 숭고한 학자에서 아주 정교한 기예를 가진 절세의 고수까지, 이 성 안에서만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일일이 소개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베이징이라는 성은 특히 학문이 있고 기예가 있는 이들을 흡수할 수 있다. 이런 류의 인재들은 베이징에서 생활이 곤궁해질 정도로 정지 상태에 놓일지언정 떠나려 하지 않는다. 명성도 필요 없고, 돈도 필요 없고 그렇듯 곤궁해져 간다. 이것은 실제로 괴이한 일이다. 내가 어떤 이를 묘사해야 이 권역 밖에 있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것인가?

후통의 해넘이

정적인 것은 쓰기 어렵고 동적인 것도 쓰기 어렵다. 지금은 5월(음력으로 맑고 화창한 4월)이다. 그러니 5월의 목전의 경물을 묘사하도록 하자. 베이징의 5월은 1년 중 황금 시절이다. 어떤 나무라도 신록의 이파리를 내밀고, 곳곳에 녹음이 가득 깔려 있다. 작약 꽃을 파는 노점이 날마다 네거리에 늘어선다. 아까시나무에는 눈같이 흰 꽃이 피어 푸른 나뭇잎 위에 동그랗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길거리나, 인가의 정원 어디서건 볼 수 있다. 버들 솜이 눈꽃처럼 날려 싸늘하고 고요한 후통 안을 날아다닌다. 대추나무도 꽃이 피었고, 인가의 하얗게 칠한 담장에서는 난향이 뿜어져 나온다. 베이징의 봄은 바람이 많지만, 5월이 되면 바람이 부는 시절은 지나가버린다. (올해 봄은 바람이 없어) 시민들은 겹옷을 입기 시작하는데, 따뜻하지 않은 햇볕 아래 걷고 있다. 베이징의 공원은 많기도 하고 크기도 하다. 시간만 있다면, 얼마 되지 않는 표 값을 내고 비단에 수놓은 듯하고 옥으로 깎아놓은 듯한 곳에서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에 비추어 보면 이 범위는 여전히 너무 넓어서 사고전서를 보는 것과 같다. 그 대강만을 이야기하더라도 버겁다는 느낌이 든다. 그 범위를 축소해서 중간 정도 되는 사람의 집만 이야기해보자. 베이징의 집은 대개 사합원이다. 이것은 전국의 건축을 압도한다. 양식 건물에 화원이 딸린 것은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신식 주거 형태다. 하지만 베이징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리 특별하달 게 없다. 베이징의 이른바 대가 집은 어느 집이나 7,8개에서 10개 정도의 정원을 갖고 있는데, 어느 정원이든 꽃과 과일이 무성한 것은 아니다. 이건 잠시 접어두자. 중산층의 집에는 큰 정원 말고도 한 두 개의 작은 정원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이런 정원 안에서 석류나무나 금붕어 어항 같은 것들의 경우 봄이 무르익으면 집집마다 집안에서 추운 겨울을 지내고 밖으로 내온다. 정원 안의 나무들, 이를테면, 정향나무나 아그배나무, 등나무 시렁, 포도 시렁, 수양버들, 아까시나무, 회화나무, 대추나무, 느릅나무, 소귀나무, 쉬땅나무, 풀또기 같은 것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재배하는 식물들이다. 이때가 되면 순서대로 꽃을 피운다. 특히 홰나무는 큰길가나 작은 골목 가릴 거 없이 어떤 집이든 곳곳에 심어져 있다. 5월에 징산景山 꼭대기에 올라 베이징 성을 조감하면 베이징 시의 집들이 푸른 바다 속에 들쑥날쑥하다. 이 푸른 바다는 대부분 홰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까시나무가 베이징에 전해진 것은 50년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류의 나무는 비록 높이가 대여섯 길 정도 되더라도 나뭇가지는 그리 굵지 않다. 회화나무는 베이징 토산으로 나무 둥치가 아름드리로 몸체는 열 길 정도 높이로 자라는 게 일반적이다. 아까시나무는 나뭇잎이 파래지면 이내 꽃이 피어 5월이 되면 꽃이 구형을 이루어 피는데, 무더기를 이룬 것은 그리 길지 않아 멀리서 보면 남방의 흰 수국과 같다. 회화나무는 7월에 꽃을 피우고, 무더기진 것이 등나무 꽃과 같은데, 흰색일 따름이다. 아까시나무는 향이 진하고 회화나무는 그리 진하지 않다. 그래서 5월에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이면, 아까시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이 가장 제격이다.

중등 정도 되는 집의 정원에서는 한두 그루의 홰나무가 있을 것이다. 혹은 한두 그루의 대추나무. 특히 성의 북쪽이라면 대추나무는 집집마다 있는데, [대추나무 ‘짜오棗’ 자가] 길하다는 의미가 있는 ‘짜오쯔早子’와 해음諧音이 되기 때문이다. 5월에 한 바탕 비가 내리면 홰나무 잎은 이미 정원에 녹음을 드리운다. 하얀 색의 아까시 꽃은 푸른 가지 위에 눈송이를 쌓아놓아 해가 비치면 아주 보기 좋다. 대추나무 꽃은 보이지 않는데, 담녹색으로 작은 잎의 색깔과 똑같고 참깨만한 크기로 아주 작아 어디서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바람이 그친 한낮이나, 달이 대낮처럼 밝을 때는 난초꽃 향기가 온 정원에 그윽하고 담담하면서도 우아한 경계로 스며든다. 이런 집에 화분이 있으면(반드시 있다), 석류꽃이 불꽃같은 붉은 점으로 피어나고, 협죽도夾竹桃는 분홍색의 복숭아꽃받침을 피워낸다. 아래위가 모두 푸른색인 환경에서 이 몇 개의 붉은색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요염하다.

베이징 사람들은 또 여기저기에 초본의 꽃씨를 뿌리는 것을 좋아한다. 이때 크고 작은 꽃모종이 정원에서 흙을 뚫고 나오는데, 한 치에서 몇 치 정도까지 길이는 일정치 않지만, 모든 것들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베이징의 집들은 정원을 향한 쪽에 어디나 그렇듯 맨 아래는 두세 자 정도 높이의 흙담이고, 가운데는 커다란 유리창을 내는데, 유리 크기는 백화점의 쇼윈도 정도고 그 위에 바람이 통할 수 있게 구멍이 난 격자창이 나있다. 커다란 유리창 아래에는 담장에 기댄 탁자가 있다. 집주인이 책상에 엎드려 책을 읽거나 글씨를 쓸 때 문득 바라보면 유리창 밖의 녹색이 양미간에 비치는데, 이거야말로 시정화의詩情畵意라 할 만하다. 아울러 이런 구색은 돈을 전혀 쓰지 않아도 갖출 수 있다.

베이징이라는 곳은 실제로 녹음으로 점철되기에 적당한 곳이다. 푸르른 나무가 녹음을 짙게 드리우기로는 홰나무만한 것이 없는데, 둥창안졔東長安街에서는 고궁의 누런 기와와 붉은 담장이 천 그루 넘는 푸른 홰나무 숲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이룬다. 오래된 후통에는 너댓 그루의 키 큰 홰나무가 평평하고 반듯한 흙길과 낮은 흰 담장에 어우러져 행인이 아주 드문 대낮이면 그윽하고 고요한 정취를 일으키는데, 달빛 아래는 말할 것도 없다. 넓고 평평한 신작로, 이를테면 난베이츠쯔南北池子나 난베이창졔南北長街 같은 곳은 양쪽으로 홰나무가 획일적으로 가지런히 3,4리 정도 길이로 연속으로 이어져 있어 멀리서 바라보면 녹색 가로를 이루고 있다. 오래된 사당의 문 앞은 붉은 색 담장, 반원 형 문, 몇 그루의 커다란 홰나무가 사당 앞에 옹립해 있으면서 낮은 사당 전체를 녹음으로 뒤덮고 있는 것이 엄숙하고 전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위엄 있는 관공서 문 앞에는 홰나무가 양쪽으로 나뉘어 서 있어 위엄 있는 의장대 사열 같이 웅장한 분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너무 많다. 나는 이것들을 일일이 다 소개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오월의 베이징이 푸른 홰나무 도시라고 말한 바 있는데, 하나도 과장이 아니다.

푸른 녹음에 뒤덮인 둥쟈오민샹東交民巷의 가로

태평시대, 베이징 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호시절’이라는 것은 바로 고도故都의 인사들이 가장 여유롭고 유유자적할 때이다. 녹음이 거리에 가득할 때 작약 꽃을 파는 납작한 수레가 꽃봉오리를 가득 싣고 지나간다. 멜대에 빙과류를 파는 이가 고요한 후통에서 놋쇠로 만든 종발을 쳐 딩동 소리를 내는 것은 이곳의 모든 안정감과 한가로움을 나타내준다. 보하이渤海에서 가져온 해물, 이를테면 참조기와 참새우 같은 것들을 얼음덩이 위에 놓고 파는 것은 별스러운 풍미이다. 또 루유양메이乳油楊梅나 미졘잉타오蜜餞櫻桃, 텅뤄빙藤蘿餠, 메이구이가오玫瑰糕 같은 것들을 먹으면 시적인 정취詩意가 인다. 공원은 녹음으로 덮여 있고, 싼하이三海는 푸른 물이 넘실대며, 모든 곳이 모두 사람들이 편안히 누리는 곳들이다. 하지만 내가 써내려 갈 수 없고, 쓰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다. 지금 이곳은 인근에 포화가 미치고 있어, 남쪽 사람들은 여기가 최전선이라고 한다. 북쪽 사람들이 먹는 밀가루는 한 포대에 3백 여 위안 하는데, 남쪽 사람들이 먹는 쌀은 한 근에 8만 여 위안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조석을 장담할 수 없고, 중산층 가정도 잡곡으로 연명하고 있지만, 이것마저도 얼마나 더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거리의 홰나무는 여전히 예전같이 푸르지만, 여유롭고 한가함은 진즉이 모두 잃어버렸다. 가정의 정원에는 돈 들일 일 없는 정원수들이 의연하게 녹음을 드리우고 있지만, 이 녹음 역시 그윽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처참한 상징이 되어버렸다. 실로 누구를 위해 일을 하고, 누구에게 시킬 것인가? 우리 역시 물어볼 사람이 없다. 아방궁부阿房宮賦는 전반부에서는 화려하게 묘사하고 있다가 후반부에 가면 “진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애통해 할 겨를이 없었다”고 탄식한다. 지금 베이징 사람들은 스스로 애통해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 애통해 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지 않은가?

동방의 아름다움으로 가멸찬 대도시여! 그 모든 것이 전율하고 있다! 천년 문화의 결정체여! 끊임없이 마르고 시들고 있다! 하늘에 호소해도, 하늘은 아무 말이 없도다. 인류에 호소해도, 인류 역시 고개를 돌리네. 어찌할거나!

1948년

(『40년 이래의 베이징』, 1949년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