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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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하인으로 있었던 장수(莊壽)가 해준 이야기이다.

“제가 예전에 아무개 관리를 모셨는데, 하루는 새벽녘에 관리 한 명이 찾아오고, 잠시 뒤에 또 다른 관리가 따라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인 나리의 가까운 친구였는데, 은밀히 소식을 전하러 온 것 같았습니다. 잠시 뒤 두 사람이 돌아가고 나서 주인 나리도 마차를 대령하라고 하더니 타고 나갔다가 저녁 무렵에 돌아왔는데, 사람도 지치고 말도 지쳐 있었습니다. 잠시 뒤 앞서 왔던 두 명의 관리가 다시 왔는데, 세 사람은 등불아래서 귀를 맞대는가 하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손을 내젓기도 했습니다. 또 눈썹을 찌푸리는가하면 박수도 치고 하는데, 무슨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경(二更)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을 때, 별안간 저 멀리 북쪽 창문 밖에서 ‘허허’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는데, 방안에서는 아무 것도 듣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제가 한참 의문을 품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길게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필 그렇게 되다니!’

손님과 주인은 그제야 깜짝 놀라 일어나면서 창문을 열고 급히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막 비가 내리고 난 뒤라, 지면이 손바닥처럼 평평해져 있어서 결코 인적이라고는 없었기에 모두들 제가 잠꼬대를 했다고 의심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당시 주인 나리의 말씀을 엿듣지 말라는 분부가 있었기 때문에 남쪽 방 처마 밑에 있는 꽃 선반 아래에 피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잠을 자지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舊僕莊壽言: 昔事某官, 見一官侵晨至, 又一官續至. 皆契交也, 其狀若密遞消息者. 俄皆去, 主人亦命駕遞出, 至黃昏乃歸, 車殆馬煩, 不勝困憊. 俄前二官又至, 燈下或附耳, 或點首, 或搖手. 或蹙眉, 或拊掌, 不知所議何事. 漏下二鼓, 我遙聞北窗外吃吃有笑聲, 室中弗聞也. 方疑惑間, 忽又聞長嘆一聲曰: “何必如此!” 始賓主皆驚, 開窗急視. 新雨後泥平如掌, 絶無人踪, 共疑爲我囈語. 我時因戒勿竊聽, 避立南榮外花架下. 實未嘗睡, 亦未嘗言. 究不知其何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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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永春)의 효렴(孝廉) 구이전(邱二田)이 어쩌다 구리호(九鯉湖)의 길옆에서 쉬고 있었다. 한 동자가 빨리 소를 타고 오다가 구이전 앞에 와서 잠시 멈춰 서더니, 맑은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올 때는 비바람 맞고 왔다가,

갈 때는 안개와 노을 밟고 가네.

태양이 만산 봉우리의 녹음을 비추고 있으니,

이곳이 바로 내가 산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닌가?

구이전은 촌아이가 어떻게 이런 시를 지었을까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그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그 아이가 쓴 삿갓이 삼나무와 회나무사이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이미 반 리(里)쯤 떠난 뒤였다. 신선이 내려와서 장난치고 간 것인지 아니면 시골서당에 다니는 아이가 다른 사람이 읊는 시를 듣고 우연히 기억한 것인지 모르겠다.

永春邱孝廉二田, 偶憩息九鯉湖道中. 有童子騎牛來, 行甚駛, 至邱前小立, 朗吟曰: “來衝風雨來, 去踏煙霞去. 斜照萬峰靑, 是我還山路?” 怪村豎那得作此語, 凝思欲問, 則笠影出沒杉檜間, 已距半里許矣. 不知神仙游戲, 抑鄕塾小兒聞人誦而偶記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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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전(浦田)의 교유(敎諭) 임패(林霈)는 대만에서 임기를 채우고 북상하던 중이었다. 탁주(涿洲) 남쪽에 도착했을 때 마차에서 내려 잠시 볼일을 보다가 내려앉은 집 담밖에 깨진 자기로 쓴 시를 보았다.

한 무리의 노새 구리방울 울리면서

흰 새벽에 추위를 헤치고 역참을 지나가네.

내가 채찍 늘어뜨려 잔설을 가지고 놀 때,

말은 천천히 거닐면서 푸른 산을 어지럽히고 있네.

나양산인(羅洋山人)이라 적혀 있었다. 임패는 시를 다 읽고 나서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시에 운치가 조금 있구나. 그런데 나양(羅洋)은 어디지?”

집안에서 누군가 이렇게 대답했다.

“말투로 보아하니 호광(湖廣) 사람이군요.”

[깜짝 놀라] 집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먼지뭉치와 낙엽만이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임패는 자신이 귀신을 만났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 마차를 타고 떠나갔다. 그 이후로 임패는 늘 마음이 편치 않더니, 얼마 뒤에 죽었다.

莆田林敎諭霈, 以臺灣俸滿北上. 至涿州南, 下車便旋, 見破屋牆匡外, 有磁鋒劃一詩曰: “騾綱隊隊響銅鈴, 淸曉衝寒過驛亭. 我自垂鞭玩殘雪, 驢蹄緩踏亂山靑.” 款曰羅洋山人. 讀訖, 自語曰: “詩小有致. 羅洋是何地耶?” 屋內應曰: “其語似是湖廣人.” 入視之, 惟凝塵敗葉而已. 自知遇鬼, 惕然登車. 恆鬱鬱不適, 不久竟卒.